사회보장법에 있어서의 보충성원칙

- 독일의 경우를 중심으로 -

 

 

김 세 규*1)

 

 

Ⅰ. 사회보장과 보충성원칙

 

사회보장의 보충성이란 개인이 자산과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도 경제적 불안을 해소하지 못할 때 국가등이 그 부족분을 보충해 주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는 개인이 자력으로 사회적 위험에 대처하여야 하며, 개인의 능력으로서는 이러한 위험을 극복할 수 없는 경우에 보충적으로 사회나 국가가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충성의 원칙은 연대원칙, 자기책임의 원칙, 자치행정의 원칙, 질서조화의 원칙 등과 함께 사회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사회정책분야의 기본적인 원칙 중의 하나라고 설명되어 진다. 이러한 보충성의 원칙은 사회보장법의 영역 중 사회보험이나 사회보상의 영역보다는 특히 사회부조법체계에서 전반적으로 적용되는 원칙이다(현행 사회보장기본법 제6·7조, 모자복지법 제3조, 장애인복지법 제5조, 노인복지법 제25조,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3조 등).1)

제2차 세계대전 후 당시 서독에서 발생한 사회정책의 큰 변화는 전통적인 사회정책의 상대적 비중이 저하하고 그에 갈음하여 사회보장정책이 전면화되었다. 계급문제, 그 중에서도 자본주의 경제체제하에서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의 대립·조정이라는 문제가 지금까지의 사회정책적 노력의 성과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예전의 날카로움을 상실하고 국민전체의 생활배려와 직접 관계된 정책의 중요성이 증대하였다.

이러한 전후 당시 독일의 현실정책의 변화는 당연히 사회정책론의 영역에서도 여러 가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앞에서 보았듯이 사회정책개념의 재검토를 요청하게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정책영역의 이론적 기초가 형성될 것이 긴급하게 요구되었다. 결국 계급론과 계급구조론을 중심으로 하는 종래의 관계사회학으로서는, 사회보장을 중심으로 하는 정책을 이미 충분히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사회보장이 대상으로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개개인의 생활상황이며, 특정계급에 대한 소속성은 갖지 아니한다. 그러한 영역에서는 개인과 국가기관이 중간의 매개물 없이 직접 대치하고 있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계급 그 자체의 존재가 소멸되었다는 의미라든가, 또한 계급소속성이 개개인의 생활상황에서 무의미하게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렇지만 그 경우 개개인은 얼마간의 계급의 구성원이라는 소속에 있어 사회정책적 배려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한 명의 인간으로서 배려를 받는 경향이 강하다.

여기서 개개인과 사회적 전체 또는 개인과 집단, 그 중에서도 국가와의 관계는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라는 사회철학상의 고전적이고도 보편적인 문제이지만, 사회정책론의 분야에서도 다시금 묻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이 경우 존재로서의 개인과 사회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이는 곧 인간 존재에서 개별성과 사회성은 어떠한 관계에 있는가 라는 존재론상의 물음에 그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이와는 무관할 수는 없지만, 사회정책이라는 실천영역의 자리매김이 요구되는 한, 더욱 더 진척되는 개개인과 전체와의 관계는 원리적으로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는가, 그리고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가운데서 영위되는 현실의 인간생활에서 이러한 관계가 어떻게 형성될 수 있는가라는 당위론적인 해결이 요청된다.

사회정책론과 관련시켜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이 문제는 다음과 같다. 개개인의 생활형성에 대한 국가의 배려는 애초 필요한 것인가. 「그것은 기껏 잠정적인 것으로서, 한층더 발전이 진척되는 가운데서 폐지되어야 하는 활동영역인가」2) 또는 그것은 인간에 있어 필요불가결한 것으로, 이에 대비하여 처음부터 자율적인 생활형성이 가능한 것인가. 그렇다고 한다면 그 근거를 어디에 두며, 어떠한 한계를 갖는 것인가.

이러한 문제에 답하기 앞서, 다양한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먼저 일반에 알려진 것처럼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사회철학상의 문제와 깊이 관계하고 있는 한, 순수한 경험과학의 영역으로 충분한 설명을 기대 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역사적 동향 또는 현실상황의 과학적 분석이 극히 유익한 공헌을 할 수 없음은 확실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이 문제에 답할 수 없다. 어쨌든 존재론의 영역과 관련됨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개개인과 전체와 관련된 문제를 원리적으로 해결하는 단서로써, 제2차 대전후의 당시 서독에 있어 사회정책과 관련을 갖는 대다수의 논자에 의하여 적극적으로 제창되어온 것으로서  보충성원칙(Subsidiaritätsprinzip)을 들 수 있다. 보충성원칙을 적용함으로써, 개개인과 전체와의 관련된 문제가 특히 사회정책론과의 관련에 있어서 어떻게 답해지고 있는가. 즉 사회정책은 사회보장적인 시책의 증대라는 사태를 바탕으로 어떻게 자리매김하는가라는 것을 대표적 논자의 주장을 원용하여 검토하고자 하는 것이 이 논문의 과제이다. 물론 문제의 성질상 어떠한 해석의 여지도 남기지 않을 정도로 완전무결한 해결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며, 이러한 보충성원칙의 지배적인 해석도 시대상황의 추이와 함께 상당한 변천을 갖는다. 그러므로 그러한 움직임의 몇가지를 끝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Ⅱ. 사회정책과 사회질서

 

제2차 세계대전의 직후, 당시 서독의 사회정책은 팽배한 전쟁피해자와 동독으로부터의 피난민의 곤궁상태를 처리하는 긴급한 과제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곤란한 과제에 직면하여, 전통적인 사회정책의 개혁을 요구하는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었지만, 그러한 것들은 우선 첫째로, 전쟁 중 및 전후 사회급부활동의 혼란에 주목함으로써 그 기술적 개선을 중심목표로 하였다. 즉 대량의 생활곤궁자를 우선으로 하는 국가의 사회급부활동을 어떻게 하면 보다 효과적으로 재편성할 것인가라는 점에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방향의 논의는 문제의 긴급성과 구체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찬동하게 되었고, 그러한 가운데서 사회정책의 개념의 재검토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강해졌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와 같은 어느 쪽인가라는 실용적인 논의의 방향은 체제론적인 시각을 후퇴시키는 요인도 된다. 사회급부활동의 목적합리적인 재편성의 추구가 어떠한 사회·경제체제를 요구하고 있는가 또는 궁극적으로는 어떠한 사회·경제체제의 실현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은 논의의 배경으로 그칠 수 있다. 그러나 사회급부활동의 기술적 개혁은 그 자체만으로 완결할 수 없으며, 체제중립적일 수도 없다. 개개의 기술적 개혁은 사회·경제체제의 기본원칙과 관련을 갖는다. 이른바 「고전적」사회정책론의 입장으로부터 이와 같은 체제론적 시각의 경시에 대하여 문제가 제기된 것도 당연하였다.3) 또한 사회정책론의 새로운 구축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넬 브로잉(Nell-Breuning)도 이 문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경계를 주창한다. 「이와 같은 이른바 『사회개혁』에서는 현실적으로는 우리들의 사회정책적 법제의 수정과 『사회보장』의 목적에 부합하는 사회급부……의 개선만이 문제가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개개인의 수정 또는 개선은, 「개인과 사회의 원리적인 관계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4) 게다가 독일의 경우 전쟁의 결과로써 동독과 분단된 서독에서는 체제문제, 요컨대 체제원리의 선택과 체제형성은 일반적으로도 극히 중요한 문제였다. 따라서 사회정책론에서 기술적 개혁의 편중, 체제론적 시각의 희박화의 경향에 대하여 반대하는 움직임이, 곧 사회정책과 사회질서의 관계검토의 중요성을 지적하는 일련의 주장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전부터의 논점에도 논의의 방향에서는 명확한 변화를 볼 수 있다.5)

