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만 인가르덴(Roman Ingarden)과 볼프강 이저(Wolfgang Iser)의 문예학적 불확정성 이론


 

                                                                                                                                                                                        최 보 근

 

 

《목    차》 

 

 

 

머리말

1. 로만 인가르덴의 불확정성 개념

2. 불확정 소여의 해석 방식

3. 볼프강 이저의 불확정성 개념

4. 인가르덴과 이저의 불확정성 개념 비교

맺음말

참고문헌


머리말


본 논문은 로만 인가르덴과(Roman Ingarden)과 볼프강 이저(Wolfgang Iser)의 불확정성(Unbestimmtheit) 개념을 다룬다. 두 사람이 같은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구체 개념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요컨대 본 논문은 제목이 제시하고 있듯이 ‘불확정성’ 개념에 대한 두 사람간의 견해가 어디에서 차이가 나며, 이 차이는 왜 생성되는지를 집중적으로 다루어 나가기로 한다.


사실 ‘불확정성’에 대한 두 사람의 저서는 이미 오래 전에 발표되었다. 따라서 왜 이런 작업이 새삼스럽게 필요한지 한번쯤 집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첫 번째 이유는 이런 연구 작업이 별로 없었다는 사실이다. 만일 마틴 하이데거와 에밀 슈타이거간에 벌어진 학술 논쟁이 두 사람 사이에도 전개되었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1). 그러나 먼저 도전장을 제기했어야 할 이저가 이를 뒤로 미루는 바람에 두 사람간 열띤 논쟁은 유감스럽게도 벌어지지 않았다2). 본 논문이 제시한 과제는 물론 이러한 연구 부족 사항의 단순 충족이란 배경 외에 최근의 여러 학술 동향과도 무관하지는 않다. 요컨대 디지털 매체의 발전으로 인해 언어 매체의 종말 내지는 인문 과학의 shut down 등이 심심치 않게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이 시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문제를 한번쯤 집고 넘어갈 일이다. 다음으로는 디지털 혁명이란 시대 기치와의 연속선상에서 ‘언어 매체와 그래픽 매체의 본질에 대한 기초 연구’가 앞으로 계속 진행될 것이란 전망 하에 다시 한번 과연 ‘문학 작품이란 무엇인가?’, 즉, ‘언어로 나타나는 세계와 실제 세계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라는 질문을 던져보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을 지적해 둔다.

 

연구 배경을 거창하게 늘어놓아 사게 될 오해를 피하기 위해 본 논문은 최근의 디지털 매체와 언어 매체간의 갑론을박을 다루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둔다. 마찬가지로 ‘문학 작품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과 관련해서도, 지금까지의 모든 논의들을 역사적으로 돌이켜 볼 용의도 없음을 명백히 밝힌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제시한 과제는 최근의 시대 및 학술 발전 동향을 두고서 지적한 몇 가지 문제들을 우리 선학들의 입장에서였다면 과연 어떻게 접근해 나갔을까 하는 정도의 길만을 더듬어 보는 것으로 만족키로 한다.


 

1. 로만 인가르덴의 불확정성 개념


인가르덴의 불확정성 개념은 문학 작품속 대상과 현실 세계 대상간의 구분에서 시작한다. 이 차이는 문학 작품 속의 대상(예: “사과”)이 그 내용상 실세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존재할 때(예: 지금/여기에 존재하는 특정 “사과”) 특히 잘 드러난다.


“사과”를 예로 들어, 현실 세계에 실재하는 대상의 본질적 특성을 우선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다:


1) 실제 대상은 “모든 면에서(즉, 어떤 관점에서든) 명료하게 정의되어 있다”

   (allseitig - d.h. in jeder Hinsicht - eindeutig bestimmt).

   설명 -> 이 논문을 읽다가 머리를 식히기 위해 냉장고에 있던 몇 개의 사과 중에서 하나를 집어들었다고 가정해 보자. 먹기 전에 탁자       위에 올려놓고 잠시 관찰해보면이 사과는 외모(색깔, 모양 등)나 내용물(수분 함량, 맛 등)에서 그 자체로 모두 결정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2) 이 모든 정의들이 한데 어울려 “원래 모습대로의 단일체”(eine ursprüngliche konkrete Einheit)를 형성한다.

