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응과 인간소외에 관한 연구

-브레히트의 『남자는 남자다』와 한트케의 『카스파』를 중심으로-

 

 

이 상 욱

 

 

I. 서  론

 

20세기에 와서 인간이 즉물화Verdinglichung되고 사회에서 고립되면서부터 자신도 모르게 사회에서 자기소외Selbstverfremdung에 빠지게 된다. 이런 인간소외는 니체 이후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후 사회관계 속에서 고립되면서 대화단절에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이와같은 상황에서 독일에서는 표현주의를 거치면서 인간이 사회를 적응해가느냐 거절하느냐 하는 태도결정에서 방향성을 상실하고 한편으로는 자신을 포기하고 사회에 적응해 감으로써 개성상실로 나타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집단 속에서 개인이 대중이나 집단으로 빠지지 않고 그 집단으로부터 해방되어서 개인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면서 개인의 위치정립을 위한 노력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브레히트는 『남자는 남자다 Mann ist Mann』에서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대상을 반영하여 그로테스크하게 묘사하는 하나의 희극을 만들었다. 그는 그로테스크의 원칙을 이 작품에서 실현시키면서 인간행동에 대한 놀라움과 웃음을 유발시킴으로써 그의 시대상을 교정하고자 교육극적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브레히트는 이 작품에서 앞서 발표한 바알Baal과는 전혀 다른 인물로서 겔리게이Galy Gay를 구상했다. 브레히트는 여기서 한 개인이 집단 사회 속에서 그 개체의 존엄성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며 그 집단의 일원으로 역할을 어떻게 갖게 되는가 하는 문제를 잘 구상해 내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 겔리게이를 통해서 그가 한 집단에 우연히 소속되어 가면서 그의 개인의 정체성을 서서히 상실하고 새로운 집단에서 새로운 자기의 역할을 갖게되는 것을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는 인간의 변신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이고 폭넓은 이해를 위해 겔리게이와는 반대 반향으로 변신해 가는 페어촤일드Fairchild의 변신을 묘사함으로써 변신과 인간상실, 변신과 인간회복이라는 반대감정병존Ambivalenz의 양면성을 설명해 갔다.

페어촤일드는 군인들에게 훈련규칙Exerzierreglement을 부여하고 동료들을 잘 훈련시켰던 군인으로서  그의 신분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자였으나 과부 벡빜BegBig에게 유혹되어 그의 군복을 벗어 던지고 시민으로 변신해 갔다. 즉, 겔리게이가 한 평범한 부두 하역군에서 군인으로 변해 가면서 그의 개인 상실과 집단 속에서의 그의 권력획득의 상관관계를 설명하고 있다면 겔리게이와는 역방향으로 변신한 페어촤일드의 본능회복과 권력관계의 함수관계가 나타난다. 이와같은 함수관계에서 나타난 한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적응과의 상관관계는 또한 한트케의 『카스파Kaspar』에서 나타난 함수관계에서도 보여지고 있다.

카스파가 세상에 나타나면서 본래의 자신을 상실하고 이 세상의 언어를 획득함으로써 이 세상에 적응해 가는 과정에서 언어의 습득과 인간상실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한트케는 이 작품에서 카스파의 언어습득과정을 극장연극론의 연출로1) 비트겐슈타인 Wittgenstein의 언어철학 이론을 증명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는 극 전체에서 일종의 언어유희를 통해 한 개인이 어떻게 언어를 습득하고 언어습득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려 한 것이다. 그는 근본적으로 언어에 대한 이해를 언어의 영향력과 관련하여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바, 인간이 언어를 통해 사회집단에 소속해 가는 과정을 세상적응의 측면을 넘어서 자기상실 내지는 인간소외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한트케는 이와같은 사회적응에서 나타나는 언어의 영향력을 언어폭력이라고 까지 하면서 이를 작품에서 확증해 간다. 그는 "우리가 전에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받아 들여왔던 이 폭력기능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시켜 준다는 것"2)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생각했다.

한트케의 언어관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에서 절대적인 영향을 입은 바, "언어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3)라는 견해에서 언어를 인간실존의 본질로서 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트케의 언어철학에 대한 논의는 학계에서도 이미 검토된 바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다만 언어습득을 통한 사회집단으로의 적응이 한 개인의 인간상실과 어떤 함수관계가 있는가를 규명하여 앞서 설명한 브레히트의 작품과 비교 분석하고자 한다.

그것은 브레히트에 있어서도 연극에서 나타난 소외효과를 통해 사회인습적 이념이 어떻게 한 개인을 소외해 가는가를 보여줌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객관적 비판의식을 갖게함과 같이 한트케에 있어서도 언어의 영향력에 대한 의식환기는 인간소외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을 그의 극미학으로 삼고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브레히트의 경우와 한트케의 경우는 그 의도하는 바가 약간의 다른 방향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II. 본  론

 

1. Galy Gay와 Fairchild의 변신에 따른 개인상실과 사회적응

 

브레히트는 『남자는 남자다』라는 작품의 구상을 1919년부터 『갈가이Galgei』라는 작품의 제목으로 구상하고 있었으나 1925년 베르린 연출에서 이 작품의 제목을 『남자는 남자다 Mann ist Mann』로 고쳐 상연했었다.4)