사회정책과 사회·경제질서와의 관련이라는 문제에 관하여, 종래 강조되어진 하나의 논점으로서, 사회정책은 어디까지나 자본주의내부의 부분적 개혁인가, 또는 자본주의체제를 초월하는 가능성을 갖는가 라는 것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사회정책은 자본주의를 서서히 변혁하고 마침내는 사회주의체제를 실현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대부분의 논자는 관심을 기울였다.6) 소위 「사회정책의 한계」로써 논하여졌던 문제의 하나로서, 이에 부정적 또는 소극적인 태도를 지닌 논자는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또는 사회주의라는 체제를 상당히 고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다. 특히 자본주의에 관해서는 사회정책이 실시되는 테두리, 전제로서의 측면에 중점을 두는 경향을 갖는다. 전제로서 있는 한, 그것을 극복할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 기초에는 독일에 있어서 전쟁전에 지배적이었던 체제비양립론을 배경으로 하였으며,7) 자본주의인가 사회주의인가라는 양자택일의 체제관, 즉 다음과 같은 일원적 체제관을 들 수 있다.

이에 대하여 제2차 대전후의 당시 서독의 사회정책론에서는 사회정책이 갖는 체제형성적인 기능에 보다 많은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이것은 사회정책론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주어진 사회·경제체제의 실태와 동향을 기초로 하면서 그것을 어떻게 개혁·재형성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이 중요성을 증대하고 이처럼 개혁·재형성으로 지향된 인간의 실천적 행동을 높게 평가하는 방향이 강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체제가 경직적으로 불가침의 것으로 되어서는 아니된다. 따라서 사회정책론의 기초로 제시된 체제관도 이를 탄력적·가역적인 방향으로 변화하여야 할 것이다. 「사회질서가 모든 경우에 미리 결정된 여건으로서 다루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사회정책에서의 과제로서 다루어지는 것이다.8)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사회정책의 영역에서 사회보장적인 시책이 중요성을 증대하고 그 결과 개인과 국가기관이 직접 대치하는 상황이 지배적으로 되었다. 아울러 사회정책은 개개인의 고유한 활동범위와 국가기관의 활동범위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촉구하게 되었다. 요컨대 개개인의 생활형성에 관해서 그들의 자유와 자기책임으로 맡겨져야 할 활동범위와 국가에 의한 정책적 개입의 범위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곧 프렐러(L.Preller)에 따르면, 생활배려에 대한「개인원칙」과 「사회원칙」을 서로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보는 것이다.9)

완전한 개인원칙의 실현도 또한 완전한 사회원칙의 실현도 현실에는 있을 수 없으며, 어떠한 사회질서에서도 이들 2개 원칙의 상호조정은 실시되고 있으며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어떠한 인간관 혹은 체제관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에 관하여 종래 많이 논의되어온 것으로서는 소위 개인주의(Individualismus)와 ,집단주의(Kollektivismus) 또는 전체주의(Totalismus)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앞의 2개의 원칙과 마찬가지로 이들 2개의 원칙도 완전히 다른 쪽을 배척하고 실현될 수 없다. 즉 이는  끊임없이 어느 정도 혼합되는 것이 현실이며, 실천적으로도 한쪽의 입장만으로 기초를 두는 것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좋다. 그러나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어쨌든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이 많았던 점도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온갖 구속으로부터의 개개인의 해방을 특징으로 하는 근대에서는 중간공동체의 적극적인 의미 부여가 없어지게 되기 때문에 양원칙의 입장이 이전과 비교하여 극히 순수한 형태로써 주장된 것은 주지된 바이다. 자유인가 정의인가, 시장경제인가 계획경제인가, 자본주의인가 사회주의인가 하는 양극의 2가지를 대조시키는 논의의 배후에는 언제나 이런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의 사이의 양자택일적 발상이 존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10) 개개의 인간을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그것을 포섭하는 집단은 독자적인 존재성과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가, 개개인에게 봉사하는 수단적 의의밖에 승인하지 않는 개인주의와, 이와는 반대로 국민 국가 민족 계급 그 외 어떠한 집합적 전체를 절대적인 것으로 해석하여 개개의 성원으로는 전체의 목적의 실현에 공헌하는 한도에서만 의의를 인정하는 집단주의가 근대를 지배하던 사회질서의 원칙이었다.11) 중세에 지배한 공동체주의적 사회관은 그 중에서도 특히 보편논쟁을 계기로 하는 명목론의 우세화와 더불어 개인주의적 사회관으로의 길을 양보하고, 이에 대한 반동으로써 집단주의를 초래한 것이다.12) 이런 의미에서 근대 그 중에서도 특히 제2차 대전까지의 100년간은 와이퍼트(G.Weippert)의 말처럼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사이에서 동요한 세기」라고 할 수 있다.13)

와이퍼트에 따르면14) 개인주의 그것은 「기독교의 주체(=인격의 체험)」에 근원을 두고 있지만 이런 광의의 개인주의가 근대에 이르러 「세속화·현세화」함으로써 「자기중심적, 이기주의적, 원자론적인……협의의 개인주의」가 발생하게 된다. 이런 협의의 개인주의는 근대에서 자연법의 새로운 형성과 결합함으로써 비로소, 「확고한 자리매김하에서 사회생활을 규정하는 힘」을 획득한 것이다. 하지만 「이 근대적 자연법의 특징은 합리주의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주지주의적인(intellektualistisch) 성격을 지니며」, 이 점으로부터 이런 개인주의는 강한 합리주의적인 성질을 갖추고 있다. 다른 한편, 이 협의의 개인주의에 대항하여 성립한 「집단주의」도 또한 세속화의 산물이고, 거기에는 개인적인 이기주의는 완전히 배척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되나……어느 계층전체의 이익, 어느 계급전체의 이기주의는 근본에 있어 정당화된다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개개인의 자유로운 자신의 이윤추구가 시장메카니즘에 의하여 자동적으로 조정된다는 생각에 대신하여, 국가의 계획에 의한 경제사회의 합리적인 관리·운영이 조화를 가져다준다고 생각되어지는 한, 합리주의적 성질은 집단주의의 바탕에도 의연하게 존재하고 있다.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된 이성(Ratio)」이 근대사회의 제 2국면을 특징지우며, 이 합리주의의 공통항의 바탕하에서, 사회관으로서의 개인주의와 집단주의가 날카롭게 대립하여 온 것이다.