   설명 -> 사과를 요모조모 살펴본다. 쪼개어 안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이제 맛을 음미 해보기도 한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은 사과의       특정 일면과 특정 속성이지만 사과 그 자체로는 우리의 시각이나 감각과는 상관없이 모양, 색깔, 맛 등을  하나로 아우르 는 단일한 전       체로 존재한다.


3) 실제 대상은 그 종류에 상관없이 “개별적”(individuell)이다(L1, S. 261ff.).

   설명 -> 이제 냉장고 속에 들어 있던 다른 사과들도 모두 집어내어, 좀 전에 관찰했던 사과와 비교해 보기로 한다. 그 결과, 종류 상 다       같은 사과이지만 모양, 색깔 그리고 맛에서 아주 미세하지만 사과 하나 하나 마다 각기 차이가 남을 알게 된다. 이는 기계로 제작한 동       일 제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한 회사에서 동일 모델 로 제작한 자동차 타이어를 예로 들어보자. 일견 1000개의 타이어       가 똑같아 보이지만, 면밀히 서로를 비교하면 치수나 모양, 색깔 등에서 - 말 그대로 너무나 미세하지만, 그래도 엄밀한 의미에서 보아       -  개별적으로 조금씩 다름을 알 수 있다.


문학 작품 속 대상은 이 세 가지 항목 모두에서 실제 대상과 본질을 달리한다:


1) 문학 작품 속 대상은 “명사적”(nominal; L1, S.62) 표현과 이에 덧붙여지는 문장을 통해 “지향적”(intentional; L1, S.122)으로 창출된다

    3).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가 집필 중인 소설 “박 교수의 일기”에 나오는 한 대목을 예로 들어 보이겠다: “박 교수는 논문을 읽다가 머리

    를 식히기 위해 냉장고에서 사과를 하나 집어들었다. 사과는 한 쪽이 일그러진 게, 모양은 볼품없었지만 색깔이 고와 먹음직스러웠다.

    꼭지가 아직 신선한 초록빛 을 띠고 있는 걸 보면 막 과수원에서 따 온  것임에 틀림없다.” 이 문장들은 특정 사실 관계를 펼쳐 보이며,        대상 주체(사람, 사물 등) 내지 대상성들(상태, 모양, 색상 등)은 문장 속 사실관계를 통해 각기 정의된다. 만일 제시 예문이 또 다른 설        명을 달고 있다면 그리고 묘사 대상이 마찬가지로 주어진 사실 관계 속에서만 정의된다면, 묘사 대상의 정의 수는 주어진 문장의 수만        큼으로 제한될 것이다. 요컨대 문학 작품이 그려내는 대상은 실제 대상에서와 같은 '완벽한 정의'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 이는 다음의

     이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실제 사과 하나를 돋보기로 들여다보면, 그 색깔은 곳에 따라 조금씩 달라짐을 알 수 있다. 반대

     로 우리가 문학 작품 속에서 “빨간 사과”라하면, 이는 너무나 일반적이기 때문에 보다 명료한 정의를 내릴 필요가 생긴다. 즉, 이곳은

     햇빛을 덜 받아 약간 푸르스럼한 빨간 색을 띤다 정도로 그 색깔을 구체화해 볼 수 있는데, 이런 식으로 주어진 사과의 색깔을 정의해         내려가다 보면 즉, ‘푸르스럼하다’는 색상은 또 어떤 것인지, 이에 따른 색상 정의는 다시금 어떤 것인지 등등으로 무한정 이어질 것이         며, 텍스트는 마침내 정의되지 않은 무수한 색상 정의들로 어지럽게 채워질 것이다.