원래 갈가이는 Augsburg의 암거래상의 한 그룹에서 버터 장사꾼인 피크가 없어지자 그들은 경찰을 두려워 한 나머지 우연히 아우구스부릌의 소시장 축제Plärrer에서 그네를 타고있는  익살스런 모습의 목수인 사나이 Joseph Galgei를 발견하고 그에게 그의 익살스런 모습 때문에 다른 사람의 역할을 맡도록 강요하여 그에게 피크의 역할을 맡게 했다. 그들은 그에게 피크의 신분증을 줌으로써 비록 그가 내의와 옷은 갈가이의 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로 하여금 피크의 역을 하게 한 것이다. 본래 갈가이는 중심이 없고 물과 같아서 모든 형태로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는 특성을 지녔었다. 그는 어떤 고정된 형태를 만들지도 않으며 삶의 의미나 비젼을 갖지 않는 고기 덩어리Fleischklotz와 같은 존재였다5)

여기서 본래 갈가이의 형상은 범죄적이며 비사회적이었는데 브레히트가 이 작품에서 Galgei의 형상을 합법적인 의미를 지니는 형상으로 변형했었다. 전쟁 중에는 군인은 살아남기 위한 예술가Überlebenskünstler가 되어야 하는 만큼 브레히트는 이 작품의 주인공의 모습에서 그 형상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브레히트는 이 과정에서 갈가이 의 수동적인 적응을 요약하는 말로서 "남자는 남자다"라는 말로 표현하고, 갈가이의 범죄적이고 반사회적인 문제를 합법화된 범죄의 사회적 인물인 겔리게이의 형상을 통해 묘사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브레히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목화가 필요하면 티벹을 가야하고, 양털이 필요하면 파미르에 가야한다."6)

Wenn sie Baumwolle brauchen, dann ist es Tibet, und wenn sie Schafwolle brauchen, dann ist es Pamir

이 작품에서 형상화된 겔리게이의 모습은 활력있는 인물로서 순응을 잘 하는 사람이다. 그가 살아남는 기술은 뛰어나며 그가 합목적적으로 시대조류에 적응하고 또 이용하는 태도는 매우 교훈적이다.

겔리게이는 본래 부두의 하역군으로서 어느날 아침 생선 한 마리를 사러 가다가 4인조 기관총 부대를 만난다. 이 부대는 맥주를 사기 위해 사원을 털 계획을 세워 그 사원으로 침입하다가 한 동료 제라이어 짚Jeraiah Jip을 잃게 된다. 그들은 매우 당황해 하던 중 우연히 겔리 게이를 만나 그가 우선 잃어버린 제라이어 짚 대신에 군점호에 참석해 줄 것을 부탁한다. 겔리 게이는 몇개의 담배와 몇 병의 맥주에 자신을 팔아 먹을 수 있는 위인으로서 그들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자신을 팔기로 마음 먹는다. 그는 실로 "거의 모든 사업에 적합한 남자"7)가 된 것이었다.

그는 제라이어 짚의 신분증을 얻고 대신 역할을 훌륭히 해 내자 이제는 스스로 한 발자국  더 나아가서 악한 군인의 역할을 맡고 그 역할로 인한 이익을 맛보자 그 자신이 그 역할을 즐기기까지 한다.

 

"겔리게이: (그의 마지막 접시를 가지고 짚에게 간다.) 당신 잘못 생각하고 있어.(다른 사람에게 돌아가서) 그 사람 머리가 돌았어. (짚에게) 오랜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죠. 물 한 컵 줄까? (...)(짚에게) 물론 당신 신분증이 필요하겠지. 누가 당신더러 신분증없이 여기저기 돌아 다니라고 했어?"8)

Galy gay( tritt mit seinen letzten Teller auf Jip zu): Du mußt dich da irren. (Zurück zu den andern): Er ist krank im Kopf.(zu Jip) Haben Sie lange nichts gegessen_ Wollen Sie ein Glas Wasser haben? (...) (zu Jip): Natürlich brauchen Sie einen Paß. Wer wird Sie denn ohne Paß herumlaufen lassen?

 

그에게는 군대훈련규범이 엄격한 자기 훈련의 교범이 될 뿐만 아니라 자기에게 군인으로서 긍지와 힘을 가지게 하는 규범이 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고로 그에게 그를 군인으로 인정하는 신분증이 더없이 소중하게 되자 모든 개인적인 것이 사라지게 되고 오직 집단에서 개인이 아닌 신분증이 중요한 것으로 되었다.9)

 

" 우리아: 남자란 언제던지 대치될 수 있어 그런데 신분증이 없으면 거룩한 것이라곤 없어."10)

Uria: Ein Mann kann jederzeit ersett werden, aber es gibt nichts Heiliges mehr, wenn es nicht ein Paß ist.

브레히트는 여기서 개인을 물화하고Verdinglichung 개성을 말살하며 자본주의적 개념의 "인간자원"으로 계산하는 군대의 비인간성을 고발하고 인간소외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다. 그는 특히 전쟁에서 수익자와 희생자로 구분하고 전쟁을 일으키는 수행자들은 그들의 이익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전쟁을 치르는 자는 집단에서 개인을 상실하고 다만 전쟁의 한 도구에 불가하다는 부정적 생각을 했었다.