이들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는 어느 것이나 일원적 체제관이다. 결국 궁극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개개인이거나 전체의 어느 쪽의 양자택일적인 입장에 서 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개인주의에 의해서도 사회 또는 집단이 무시되거나 그들 인간에 있어서의 필요성이 부정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겨우 개인에 있어서의 유용성이라는 측면에서 파생적으로 긍정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집단주의도 또한, 현실에 존재하는 개개인으로부터 집단이 구성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개인은 단순히 집단목적의 실현을 위한 수단의 지위만을 떠맡게 된다. 이처럼 일원적 체제관의 거부, 이원적 혹은 다원적 체제관의 제창, 그 기초를 만들고 확고히 다지기 위한 노력이, 제2차 대전후 체제론의 분야에서의 현저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일원적 체제관의 지배에 대해서는 예컨대 카톨릭사회론의 전통이 그런 것처럼 지금까지도 상당히 엄하게 비판되어 왔다.15) 다만 이러한 흐름이 일반화되고, 다양한 사상적 입장의 사람에 의하여 받아들이게 된 것은 그 정도 오래된 일이 아니다.

  사회정책 그것에 전후하여 현저히 진전한 사회보장의 시책에 한정하여 보아도, 이들 일원적 체제관이 이를 자리매김하기에 있어서 충분한 근거를 제공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개인의 절대시는 개인의 자유권과 함께 자기책임의 일면적 강조로 연결되는 경향을 갖는다. 자기 및 가족성원의 생활배려의 책임이 모두 개인에게 부담되어졌다. 자유주의와 결부된 개인주의가, 스스로의 책임을 갖고서 생활을 형성할 수 없는 무산노동자 계급의 대량빈곤이라는 사회문제를 일으켜, 그들의 반체제화·집단주의화에로의 길을 연 것은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나타나 있는 바이다. 특히 산업화의 진전에 의하여 대다수의 시민이 노동자로 되어, 생활형성의 압도적 부분이 임금 혹은 봉급이라는 노동보수에 의존하는 사태가 지배적으로 됨으로써, 생활배려의 전체의 책임을 개인에게 부담시키는 것이 점점 불가능하게 되었다. 곧 이러한 점이 사회보장적 시책을 필요로 하게 된 커다란 요인이 된 것이다. 또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행동양식의 부정, 평등한 분배의 실현을 원칙으로 하는 사회주의적인 집단주의에 있어서는, 확실히 개개인은 전체 생활영역의 포괄적인 국가적 보장을 보증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는다. 하지만 그것은 집단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예컨대 노동력으로써의 개개인을 유지·육성하기 위하여 실시되고 있으며, 그들은 국가목적에 종속되며, 자유의 부정, 자발적 생활형성력의 마비에 빠지게 된다.16) 사회정책이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라도, 일원적 체제관은 극복되어야 하였다. 일원적 체제관을 극복하고, 그에 대신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수립하는 방향은 결코 똑같지는 아니하다. 그렇지만 적어도 여기서의 개인과 전체의 관련문제에 대해서 본다면 일정한 지배적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개인의 원리인가 전체의 원리인가라는 일원적 체계의 기초인 양자택일적 사고방법, 결국 「이것인가 저것인가」(entweder oder)라는 사고방법이 후퇴하는 것으로부터, 여기서 요구되는 것은 2 개의 종합이며, 「이것도 저것도」(sowohl als auch)의 입장에서의 이론임에 틀림없다.17) 인간존재에 관해서라면, 그 개별성(individuelle Bezogenheit)과 사회성(Gesellschaftsbezogenheit)이 동시에 승인된다.18)그러므로 궁극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개개의 인간만이며, 사회는 「개념질서에 속할 뿐 존재질서(Seinsordnung)에는 속하지 아니한다.」 라는 사회명목주의도, 또한 「사회는 자기현실성을 가질 뿐만 아니라 우선 최초로 현실적인 것이다.……사회의 의지가 최초로 지배하며 개개의 인간은 그 의지에 완전히 복종된다.」 라는 지나친 보편주의의 입장도 함께 부정된다.19)

 

 

Ⅲ.연대성원칙과 보충성원칙

 

제2장에서 본 바와 같이, 사회정책이 이론적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도 일원적 체제관, 즉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관한 「일면성의 이론」은 부정되고, 「양면성의 이론」이 수립되어야 한다.20) 이 양면성의 이론이 갖추어야 할 특징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넬 브로잉을 통하여 개관하고자 한다.

넬 브로잉은, 이 양면성의 이론을 「연대주의의 이론」이라고 부르고 있다. 「연대하여」(in solidum) 라는 것은 원래 법률용어에 속한 개념이다. 어떤 행위가 다수의 사람들에 의하여 보증되거나 그 의무를 떠맡게 되거나 할 경우의 하나의 형식을 의미한다. 즉 연대적 보증이나 연대적 의무가 존재하는 경우에는, 그것에 편입되어있는 모든 개인이 그 행위 전체를 보증하는 의무를 지고 있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요구를 받은 사람은 그 행위의 전체를 실행하여야 하며, 그 경우 그는 연대적 보증이나 의무에 편입되어 있는 다른 사람들과 그 부담의 전체를 분배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연대적 관계하에서는 대외적으로는 「1인(일체의 개개인)이 모두를 위하여」라는 명제가 타당하며, 내부적으로는 「전원이 1인(일체의 개개인)을 위하여」라는 명제가 타당하다.21)

이런 법률적인 권리·의무관계가 사회생활일반에 적용됨으로써 사회질서에 대한 연대성원칙(Solidaritätsprinzip)이 발생한다. 결국 사회질서 전체에 대해서도 연대적 관계가 타당한 것이고, 「전원이 1인 즉 일체의 개개인을 위하여, 그리고 1인 즉 일체의 개개인이 전원을 위하여」라는 기본명제가 타당하며, 타당하여야 한다.22) 이러한 연대성이 사회질서의 원칙으로서 사회생활일반에 적용될 수 있음은, 그것을 가능케 하는 본질적인 사실이 사회생활 그 자체에 존재하고 있음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사실을 넬 브로잉은 「모든 사람이 하나의 보트(boat)를 타고 있다」라는 비유로서 표현한다.23) 즉 모든 사람의 생명은 보트라는 사회의 안전성에 결정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1인의 인간으로서 개별적인 존재임과 동시에, 또한 사회적 존재로서 본질적인 사회가운데에 편입되어 있다. 인간은 사회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며, 사회적인 생활형태, 사회적 협동을 통해서 비로소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자신을 실현할 수 있다. 메스너(J.Messner)에 따라 이런 「사회적인 생활형태」를 「문화」로 받아들인다면, 인간은 문화적 존재(Kulturwesen)인 것이다.24) 따라서 개개의 인간은 조금도 절대적으로 완결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전체로 질서화」25)함으로써, 사회적 전체의 동향은 개개인의 생활에 있어서 결정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회적 전체는 개개인의 존재로부터 동떨어진 별개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확실히 1인 1인의 「이성적 자아의 합계, 집합, 오합지졸」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한 독자의 존재성을 갖는다.26) 그러나 그러한 사회적 전체도, 그 부분을 이루는 개개인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것은 「개개의 인간과 병행하며 또는 그 상위에 있으며, 결코 그들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의 인간내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 인간이, ―그 고립한 모습이기라기 보다는 결합된 모습에서―인간의 사회인 것이다.」 그 때문에 사회적 전체도 또한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은 개개의 인간의 존재방법에 따라 크게 좌우되는 것이며, 「개개의 인간으로 질서화한다」.27) 게다가 인간은 사회적 전체에 의하여 완전히 흡수되거나 남김없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격(persona)으로서 그것을 초월하며, 사회적 전체는 궁극적으로는 개개의 인격으로 조정되어 질 때만 의미를 갖는다.28) 따라서 존재론적으로는, 사회라는 「초개인적인 종류의 자기현실성(Eigenwirklichkeit)은 존재하지만, 인간은 초사회적인 자기현실성이다」라고도 말할 수 있다.29) 그리고 이 「초개인적인 종류의 자기현실성」으로서의 사회적 전체는 다수의 개개인을 구성요소로서 성립하는 「단순한 질서통일체」(blo?e Ordnungseinheit)이며, 여기에 구성요소로서의 인간이 갖추고 있는 「자기현실성」이 실체적 통일체(substantielle Einheit)이다. 곧 양자의 성질이 기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에도 주의를 요한다.30)

그래서 「독립성, 일회성, 직접성이라는 특징」을 지닌 「자기지배적인 개체 즉 인격」으로서의 인간은 동시에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존재, 요컨대 타인과의 공동생활, 협동의 소질을 부여받은 존재이며, 자신의 고유한 본질실현을 이러한 공동생활, 공동작업에서 비로소 찾아낸다」.31) 이것이 연대성원칙의 객관적 기초이다. 이 연대성원칙은 「사회와 개개인의 상호관련」또는 「운명적으로 상호적으로 연루되어 있는 것」으로 순수하게 존재적인 것이며, 「전원이 1인의 보트를 타고 있다」는 비유가 꼭 들어맞는 객관적 사실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기초로 하여 그것이 자각적으로 의식영역에 높여짐으로써 「책임의 상호적 보증으로서 윤리적으로 승인되어……연대성의 주장」이 발생한다.32) 그 때문에 연대성원칙 그리고 다음에서 기술하는 보충성원칙은, 인간과 사회사이의 「존재구조」에 기초를 두는 것에서 「존재원칙」이고, 그것은 또한 「인간의 존재기초를 윤리적인 행동으로써 유효한 것으로 하려고 하는 인간의 요구에 있어서……당위원칙이다」.33)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개개인의 곤궁이 전원의 곤궁이 될 수 있는 것이며, 전체의 안녕은 개개인의 안녕을 가져온다. 그 때문에 전원의 노력이 또한 그를 위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일체의 사람이 공동체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34) 그래서 사회생활에 있어서도 「전원이 1인, 즉 일체의 개개인을 위해서, 그리고 1인 즉 일체의 개개인이 전원을 위하여」라는 요청을 내세울 수 있는 것이다.35)

  이런 연대성원칙으로부터 직접 보충성원칙이 도출된다. 개개의 인간은 사회 가운데로 편입되어 사회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는 개개인에게로 질서지워져 그들의 활동위에서만 성립하고 있다. 그런 까닭으로 「개개인과 사회는 완전히 같은 모습으로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활동을 그 중에서도 특히 선행활동(Vorleistungen)을 행하여야 한다. 남아있는 것은 다음의 문제뿐이다. 쌍방의 측에서 행하여야 할 선행활동이 어디에 존재하며 그리고 특히 사회의 측에서 행하여야 할 선행활동은 어떠한 종류의 것인가」.36) 이 문제에 관하여 원칙적인 해결을 부여하는 것이, 보충성원칙이다. 요컨대 연대성원칙이 사회적 전체의 「생명력(Lebensfahigkeit)과 통일성을 보증하는」것을 중심내용으로 하는 것에 대하여 보충성원칙은 「개개의 사회구성원에의 과제의 배분을 공정하게 행하는」것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37)

오늘날 일반적으로 보충성원칙으로 불리고 있는 것은 직접적으로는 군트라흐(Gundlach)와 넬 브로잉에 의한 준비작업에 기초를 두고서 1931년에 발표된 피우스 XI세(Pius ?)의 社會回章 「Quadragesimo Anno」에서의 정식화에 기인하고 있다.38) 그것은 가장 간단하게는 「모든 사회활동은 『보충적』이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여러 가지의 사회적 구성체와 개개의 성원의 관계에서 관점을 한정한다면, 우선 사회적 구성체의 측면으로부터 그들 성원에 대하여 보충적 활동이 행하여져야 한다. 다른 한편 그러한 활동은 보충적인 것으로부터 부담을 「떠맡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원조」에 그쳐야 할 것이다.39) 여기서 보충성원칙은 적극적 측면과 소극적 측면을 모두 갖는다. 적극적인 측면으로는 보충성원칙은 보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상위에 놓여진 공동체는 하위의 구조와 성원에 대하여 그들이 애초부터 이룰 수 없는 것을 행함으로써 원조를 줄 수 있다」. 소극적 측면으로는 그것은 「상위에 놓여진 공동체는 하위의 구조와 성원이 독자적인 주도권(initiative)과 힘을 갖고서 이룰 수 있으며, 또한 행하고 있는 것을 떠맡을 필요는 없으며 떠맡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을 의미한다.40)