물론 여기서 브레히트의 생각은 그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니다. 인간이 개성을 상실하고 집단의 한 도구로만 가치가 전락된데 대해서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지만 겔리게이가 조직을 이용하고 드디어는 조직을 잘 적응해 가는데는 상당히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브레히트는 이것을 역으로 페어촤일드의 변신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겔리게이가 군인으로 변신한 것과 군인 페어촤일드가 시민으로 변신한 것은 상호 역방향으로 묘사되고 있다. 브레히트는 이들의 변신의 모티브를 "비"der Regen로 설명하고 있다. 제라이어 짚이 사원을 털기 위해 들어갔다가 주지의 손에 붙잡히게 된 원인이 비때문이라고 한다면, 군인 페어촤일드가 술집 과부 벡빅에게 대한 성적충동을 일으키게 된 동기도 비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겔리게이가 자신의 이름을 상실하게 될 때  그는 담배와 맥주 몇병의 유혹으로 인한 것이었으나 그가 이름을 상실한 대신에 얻게되는 집단의 소속감과 더불어서 군대의 특권은 그에게는 유쾌한 것이었다. 그러나 페어촤일드가 긍지를 갖게 되었던 "독종 5인방"이란 이름을 상실하게 된 것은 과부 벡빅의 유혹 때문이었지만 그것은 그에게 유쾌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과부 벡빅의 충동으로 인해 "독종 5인방"이란 이름을 상실한 후 자신이 엉망진창이 됨을 느끼게 되었다. 늦게 그는 이것을 깨닫고 자신의 성기를 권총으로 거세하고 다시 성적충동을 말살하고 군인이라는 이름을 다시 얻고자 몸부림쳤기 때문이다.

 

" 페어촤일드: (...) 네년은 고모라와 같은 년이야! 내가 독종 5인방이 되지 못하게 네년이 나에게 무슨 짓을 했어? 꺼져라! (...) 이 세상의 어떤 여자도 나에겐 한 푼의 가치도 없어 그건 간단해. 그 땐 내 파이프에 불이 꺼져서는 안돼. 나는 내 책임을 떠맡아야겠어. 난 내가 독종 5인방으로 남기 위해 내 책임을 맡겠어. 총을 쏴라구. (한 방의 총을 쏜다)

겔리게이: (...) 저자가 방금 성기에 총질을 했어."11)

Fairchild: (...) du Gomorrah! Was hast du mit mir gemacht. daß ich nicht mehr der Blutige Fünfer bin? Geh weg du!

(...)

Mich kostet auf dieser Welt kein Mädchen mehr ein Pfennig. So. Das ist ganz einfach. Dabei darf mir noch nicht einmal die Pfeife ausgehen. Ich übernehme die Verantwortung. Ich muß es tun, damit ich der Blutiger Fünfer bleibe. Gebet Feuer! (Ein Schuß fällt)

(...)

Galy Gay: (...) Er hat sich eben sein Geschlecht weggeschossen!

겔리게이가 큰 거짖말쟁이로서 기회주의자로서 그의 상실된 개인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신분을 즐기고 있는 반면에 페어촤일드는 인간에게 가장 충실한 본능에 순응함으로써 인간 본래의 본질에 이를 수 있었지만 신분에 따른 이익을 상실한 채 허약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겔리게이는 새시대의 변화의 가치척도에 대한 예언자적 이해를 가지게 된 반면 페어촤일드는 주어진 상황을 능동적으로 적응해 가지 못하고 새로운 환경에 대한 생산적인 적응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브레히트는 이와같은 반대감정병존Ambivalenz을 통해 그의 모든 작품에서와 같이 이 작품에서도 개발적인 해석을 열어 놓은 것이다.

이와같은 사실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브레히트는 겔리게이가 제라이어짚이 되고 뒤에 제라이어짚이 귀대하자 자신의 신분증을 대신 내어주고 그는 제라이어짚의 신분증을 통해 자신이 군인이 된 것을 기뻐하는 것으로 묘사했다. 무엇보다도 겔리게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데 대해서는 후회함이 없이 오히려 자기의 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자기처럼 개성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보고 기뻐했던 것이다.

 

"겔리 게이: 그런데 티벧으로 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지?

벡빅: 십만 정도가 될거요! 한 사람으로는 아무 것도 안돼요.

겔리 게이: 사실인가? 십만이라면 그들은 무얼 먹나?

벡빅: 말린 생선과 쌀을 먹을거요.

겔리 게이: 모두가 같은 것인가?

베빅: 그럼요.

겔리 게이: 사실인가 모두가 같다는 것이?

벡빅: 그들은 모두가 침구용 곳자리를 가지고 있어요. 그들 각자는 여름용 삼베 이불을 가지고 있는걸요.

(...)

겔리 게이: 여자들도 같은가?

벡빅: 이제 당신이 누군지 제발 좀 아시구려!

겔리 게이:내 이름은 제라이어 짚이지.(그는 새 사람에게 달려가서 그들에게 신분증을 보인다)" 12)

 

Galy Gay: Und wie viele gibt es hier, die nach Tibet fahren?

Beg Bick: Hunderttausend! Einer ist keiner.