  보충성원칙은 피우스 XI세의 社會回章에서 정식화된 이래 그 중에서도 특히 카톨릭사회론의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논의되었지만, 그대로 에반게릿슈파에 의해서 나아가 신자유주의자와 신사회주의자에 의해서도 수용되어져 사회질서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원칙으로서 널리 승인되기에 이르렀다.41) 하지만 그 해석의 방법, 그것을 적용할 때의 실천적 의도도 가지각색이어서 자신의 정책적 구상을 정당화하기 위한 근거로서 자의적으로 원용되는 경우도 적지 아니하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는 제1의 원인은 보충성원칙 그 자체에 내재하는 적극·소극의 양면성에 있다. 보충성원칙에 있어서는 이들 양 측면이 불가결하며, 각각을 독립적으로 끄집어내어 대립시켜서는 아니됨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것이 실천적 주장의 근거로 되기 위하여 사용되는 경우에는 그 주장자의 입장에 따라 어느 쪽의 측면이 일면적으로 강조될 위험이 발생하기 쉽다는 것도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적극적인 면만을 강조하면, 보충성원칙은 시민의 생활형성에 대한 국가의 전면적 지원을 요청하는 근거로 되고, 소극적인 면만을 강조하면, 그것은 국가의 무대책의 정당화의 근거로 전화된다. 이와 같이 보충성원칙은 당초부터 그것이 타파하려고 한 쌍방의 일면성의 이론에 따라 전용될 위험에 드러나 있는 것이다. 논쟁의 단순화를 즐기는 정책실천의 장에서 이런 위험은 자주 현실이 된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나중에 서술하였듯이 사회정책론에 대한 보충성원칙의 적용의 경우에도 지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보충성원칙은 이미 명백히 한 바와 같이 그 기초를 연대성원칙의 가운데에 두고 있다.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족성의 결여 때문에 사회에 내재하지 않을 수 없고, 협동하여야 함이 필연적이며, 사회의 의미는 사람들의 공동의 자기실현에 있다. 또한 인간은 「초사회적인 자기현실성」을 지닌 인격으로서, 자립성을 추구하고 끊임없이 사회를 넘어 나아가려고 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인간이 사회에 내재하여 발생하는 것의 의미는, 그것에 따라서 그의 인격적 자기실현이 촉진되고, 곧 보완된다는 것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의 의미도 공동의 자기실현 그 자체라기 보다도 공동의 자기실현을 보완하는 것에 있으며, 「모든 사회활동은 『보충적』이다」는 넬 브로잉의 규정은 이런 인간과 사회의 기본적 관계를 나타낸 것임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보충성원칙은 「질적으로 모든 공동체의 상위에 위치하는 인간의 인격적 본성(Personnatur)에 근거를 갖는다」. 인간은 자유로운 생활형성에 있어서 「자기의 개인적인 인격의 모든 힘을, 자기자신의 자주적인 결정이라는 척도에 따라서 전개시킬 권리를 갖는다」. 따라서 개개인에 대하여 자유로운 인격적 발전을 위한 여지가 있을 수 있는 한 많이 보증되어야 한다. 동시에 또한 사회는 개개인의 인격적 발전을 지원하여야 한다. 사회에 의한 「인격에 대한 부적절한 간섭을 억제할 것 그리고 동시에, 사회에 의한 인격의 보충」이라는 보충성원칙의 적극·소극의 양면은 인간존재 그 자체로부터의 당연한 귀결이다.42)

 

 

Ⅳ. 보충성원칙과 사회정책

 

앞서 개관한 보충성원칙이, 사회정책, 특히 사회보장적인 사회원조활동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것은 이미 명백할 것이다. 국가와 사회가 개개인의 생활형성에 관여하는 것은, 바로 보충성원칙에 따라 그 정당성의 근거를 부여함과 동시에 또한 의무화할 수 있고, 나아가 그 관여의 방법은 보완에 그쳐야 할 것으로 의무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이전의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와 같이 자유방임의 원칙하에서 국가간섭에 거부적인 태도를 갖는 입장이나, 집단주의적 사회주의와 같이 개인의 생활형성에 전면적 개입·통제를 긍정하는 입장도 동시에 부정되어야 한다.

  이들 양극의 입장이 부정된 후에 남는 문제는 사회정책에 관해서 국가와 사회가 완수하여야 할 역할은 어떠한 것인가라는 점이다. 또는 어떠한 원조가 개개인에게 제공되어야 하는 것인가. 이에 관하여 넬 브로잉은 국가의 과제를 모든 국민에 대하여 할 수 있는 한 사회적 보장상태(soziale Sicherheit)의 제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사회적 보장상태라는 것은 「개개인이 사회의 가운데에서 성원으로서 자립하고 자기를 주장·발전시킬 가능성을 보장하고 있음을 뜻한다」.43)

일반적으로 개개인은, 이러한 가능성을 스스로 창출하거나 확보할 수 없는가, 혹은 반대로 가지고 있더라도 항상 상실할 위험에 처하여 있다. 그 때문에 그것은 우선 사회, 특히 국가의 측면에서 개개인에게 부여되고 유지되어야 한다. 이런 가능성이 보장되어 있는 상태에서 비로소 개개인은 자유롭게 자기가 지닌 잠재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개개인의 자율적인 생활형성을 위한 전제이며, 기본적인 기회를 의미한다. 그래서 이러한 한계내에서 사회정책은, 개개인이 자력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을 떠맡는 것이며,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자유로운 생활형성에 봉사할 정당성과 필요성을 부여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사회에 의한 개개인에 대한 원조는 즉 그러한 때에는 그들이 자력으로는 행할 수 없는 것에 한정된다. 그러나 이 「행할 수 없는 것」또는 「행할 수 있는 것」의 판정이 사후적으로 행하여진다면, 사회정책에 관한 보충성원칙의 해석으로서 다음과 같은 입장이 발생하기도 한다. 요컨대 자조노력을 전형으로 하는 「개인적인 구제의 자원이 추측되어야 비로소 상위에 놓여진 단체는 원조를 행하는 윤리적 권리와 의무를 갖게 되는 것이다」.44) 다시 말하면, 이런 입장에 따르면 시간적인 순서에서 우선 최초로 개개인이 자기가 가진 모든 힘을 다하여야 하며, 전력을 하더라도 여전히 생활이 곤궁할 경우에 비로소, 개인에 대한 사회적 원조가 요청· 정당화된다. 이것은 보다 구체적으로는 여러 가지 사회급부에 대한 일반재정으로부터의 원조가 이루어 질 경우에, 개개의 케이스에 관하여 실제로 원조가 필요한 정도의 곤궁이 존재하는가의 여부체크, 즉 빈곤조사(Bedürftigkeitsprüfung)를 필요로하는 입장에 따르고 있다.45)

바꾸어 말하면 모든 국민은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에 참가함으로써 생계를 수립하여야 하며, 이 경쟁에 패배하거나 처음부터 참가할 수 없는 사람만이 사회적 구제의 대상으로 승인된다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 전후에 있어서 사회정책론의 분야에 대한 보충성원칙의 도입은 최초 이처럼 소극적 측면을 강조하는 해석에 기초하여 시작되었다. 이것은 다음의 장에서 문제삼을 신자유주의의 입장에서의 해석이며, 개개인의 자유와 자기책임을 중심원리로 한 사회질서를 변호하고, 전체주의로서의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의도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질서의 선택차원에서의 원칙적인 의도와 병행하여 보다 구체적으로는 사회적 원조의 급부에 엄격한 제한을 붙임으로써 공적인 재정부담을 경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전후의 경제재건에서 당면한 재정난에 직면하였던 당시 서독 대장성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였다.46) 개개인에게 사회적 원조를 제한한다는 재정적 관점에서의 보충성원리의 이용은 한편으로는 원칙에 대한 세간일반의 불신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러한 편의적인 해석을 비판하고 보충성원칙 그자체를 옹호하는 움직임을 강화시켰다.47)

넬 브로잉은 이러한 해석을 보충성원칙의 오해로서 멀리하고 있다. 개인의 활동과 사회의 활동의 시간적인 순서에 관해서는, 관계는 오히려 반대로 「인간이 자기의 모든 힘을 움직일 수 있기보다도 이전에, 사회는 일정한 방지책과 조치를 미리 해두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사회는 애초 자기의 힘을 발휘할 수 없거나 혹은 그의 노력이 어떠한 성과도 가져줄 수 없는 것이다」.48) 게다가 개개인이 자기가 지닌 모든 힘을 다한 끝에 생활이 곤궁에 처해져 있는 상황에서는 사회적 원조도 적절한 효과를 거둘 수는 없다. 사회적 원조의 의미가, 사람들의 자유로운 생활을 쉽게 하고 이러함으로써 그들의 인격적 자기실현을 촉진하게 된다면, 개개인이 모든 힘을 다 쏟아 곤궁상태로 빠져들 때까지 방치하고 그 위에 요원조성(Hilfsbedürftigkeit)의 조사라는 명목하에서 「개인 인격적이고 어쩌면 가장 내면적인 여러 사정의 조사」49)를 부과시킴은, 본래의 원조의 의미로부터 완전히 동떨어져 버린 것이다. 이처럼 생각한다면 원래 사회정책은 이미 나타난 곤궁과 폐해에 사후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발생을 예방하는 것을 스스로의 과제로 삼아야 한다. 의학용어로써 말한다면, 대증요법이 아니라 원인요법만이 사회정책이 갖추어야 할 방법이다. 게다가 산업화의 진전에 따른 대량의 임금노동자의 등장과 그들 생활의 불안정화는 이러한 방향으로의 사회정책의 개혁을 점점 더 필요하게 된다.

다른 한편 개개의 자유로운 생활형성을 쉽게 한다는 사회정책의 과제를 확대해석한다면, 보충성원칙은 본래 그것이 의미하고 있는 것과 다른 실천적 입장의 기초를 구축하기 위하여 전용될 위험이 발생하게 된다. 개개인의 생활을 아주 쉽게하는 모든 것을 보증하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라 생각하고, 이에 기초한 팽배한 요구가 국가에 대하여 제기하게 된다. 요컨대 「모든 개인에게 그가 필요로 하는가의 여부에 관계없이,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의 품위에 적합한 생계를 보장하기에 충분한 자금을 경상적으로 지급하는 방법으로써, 일반적 국민부양(allgemeine Volks- oder Staatsbürgerversorgung)을 도모하는 사상」이 보충성원칙을 근거로 하여 주장되고 있다.50)

이러한 일반적 국민부양의 사상이 보충성원칙의 본래의 의미로 적합하지 아니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보충성원칙의 적극적 측면만을 끄집어내어 다른 것으로부터 분리하여 일면적으로 강조하는 해석에 기초를 두고 있다. 보충성원칙은 모든 개인의 자유로운 생활형성을 돕고, 그 자발적인 생활형성을 위하여 가급적 광범위한 여지를 보증하는 의무를 국가에 부과한 것이다. 곧 이러한 원조가 행하여 질 때에는 개개인의 측에서 자주성, 자기책임에 대한 의욕이 불가결의 요인으로 된다. 따라서 국가에 의한 원조는 어디까지나 개개인의 자립성을 회복, 유지, 고양이라는 면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그들의 생활배려의 책임을 전적으로 떠맡는 식으로 대행하여서는 아니된다. 그것은 원조이지만 자조를 위한 공동체의 원조(Gemeinschaftshilfe zur Selbsthilfe) 라는 원칙을 바탕으로 행하여져야 할 것이다.51)

이렇게 사회정책의 영역에 한정하여도, 보충성원칙은 적극·소극의 어느 것이든 한쪽에 치우쳐 주장될 위험을 갖고 있지만, 당시 서독의 역사를 보면 이 위험성이 상당히 현실로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독일의 경우,戰後 우선 주장되었지만 신자유주의의 입장에 선 소극적 해석이었던 것을 이미 살펴보았다. 이에 대하여 후에 나타난 신사회주의의 이념에 가까운 독일사회민주당(SPD)이 정권을 잡은 1967년 이후, 보충성원칙은 복지국가건설을 위한 원리적 기반으로써 급속히 적극적으로 해석되게 되었다. 그렇지만 1970년대의 후반부터 세계 각국에 있어서 소위 복지국가의 위기가 顯在化함에 따라 종래의 사회보장도 다시 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擴張路線으로부터 整理統合路線으로의 전환을 피할 수 없게 됨으로써, 보충성원칙의 해석에도 미묘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곧  독일에서의 「새로운 사회문제」의 구상화가 그 준비단계에 해당하고 이를 결정적으로 한 것이, 1982년의 콜(H.Kohl)정권의 탄생이었다. 그는 정부성명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시민생활에 있어서 보충성원칙의 재생을 호소하였다. 「우리들은 시민으로부터 많은 자조와 상호근린원조를 요청받는다. 이를 위한 정책적 구조원칙은 보충성이다. 이는 때때로 보다 작은 공동체의 우선권을 요구한다. 적어도 작은 공동체가 할 수 있는 것을 보다 큰 공동체가 그것을 문제삼아서는 아니된다. 가족, 이웃, 민간조직, 자발적 자조집단, 사회봉사는 큰 익명의 제도가 할 수 있는 것보다도 한층 더 많이 시민으로서의 의식과 책임을 만들어 낼 수 있다.」.52) 이 이후 인구의 고령화에 수반하여 고령자간호를 시작으로 하는 노인복지의 중요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무엇보다도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자조의 회복의 필요성이 다양한 형태로써 주장되고 있다. 사람들의 자조로 향한 의식을 높이는 기치하에서는 상당한 영향을 갖지만, 이러한 움직임이 사회정책의 기본구조를 크게 수정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Ⅴ. 맺음말

 

독일의 경우와는 달리, 근대이후 국가로부터의 자유로운 사회를 경험하지 못한 우리의 역사적 현실에서 볼 때 보충성원칙에 대한 개념자체가 우리의 경우 무척이나 새롭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53)

 

 

<Zusammenfassung>

 

 