Galy Gay: Nicht wahr? Hunderttausend! Und was essen sie?

Beg Bick: Gedörte Fische und Reis

Galy Gay: Alle das Gleiche?

Beg Bick: Alle das Gleiche.

Galy Gay: Nicht wahr? Alle das Gleiche.

Beg Bick: Sie haben alle Hängematten zum Schlafen; Jeder seine eigene und Drillichanzüge für den Sommer.

(...)

Galy Gay: Frauen die Gleiche.

Beg Bick: Und jetzt weißt du doch auch, wer du bist?

Galy Gay: Jeraiah Jip, mein Name. (Er läuft zu den dreien und zeigt es ihnen im Paß.)

 

이와같은 사실에서 브레히트는 개인의 상실과 정체성 상실에 대한 일차적인 경고를 넘어서 오히려 주인공의 이름 상실을 통해 적극적으로 새로운 환경에 대한 시대적응을 할 것을 시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브레히트는 한트케와는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다고 하겠다.

 

2. Kaspar의 사회적응과 인간 소외

 

한트케 문학의 모티브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상실의 또 다른 면을 보여 주면서 잃어버린 자아를 추구하기 위한 사고확장의 형식을 모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면에서는 한트케는 브레히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고백하고 있다.

 

"Brecht ist ein Schrifsteller, der mir zu denken gegeben hat, er hat Fuktionsmöglichkeiten der Realität, die einem vorher glatt aufgingen, zu einem Denkmodell von Widersprüchen arrangiert. Dadurch hat er es möglich gemacht, daß den Funktionen der Realität, die einem früher oft wie einglattes Funktionieren erschienen waren, beweiskräftig, mit Brechtschen Widerspruchsmodellen, widersprochen werden konnte."13)

 

한트케는 확장된 사고를 위한 형식추구에 몰두하면서 무엇보다도 언어현상에 몰두했다. "언어가 유리와 같아서 그것을 통해서 사물을 오류없이 바라 볼 수 있다"14)는 샤르뜨르의 주장에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언어와 인간소외의 측면에서 소위 언어극을 만들었다. 그가 언어가 어떻게 인간을 소외하고 있는가를 확인하고자 했던 최초의 작품이 『카스파Kaspar』였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서 철학적인 질문 "누가 누구를 말하게 하는가? 내가 언어를? 아니면 언어가 나를 말하게 하는가?"15)을 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익명으로 억압하는 언어에 의해 사고의 조절을 받게 됨으로써 인간이 자신으로부터 떠나 익명의 사고를 표현함으로써 인간은 자신으로부터 소외되고 인간이 말을 할 때 "어떤 새로운 것이 말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어떤 것은 표면적인 현상일 뿐이다."16) 그러므로 표현된 언어에서 실재Realität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대용실재Ersatz-Realität17) 즉, 소외된 현상만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트케는 이와같은 언어의 현상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해 내기 위해 카스파라는 인물에게 언어를 주입시키고 그에 따른 카스파의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Kaspar의 모티브를 안젤롬폰 포이어바하의 보고서에서 찾은 카스파하우저에서 취하고 있다. 한트케가 카스파 하우저에서 극의 모티브를 취하고 있는 것은 그에게서 언어습득의 가능성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한트케는 카스파라는 한 광대를 세상에 적응시켜 가게 하는 과정을 언어습득의 과정을 통해서 보여 주고 있다. 한트케는 여기서 카스파의 언어습득과 세상의 적응 사이에 함수관계의 모델을 제시한 것이다. 즉, 카스파의 사회적응이 어떻게 카스파의 자아상실 즉, 인간소외로 나타나는가를 도식적으로 설명할 수 있도록 했다.

언어습득과 세상환경의 적응 사이의 함수관계는 세상이 언어로 대변되는 바, 언어는 세상의 판박이식 규범등에 의해서 조정되기 때문에 언어습득이 세상의 환경에 구속되게 한다는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린아이에게 언어를 가르친다는 것은 이들로 하여금 세상적응의 가장 본질적인 방법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언어습득은 세상적응과 더불어서 인간의 문화나 물질문명을 존속케 하는 사회행위인 동시에 이와는 정 반대로 "언어가 인간을 해방시키는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예속시키는 수단이 되어 인간으로 하여금 조작됨이 없이 사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를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18)

요컨데 언어는 한편으로 세상을 적응하고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이요,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을 상실케 하는 원인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카스파가 무대 위에 나타나는 모습은 완전히 무질서한 상태, 전혀 세상에 적응되지 못한 상태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카스파는 움직인다. 한쪽 손은 계속 모자를 잡고 있다. 그가 걷는 모습은 매우 기계적이다. 인위적이고, 그런 모습은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모습이다. 그는 물론 꼭두각시처럼 걷는 것도 아니다.그의 걷는 모습은 여러 가지의 걷는 모습을 계속적으로 바꾸면서 걷는 모습이다."19)

Er(Kaspar) stezt sich in Bewegung. Die eine Hand hält noch immer den Hut fest. Seine Art zu gehen ist eine sehr mechanische, künstliche, eine, die es nicht gibt. Er geht freilich auch nicht wie eine Marionette. Seine Gangart ergibt sich aus dem dauernden Wechsel von verschiedenen Gangarten.

 

카스파의 무대 등장이 부자연스러웠을 뿐만 아니라, 무대등장이 커텐의 틈이 열리자 전혀 우연이었으며 무대 위에서 걷거나 앉으거나 하는 행동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고 우연적이었고 혼란스런 것이었다. 카스파는 전혀 이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상태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그의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20) 그의 행동에 있어서 더욱더 혼란을 가져왔을 뿐이다. 그가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그가 인간의 말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 것에 불과했다.그러나 그의 언어는 세상에 적응되지 못한 언어이기 때문에 그 언어로서는 그의 행동을 적응하는데 사용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장롱   앞에서 다시 한 번 더 "나는 한 때 다른 사람이었던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한 그의 문장을 말하나 어떤 무엇을 표현한 것은 아니다. 그는 우연히 그의 발로 장롱  에 부딛히기도 한다. 그는 의도적으로 그의 발을 장롱에  부딛히기도 한다. (...) 그 때 우연히 장롱의 문이 서서히 열린다. 그는 열려진 문에 그의 문장으로 반응을 보인다."21)

Er sagt den Satz noch einmal vor dem Schrank, aber ohne etwas auszudrücken: Ich möcht ein solcher werden wie einmal ein anderer gewesen ist. Er stößt wie zufällig mit dem Fuß gegen den Schrank. Er stößt wie absichtlich mit dem Fuß gegen den Schrank(...) darauf gehen allmählich die Schranktür auf.(...) Auf die offenen Türen reagiert er jetzt mit seinem Satz.

 

이런 상태의 카스파에게 언어교습자Einsager가 등장하여 카스파의 언어습득 훈련을 시도한다. 여기서 언어교습자는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에 영향을 받은 바, 언어훈련을 단어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무장으로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단어들은 중성적이어서 그 자체가 아무 것도 의도하지 못하고 있지만 문장은 현실 개념을 표현하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22)

이것은 언어교습자가 사용한 언어는 순수한 언어가 아니라 이 언어는 이미 어떤 무엇을 의도하는 비순수 언어라는 것을 말해 준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언어교습은 언어를 통한 설명이나 설득이 아니라 오히려 의도적인 훈련의 성격을 띄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카스파가 무대에 오르면서 그가 본래 지녔던 언어는 언어교습자의 훈련에 절대적인 방해요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카스파가 소유한 언어는 그에게 친숙해 있는 심적 상태를 보호하는 쾌적한 자기 은둔의 세계에 속하는 언어다. 그러므로 카스파가 이 세계에 집착하고 있는 동안에는 언어교습자의 언어가 카스파에게 전달 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언어교습자는 먼저 그에게서 그의 언어를 끌어 내어야만 했다. 이와같은 언어교습자의 시도는 카스파로 하여금 심한 저항을 일으켰다.

 

"카스파는 그의 문장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카스파는 그의 문장으로 버틴다.(...) 카스파는 아직도 그의 문장을 주장한다."23)

Er(Kaspar) möchte seinen Satz behalten.(...) Ksspar wehrt sich mit seinem Satz.(...) Er(Kaspar) behauptet seinen Satz noch.

 

그러나 언어교습자의 훈련은 더욱 강하게 계속되었고, 반대로 카스파는 심한 고통을 당하게 된다. 그의 고통은 자기의 유토피아 세계를 빼앗기는데 대한 고통이요, 낯선 환경, 새로운 세계에 대한 부작용이요, 나아가서는 자신을 소외된 자로 경험하게 되는 데서 오는 고통이었다.

카스파는 자신의 본래의 문장을 박탈당하지 않기 위해 자기의 언어를 가지고 큰 소리로 외치면서 저항해 보았지만 그는 속수무책이었다. 그의 언어는 그의 세계에서 하나씩 부셔져서 결국 언어파편으로 흩어지고 사라져 버렸다. 결국 카스파는 자신의 언어를 빼았기고 언어교습자 앞에서 완전 무방비 상태가 되어 버렸다. 이런 상태에 있는 카스파에게 언어교습자는 쉬운 문장에서부터 점점더 발전된 문장으로 그의 계획된 언어학습을 시도한다. 이 과정에서 카스파가 처음으로 시도한 언어는 본래 자신이 가졌던 문장의 흔적이 전혀 없는 언어교습자의 언어에서 익혀 배웠던 문장들 중에서 모방한 몇몇 단어들에서 점차 정상적인 문장으로까지 발전한다. 드디어 그가 한 최초의 정상적인 말은  "Seit ich sprechen kann, kann ich alles in Ordnung bringen."24)이었다.이 문장은 언어교습자가 들려준 말이었는데 그가 이 문장을 표현했다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것이다. 즉, 여기서 질서란 말은 세상적응을 의미하는 말이요. 이 질서란 말이 이 극에서 가장 중심되는 개념으로서 언어교습자에겐 하나의 신앙고백과 같은 것이었다.25)

여기서 질서란 말의 의미는 카스파에게 세상적응에서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희미한 불빛에서 처음으로 이루어진 적응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질서에로 유도하는 교습자의 문장은 "켜지는 불이요, 열려지는 창문"26)과 같은 것이다. 이제 카스파는 언어교습자의 언어를 통해 세상에 적응할 수 있게 되었으나 자신은 언어교습자의 꼭두각시와 같이 행동하게 된 것이다.