Subsidiaritätsprinzip im System des Sozialrechts

- im Hinblick auf Bundesrepublic Deutschland -

 

 

    Se-Kyu  Kim*54)

 

 

Subsidiaritätsprinzip im System des Sozialrechts stellt ein Grundsatz dar, der Staat oder die Gesellschaft den Einzelnen in Fällen eine subsidäre Hilfe zu leisten hat, in denen die Individuelle mit eigenen Mitteln auf bestimmten sozialen Lebensrisiken reagieren müssen, jedoch nicht in der Lage sind, solche Risiken eigenfähig zu bewältigen. Das Subsidiaritätsprinzip wird begriffen als ein der fundamentalen Grundsätzen in den Systemen des sozialpolitischen Bezugsbereichs, die zur Erreichung der sozialpolitischen Ziele dienen, samt z.B. Solidaritätsverantwortung, Eigenverantwortungsprinzip, Prinzip der Verwaltungsautonomie, Ordnugsharmonieprinzip. Dieser Grundsatz stammt aus der Auseinandersetzung in der Nachkriegszeit in Deutschland, wobei die meisten Wissenschafter im Zusammenhang mit derzeitiger diskutierter Programmierung der Sozialpolitik fast einstimmig vertreten haben. Von gesamten Fendern des Sozialrechts findet sich sein Hauptanwendungsbereich vor allem im System des Sozialleistungsrechts.

Aufgabe dieser Darstellung liegt in der Vertiefung des sozialrechtlichen Subsidiaritätsprinzips unter Berufung auf dessen Befürworter. Dabei konzentriert sich die Hauptproblematik der Arbeit darauf, wie man mit der Anwendung des sozialrechtlichen Ultima-ratio-Prinzips auf die Frage, die Individuelle und Gesamtheit miteinander verbunden gestellt wird, bezüglich der sozialpolitischen Lehren beantworten kann. Das heißt, wie die Sozialpolitik auf der Grundlage der Förderung der sozialrechtlichen Programmen in das Sozialrecht eingeordnet werden kann. Allerdings bietet sich das Subsidiaritätsprinzip im Sinne des Sozialrechts seiner Natur nach nicht abgeschlossenen Lösungsweg, so daß man schlicht durch die Gesetzesauslegung nicht erreichen kann. Denn die Auslegung des Subsidiaritätsprinzips kann aufgrund der zeitgemäßigen Interpretationstendenz in Hinblick auf die soziale Exstenz und wirtschaftliche Entwicklungslage in bestimmtem Maße umgewandelt werden.

 

 

각주

* 동아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법학박사.

1) 홍완식,헌법과 사회보장법에 있어서의 보충성의 원리,공법연구 제28집 제4호 제2권,한국공법학회,2000.6,184∼186면 참조.

2) K. Jantz , Personalität, Subsidiarität und Solidarität in der sozialen Sicherherit, in : A. Blind, Chr. v. Ferber, H.?J. Krupp(hrsg.), Sozialpolitik und persönliche Existenz, Festgabe für Hans Achinger, Berlin 1969, S. 121.

3) Vgl. G. Albrecht, Gesellschaftspolitik-Sozialpolitik-Volkswohlfahrtspolitik, in: Schmollers Jahrbuch für Gesetzgebung, Verwaltung und Volkswirtschaft, Ja. 81. Heft 4-6, 1961, S. 18.

4) O. v. Nell?Breuning , Erwägungen zum Subsidiaritätsprinzip, in : ders., Wirtschaft und Gesellschaft heute, Bd. I, Freiburg in Br. 1956, S. 68.

5) Vgl. K. Elsholz , Die Sozialreform im staatspolitischen Zusammenhang, in : Sozialer Fortschritt, Jg. 5, 1956, S. 10.

6) Vgl. A. Weber u. E. Heimann , Grundlagen und Grenzen der Sozialpolitik, in : Schriften des Vereins für Socialpolitik, Bd. 182 (1930).

7) 野尻武敏, 經濟體制の接近?, 晃洋書房, 1975, 36페이지 이하를 참조.

8) L. Preller , Idee und Wirklichkeit eines sozialen Rechtsstaates, in : Sozialer Fortschritt, Jg. 8 (1959), S. 122, ders ., Sozialpolitik, Theoretische Ortung, Tübingen u. Zürich 1962, S. 146.

9) L. Preller , Sozialpolitik, ebenda, S. 217.

10) J. Messner , Gemeinwohl, Idee, Wirklichkeit, Aufgaben, Osnabrück 1962, S. 31

11) Vgl. O. v. Nell-Breuning , Solidarität und Subsidiarität im Raume von Sozialpolitik und Sozialreform, in : E. Boettcher (hrsg.) , Sozialpolitik und Sozialreform, Tübingen 1957, S. 216.

12) 野尻武敏, 選擇の時代, 新評論, 1980, 第12章 참조.

13) G. Weippert , Das Jahrhundert zwischen Individualismus und Kollektivismus, in : der.,  Jenseits von Individualismus und Kollektivismus, Studien zum gegenwärtigen Zeitalter, Düsseldorf 1964, S. 15 ff.

14) Ebenda, S. 16 ff.

15) 이에 관해서는 예컨대, 野尻武敏, 人間と社會, ドン·ボスコ社, 1973, 67페이지 이하를 참조.

16) 실제 1990년 10월 서독에 통합이 되기까지 동독에서는「모든 사회정책의 시책은 사회주의적 인간상을 지향하였다. 즉 그것들은 전문적 자격을 지닌 활동적인 사회주의적 인간을 형성하고 그 공헌의욕을 북돋우는」것이었다. Peterhoff, R. , Sozialpolitik-Rahmenbedingungen und Strukturen, in : Hamel, H. (hrsg.) : Bundesrepublik Deutschland-DDR, Die Wirtschaftssysteme, Soziale Marktwirtschaft und Sozialistische Planwirtschaft im Systemvergleich, München 3. Aufl., 1979, S. 290.

17) O. v. Nell-Breuning , a. a. O., S. 218.

18) L. Preuning , a, a, O., S. 6.

19) J. Messner , Gemeinwohl, a. a. O., S. 55 f.  

20) O. v. Nell-Breuning , Solidarität, a. a. O., S. 217.

21) Ebenda, S. 213.

22) Ebenda, S. 214.

23) Ebenda, S. 213.

24) J. Messner , Gemeinwohl, a. a. O., S. 22 f.

25) O. v. Nell-Breuning, a. a. O., S. 217.

26) G. Weippert, a. a. O., S. 26.

27) O. v. Nell-Breuning , a. a. O., 217.

28) 野尻武敏, 前揭書 주)15 , 25페이지를 참조.

29) J. Messner , a. a. O., S. 57.

30) O. v. Nell-Breining , Wesens- und Ordnungsbild der menschlichen Gesellschafts, a. a. O., S. 20.