 

"이 문장이 처음으로 그들의 문장에서 카스파의 동작에 적합해진다. 드디어 카스파의 동작은 점차 그들의 동작에 적응해 간다."27)

Diese Sätze passen sich zuerst in ihrer Bewegung den Bewegungen Kaspars an, bis sich Kaspars Bewegungen allmählich ihrer Bewegung anpassen.

 

이제는 카스파의 정신적인 활동도 언어교습자가 들려준 문장에 따르고 있다. 이제 카스파는 자신의 판단은 사라진 채 언어교습자의 꼭두각시가 된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카스파가 자신을 표현한다 해도 그것은 자신의 비판적 태도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언어교습자에 의해서 주입된 사고의 표현에 불과한 것이다. 여기서 시사된 중요한 한 가지는 언어교습자의 언어가 외관상으로 나타나지 않고 있으나 실상은 여러겹으로 가면을 쓰고서 암시적이고도 억압적인 영향을 행사하는 "비인칭화된 낯선 사회적 권력" unpersonalisierte fremde gesellschaftliche Macht28)이라는 사실이다.카스파가 자신의 언어를 상실하고 언어교습자의 문장에 의해 이 세상에 적응됨으로써 이 세상의 질서와 카스파의 내면적 규칙체계가 완전한 합일을 이룬 상태는 본래 카스파가 자신의 이상향의 세계에서 안주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쾌적한 상태의 "아름다운 혼"29)의 상태에 다시 거하게 된 것이다. 카스파가 이 아름다운 혼의 상태에 도달한 후 부터는 이 세상과는 전혀 불편함이 없이 언어교습자의 제스추어에 일치해 가고 있었다. 이제 언어교습자는 카스파에게 지시하는 말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카스파는 언어교습자의 말을 거침없이 반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카스파의 언어는 언어교습자의 자동화된 태도규칙 모델에서 너온 것이지 자신의 표현은 아니었다. 그러기에 언어교습자가 "Denk, was du sagst"30)라고 했을 때 카스파는 단지 "Ich bin, der ich bin"31)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게 되었는데 이는 매우 개발적인 것이다. 이는 본래 성서에서 모세에게 들려준 여호와의 음성으로서 신이 존재의 절대성을 나타낸 말로서 여기서는 본래 자신의 존재가 상실된 카스파의 자기 정의의 문장으로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이 후에 등장한 유사 카스파에게도 같은 현상이 되풀이되고 카스파의 언어습득을 통해 나타난 자기소외가 일반화된 것으로 암시하고 있다.

카스파는 58장에 가서 비로서 긴 문장으로 자기의 표현을 하고 있으나 이것도 언어교습자의 문장을 재생산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요컨데 카스파가 한 말 "난 벌써 모든 일에 익숙해졌어. 나에겐 더 좋아진 거야."라는 말이 곧바로 덧붙여 나온 말" 나는 특별한 특징이 없어."32)이란 말과 함수관계를 이루게 된 것이다.

이 극의 끝에서 카스파가 사용한 문장이나 대상물 적용에서도 언어교습자가 들려준 문장모델을 모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그는 언어교습자를 통해 세상적응을 했으나 자신의 표현은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카스파는 이전에는 세상에 대해 소외자가 되었던 것이다.

 

"난 내세울만한 반항을 하지 않았음을 보았어요."33)

Ich habe mich nie gesehen: Ich leiste keinen nennenswerten Widerstand.

이 작품의 끝에서 카스파가 무기력하게 서 있으면서 마지막 외침의 "염소와 원숭이"Ziegen und Affen 이란 외침은 카스파의 상실된 자아를 대변하고 있는 말이다. 카스파의 잘 길들여진 상태는 바로 그의 독창성을 상실하고 주어진 모델에 의해서 적응된 자기소외의 상태가 된 것이다.

한트케는 카스파를 통해 언어의 부정적인 영향력을 설득력있게 표현한 것은 언어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다만 언어의 부정적인 기능을 의식하지 못하고 언어현상을 의식하지 못하고 언어로 대변된 모든 사회의식이 인간을 무의식적으로 소외시켜 자신의 본래의 자아를 상실할 수 있다는 의식을 각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와같은 견해에서 한트케의 언어를 통한 인간소외는 브레히트의 집단 속에서의 개인상실과는 또 다른 측면에서 일맥상통하고 있다.

 

 

III. 결  론

 

브레히트의 개인상실 내지는 인간소외와 한트케의 언어를 통한 적응과 인간소외라는 주장은 그 출발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언급한 바와같이 한트케가 브레히트의 사고확장을 위한 연극모델에서 한트케의 연극미학이  영향을 입은 것은 사실이고 특히 이들이 질서체계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것은 그것이 질서체계의 순응이 인간의 생산적 의식활동을 억제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브레히트의 상당히 많은 작품에서 질서체계의 부정적인 영향을 폭로하고 있으나 『남자는 남자다』에서는 질서체계의 순응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으로만 설명하고 있지 않다. 겔리게이의 질서체계의 순응은 자신의 개성상실 내지는 집단 속에서의 "개인의 위기"를 경고하고 있긴 하지만 한편으로 페어촤일드를 통해 질서체계의 잇점을 스스로 적응해 가고 획득해감으로써 실존적 적응가능성을 암시하고 있음을 또한 볼 수 있다.

한트케가 언어의 부정적인 면을 통찰하고 언어의 영향력을 경고한데 비해서 브레히트는 집단에의 소속으로 인한 한 개인의 상실을 경고하고 있음은 사실이나 또한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적응을 위한 암시를 경고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카스파가 마지막 장면에서 "염소와 원숭이"라는 절망적인 외침이 "물에 빠져 죽어가는 마지막 외침"을 의미함같이 이 세상의 적응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부여는 도외시한 채 인간의 자기소외라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언어현상을 바라보았다면 제라이어짚으로 이름을 바꾸어 군대의 조직 속으로 적응해감으로써 겔리게이의 이름상실과 더불어서 개인의 자기상실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을 보여준 브레히트는 페어촤일드의 질서체계로의 적응을 적극적인 실존의 행위로 묘사함으로써 오히려 긍정적인 적응을 덧붙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브레히트의 『남자는 남자다』에서의 플롯은 겔리게이의 변신과 페어촤일드의 변신을 반대감정 병존으로 묘사하면서 오히려 지금까지 군대의 신분으로 권력을 누렸던 페어촤일드의 시민으로의 변신은 저항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겔리게이 가 군인으로 변신된 반면 겔리게이가 군인이 되게한 직접적인 원인제공자인 제라이어짚이 인도의 황인종 주지의 손아귀에 빠지게 했던 비(der Regen)는 아이러니하게도 페어촤일드가 군인의 신분을 벗어 버리고 과부 Beg Bick에게 자신을 맡기게 했던 성적 충동을 일으켰던 원인이기도 하다. 겔리게이는 제라이어짚의 일을 통해서 군인으로 변신한 것은 비록 자신의 자아상실이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긍정적이고 결국에는 적극적인 변신이 된 반면, 페어촤일드의 과부 Beg Bick에 대한 성적 충동으로 인한 시민으로의 변신은 본능에 충실한 "개인의 회복"을 달가와 하지 않는 변신으로 그는 이 변신을 저항한다.

요컨데 한트케의 카스파는 언어의 부정적인 영향력을 부각시킨 인간소외에 대한 경종이라고 한다면 브레히트의 『남자는 남자다』의 겔리게이는 군인으로 변신함으로써 상실한 개인의 위기와 성적 충동을 이기지 못해 군인에서 시민으로 변신한 페어촤일드의 "본능회복" 내지는 "개인회복"을 반대감정 병존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개발적이다.

 

 

Literaurverzeichnis

 

I. Primärliteratur

 

Brecht, Bertolt: Gesammelte Werke in 20Bde. Frankfurt a. M. 1967

Handke, Peter: Petr Handke Stücke I. Frankfurt a.M. 1972

Derselbe     : Ich bin ein Bewohner des Elfenbeinturms, Frankfurt a.M. 1972

 

II. Sekundärliteratur

 

Zu Brecht

Buck, Theo(Hg.): Zu Bertolt Brecht, Stuttgart, 1983

Grimm, Reinholt: Brecht, die Struktur seines Werkes, Nürnberg, 1972

Hinderer, Walter(Hg.): Brechts Dramen, Stuttgart, 1984

Knopf, Jan: Brechts, Handbuch, Stuttgart, 1980

Völker, Klaus: Brecht Kommentar, zum dramatischen Werk, München, 1983

Thomas, Linda L.: Ordnung und Wert der Unordnung bei Bertolt Brecht, Bern, 1970

 

Zu Handke

Durzak, Manfred: Peter Handke und die deutsche Gegenwartsliteratur, Stuttgart, 1982

Franke, Hans-Peter: Kaspar von Peter Handke, Der Deutschunterricht, Jg. 23. 1971

Heinz, Günter: Peter Handke, Stuttgart, 1971

Honsza, Norbert(Hg.): Zu Peter Handke zwischen Experiment und Tradition, Stuttgart, 1982

Horn, Peter: Vergewaltigung durch die Sprache: Peter Handkes Kaspar, Literatur und Kritik, H. 51, 1971

Josef, Artur: Theater unter vier Augen, Köln, 1969

Nägele, Rainer/ Voris, Renate: Peter Handke, München, 1978

Neis, Edgar: Erläuterungen zu Peter Handke, Kaspar, 1978

Scharang, Michael(Hg.): Über Peter Handke, Frankfurt a.M., 1973

Schiwy;Günther: Neue Aspekte des Strukturalismus, München, 1973

Sergooris, Gunther: Peter Handke und die Sprache, Bonn, 1979

Wittgenstein, Ludwig: Philosophische Untersuchungen, Frankfurt a.M., 1971

Derselbe: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Frankfurt a.M., 1976

 

 

<Zusammenfassung>

 

 

Anpassung an die Gesellschaft und Entfremdung des Menschen

 

 

Sang-uk Rhie

 

 

Anpassung an die Gesellschaft und Entfremdung des Menschen in den Stücken "Mann ist Mann" von Brecht und "Kaspar" von Handke.