31) Ebenda, S. 20.

32) O. v. Nell-Breunung , Solidarität, a. a. O., S. 217.

33) A. Beckel , Subsidiaritätsprinzip, in : Katholisches Soziallexikon, Innsbruck, Wien, München 1964, S.1206.

34) F.-W. Dörge u. K. Nöldner , Soziale Sicherung in der industriellen Gesellschaft, in : H.-D. Ortlieb u. F.-W. Dörge (hrsg.) , Wirtschafts- und Sozialpolitik, Opladen, 4. Aufl., 1969, S. 172.

35) 이에 한해서 共同善과 私的善 혹은 個別善은 어떠한 대립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양자가 대립하는 경우에는, 연대성원칙에 의하면, 共同善이 우선되는 논리도 또한 아니다. 「전원이 하나의 보트에 있다」라고 비유를 하지만, 폭풍이 있어서 보트가 전복하면 전원이 사망하기 때문이며, 私的善을 희생하는 것도 共同善의 실현을 꾀해야 하기 때문이다.  개개인이 전체의 부분을 이루는 것에서 볼 때 당연한 귀결이다. 共同善의 우위의 원칙에 대해서는, 野尻武敏, 人間と社會的全體-聖ト??マス社會論の1章-, 神戶大學經濟學硏究年報, 3호, 1956, 184페이지 이하를 참조.

36) O. v. Nell-Breunung , Solidarität, a. a. O., S. 222.

37) A. Beckel , Subsidiaritätsprinzip, a. a. O., S. 1206.

38) K. Elsholz는, 이 원칙이 옛날부터 크리스트교의 전통 가운데서 보호 발전된 것이며, 더욱이 그 기원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시대로 소급한다고 한다. K. Elsholz , Die Sozialreform im staatspolitischen Zusammenhang, a. a. O., S. 247. 하지만 이 回章은, 무엇보다도 핍박하는 집단주의의 위협에 대한 크리스트교회의 우려를 단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39) O. v. Nell-Breuning , Erwägungen zum Subsidiartätsprinzip, a. a. O., S. 68. 요컨대 回章에는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개인이 그 발의와 자력에 의해서 달성할 수 있는 일을 빼앗아 공동체에게 이관할 수 없도록 하였다. 또한 하급단체로부터 그가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을 빼앗아서 이를 가지고 확대해서 고차적 집단에 托함은 부정을 범하는 것이며, 사회질서를 심하게 손상하게 되는 亂이다. ……」. 岳野慶作 譯, クアドラゼジモ·アンノ??社會秩序の再建-, 中央出版社, 1966, 99페이지.

40) 보충성원칙의 이런 정식화는 B. Bender에 기초하고 있다. B. Bender , Rechtsstaat und Sozialstaat. Zur Dialektik des heutigen Verfassungsstaats, in : G. Briefs (hrsg.) , Laissez-faire-Pluralismus, Berlin 1966, S. 357.

41) Ebenda, S. 357. 예컨대 신자유주의의 대표자인 오이켄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보충성원칙과 경쟁질서가 양립할 수 있음은 명백하다. ……경쟁질서는, 보충성원칙이 실현될 수 있는 유일한 질서이다.」 이 주장의 당부는 별도로 하여도, 그가 이 원칙을 적극적으로 승인하고 있음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W. Eucken , Grundsätze der Wirtschafts politik, 4. unveränderte Aufl., Tübingen u. Zürich 1967, S. 348. 또한 신사회주의에 가까운 입장에서의 프렐러는 이 원칙을 「종파를 초월한 원리」라 부르고, 오늘날 어떠한 사상적 입장에 있어서도 무시할 수 없는 원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L. Preller , Konfessionalisierte Sozialreform?, a. a. O., S. 12

42) A. Beckel , Subsidiaritätsprinzip, a. a. O., S. 1205.

43) O. v. Nell-Brenuning , Erwägungen zum Subsidiaritätsprinzip, a. a. O., S. 69.

44) K. Elsholz , Die Sozialreform im staatspolitischen Zusammenhang, a. a. O., S. 250.

45) O. v. Nell-Breuning , Bedürftigkeitsprüfung oder Bedürfniß ?, Eine Systemfrage der Sozialversicherung, in : Sozialer Fortschritt, Jg. 5, 1956, S. 8.

46) W. Auerbach , Vorausschauende Sozialpolitik, in : ders., Beiträge zur Sozialpolitik,Darmstadt, S.90 f.

47) 아우러바흐(W. Auerbach)는, 사회정책론에의 보충성원칙의 도입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지만, 그가 비판한 것은 그것의 도입의 방법이었다. 요컨대 현실적 상황의 변화를 고려하지 아니하고 원칙을 경직적으로 받아들여, 거기서부터 사회급부의 제한을 이끌어 내는 태도를 비판한 것이다. 그는 넬 브로잉의 해석에는 많은 의의를 인정하고 있다. W. Auerbach , a. a. O., S. 90 f.

48) O. v. Nell-Breuning , Solidarität und Subsidiarität, a. a. O., S. 221.

49) L. Preller , Das Bild des Menschen in der Sozialpolitik, in : A. Blind u. a. (hrsg.) , Sozialpolitik und persönliche Existenz, a. a. O., S. 221.

50) O. v. Nell-Breuning , a. a. O., S. 222. 넬 브로잉은, 원조라고 하는 형태의 국가에 의한 개개인의 생활형성에 대한 개입이 확대되고, 그것이 집권적으로 국가에 의해서 관리되도록 된 상황을 다음과 같이 통열하게 비판하고 있다. 「가축의 경우에는, 생활이 가급적으로 쾌적하게 이루어진다면, 어쩌면(?) 아무 것이라도 좋은 것이 실행될 것이다. 좋게 예측된 운동장이 정비되고, 모든 고통스러운 작업이 제거된다면, 가축은 양호하고 풍성하게 사육된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에는, 이것에 의해서 어떠한 좋은 것도 실현되지 아니한다. 확실히 그 반대이다. 인간은 이것에 의해서 품위를 빼앗기고, 그와 같이 다루어짐으로써 육체와 정신을 손상받게 되고, 나아가 충분한 보살핌을 받을 수는 있다.하지만 이 경우 인간은 고도의 활동능력을 지니지 못한 가축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O. v. Nell-Breuning , Erwägungen, a. a. O., S. 72..

51) Ebenda, S. 71.

52) Zitiert von M. Bellermann , Subsidiarität und Selbsthilfe-Entwicklungslinien in der Sozialstaatsdiskussion und heutige Aktualität, in : R. G. Heinze (hrsg.) , Neue Subsidiarität : Leitidee für eine zukünftige Sozialpolitik ?, Opladen 1986, S. 105.

53) 홍완식, 전게논문 주)1, 188면.

* Professor der Juristischen Fakultät an der Dong-A Universität, Dr. i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