 

Brechts Stück "Mann ist Mann" zeigt als ein typisches Kennzeichnen der Zeit, wie der Mensch seine Individualität verliert durch die Ummontierung des Menschen. Es zeigt auch, wie das Individuum aus dem Kollektiv hervorgeht, sich nicht im Gegensatz zu ihm definiziert, sondern sich durch das Kollektiv bestimmt und auch "gekräftigt" sieht; die andere, die sich dann in Faschismus durchsetzt, degradiert das Invididuum zum Hassenteil, und zwar zum bewußtlosen, verhetzten, die eigenen Möglichkeiten und die Menschlichkeit leugnenden Herdentier mit allen freigesetzten niedrigen Instinkten und löscht es damit aus.

Die Hauptfigur Galy Gay im Brechtschen Stück ist so arm, daß er sich den berühmten 'Charakter', die Individualität, gar nicht leisten kann. Aufgrund dieser Voraussetzungen stellt sich die Möglichkeit für ihn ein anderer zu werden, subjektiv wie objektiv als ein Gewinn dar.

Im Vergleich zu Brecht stellt Handke in seinem Stück die Sprache als etwas Negtives dar, das auf den Menschen  einen starken und unbewußten Einfluß ausübt.

Sprache als ein den Menschen zur Welt orientierendes Wesen bzw. ein das Bewußtsein manipulierendes Instrument wird deutlichgemacht in dem Stück "Kaspar", in dem eine Hauptfigur Kaspar zur Welt kommt und für sich seine Umwelt und die Sprache entdeckt und erprobt. Von Einsagern wird er schließlich seiner anfänglichen Individualität beraubt und vermittels Sprache auf den "richtigen", d.h. den um der Gesellschaft akzeptierten Weg gebracht und zum austauschbaren Nachsager.

Im Zusammenhang mit diesen Themen zeigen die beiden genannten Stücke, daß eine Einorientierung zur Welt bzw. eine Anpassung an das gesellschaftliche System die Menschen auf der einen Seite Kontrolle gewinnen, sie auf der einen andere Seite von sich selbst entfremdet werden und ihre eigene Individualität verlieren lassen.

 

 

각주

1) Vgl. Hans-Peter Franke: "Kaspar von Peter Handke", (Der Deutschunterricht, Jg.23,1971) S. 17     Franke는 무대와 객석의 관계에 따라 극의 형태를 "사실적 연극론"과 "극장연극론"으로 구분했다.     극장연극론에 따르면 무대는 사실적인 무대 구성을 하는 것이 아니고 극장분위기를 연출하는 무     대를 꾸민다.

2) Arthur Joseph: Theater unter vier Augen, Gespräche mit Prominenten, Köln, 1969, S. 30

3) Ludwig Wittgenstein: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Frankfurt a.M. 1967 S. 89

4) Vgl. Jan Knopf: Brecht Handbuch, Stuttgart, 1980, S. 46 ff.

5) sieh! Klaus - Detlef Müller: Mann ist Mann. In: Walter Hinderer: Brechts Dramen, Neue                         Interpretationen, Stuttgart, 1984, S. 90

6) Bertolt Brecht: Gesammelte Werke I. Frankfurt a.M., 1967, S.348

7) Ebd. S.333

8) Ebd. S.374

9) Linda L. Thomas: Ordnung und Wert der Unordnung bei Bertolt Brecht, Bern, 1970, S. 19

10) Brecht: GW. S. 302

11) Brecht: GW.I. S.368 ff.

12) B. Brecht: Gw. S. 370

13) Peter Handke: Ich bin ein Bewohner des Elfenbeinturms, Frankfurt a.M. 1972, S.51

14) Ebd. S. 41.

15) Günther Schiwy: Neue Aspekte des Strukturalismus, München,1973, S. 117

16) Ebd. S.118

17) Gunther Sergooris: Peter Handke und die Sprache, Bonn, 1979 S. 22

18) Peter Horn: "Verwaltigung durch die Sprache", Literatur und Kritik. H. 51. 1971. S. 30

19) Peter Handke: Stücke I. S. 108

20) Ebd. S. 109. 그가 가진 자신의 언어는 " Ich möcht ein solcher werden wie einmal ein anderer            gewesen ist." 였다.

21) Peter Handke: Stücke I. S. 111

22) Vgl. Gunther Sergooris: a.a.O. S. 110

23) Ebd. S.117

24. Ebd. S. 126

25) Vgl. Peter Horn: a.a.O., S. 37

26) A. Schmidt: "Zeichen und Funktionen, über Peter Handke und seinen neuen Roman". In:               Michael Scharang(Hg.): Über Peter Handke, Frankfurt a.M., 1973,S. 108

27) Peter Handke: Stücke I. S., 131

28?? M. Blanke: "Zu Handkes Kaspar".In: ÜH. S. 292

29) R. Nägele: "Unbehagen in der Sprache. Zu Peter Handkes Kaspar". In: N. Honsza(Hg.): Zu                    Peter Handke zwischen Experiment und Tradition, Stuttgart, 1982 S. 26

30) Peter Hadnke: Stücke I., S. 151

31) Ebd.

32) Ebd. S. 164

33) Ebd. S., 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