2) 작중 세계에서 명사 구문으로 제시되는 대상들의 “형식”(L1, S.69f.)과 관계해서는, 이는 일견 현실 세계에서와 같은 통일적 형상체를         띠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지만, 그 개별 정의란 실은 - 실제 대상에서와는 달리 - 오로지 “잠재적”(potentiell; L1, S.86f.)존재 양태만을

   띠고 있을 뿐이다. 요컨대 문학 작품 속 대상의 표현 형식이란 하나의 “도식”(Schema)에 지나지 않는다4)라고 특징 지워볼 수 있다. 앞       서의 “사과”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이 질박한 명사적 표현에는 해당 지향 대상이, 그 개념이 갖는 완벽한 상태 중  특정 무

   언가를 포착하고 있다는 점에서만 “생동적”(aktuell; Ebd.)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사과이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다른 필수       요건들은 잠재적으로만 “그렇게 추정될”(mitvermeint; L1, S.66) 뿐이다. 다른 한편: 한 개별 대상을 “자동차” (예를 들어 아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 자동차)로 이름지어, 이 명칭을 통해 그 대상을 투사해 낸다면, 그렇다고 해서 이 이름 하나(“자동차”)가 대상의 개성을 아       우르는 모든 속성들(예를 들어 종류, 크기, 색깔, 재질 등)을 분명하게 정의해 낼 수 없음은 자명한 이치다. 물론 이들 대부분은 명사의

    단어 의미 속에 잠재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것(예를 들어 헤드라이트, 타이어, 창문, 트렁크, 모터 등)으로 그렇게 추정되지만 이 역시

    원래 대상의 통일성을 아우르는 무수한 정의들 중의 일부로 제한되어 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속 대상은 그 형식에서 구체적 단        일체, 즉, 하나의 개별적 전체로 “간주되어“(vermeint; Ebd.) 그리고 바로 그러한 것으로 지향적으로 창출되기 때문에, 텍스트 상으로        는 해당 대상이 어떻게 정의되는지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부분들, 즉, 불확정성이 불가피해지게 된다(L1, S. 264f.; L2, S.49f. 참조).


3) “개별성”(Individualität) 문제에 있어서도 실제라고 그저 추정되는 대상은 좁은 의미에서의 실제 대상과 분명히 구분 지워진다. “빨간        사과”란 예를 들어보기로 한다. 이 구문이 지향하는 대상은 그 형식 구조적 단일성으로 인해 개별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엄밀        한 의미에서 이 대상의 특성을 밝혀주는 각 정의(“빨간” 등등)는 그 자체로 대상의 일회적 특성을 나타내는 개성적 정의로 해석될 수        없다. 왜냐하면 작품 대상의 개별 특성을 정확히 포착하고 있다는 믿음 하에 사용하는 대부분의 명사적 표현들은 실제로는 이러한 능        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데, 이들은 자체로 극히 모호한 일반적인 성격을 띠기때문이다. 요컨대 우리 예문에서 “빨간” 색깔은 색상과 밝        기에서 그 자체 매우 광범위한 스칼라를 지니는 데, 이를테면 ‘연 빨강’에서 ‘짙은 빨강’에 이르기까지 또는 ‘밝은’ 계통에서 ‘어두운’ 색        조에 이르기까지 이는 매우 다양해진다. 따라서 해당 대상이 외연적으로 그리고 생동적으로 이 색상 스칼라의 어디쯤에서 결정되고        그리고 형식상 개성적인 구조체를 나타내는 개별성 또한 아직 명료하고도 전체적으로 동시에 정확히 정의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        대상은 텍스트 속에서의 사실 관계만으로는 결코 완벽한 “개별성”을 결코 이루어 낼 수 없다(무엇보다 L1, S.265 참조).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작품 속 대상이 실세계 대상의 유형에 속한다 해도, 이는 엄밀한 의미에선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정의된 독립 개체라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언어 묘사 대상은 실제 대상에서와 같은 통일적 형상체를 이룰 수 없으며, 대신 도처에 정의되지 않은, 구멍 투성이인 도식적 형상을 나타내 보일 뿐이다. 이처럼 묘사 대상의 특정 부분이나 대목이 주어진 텍스트만으로는 정확히 어떻게 정의되는지를 알 수 없을 때 인가르덴은 이를 불확정 소여(Unbestimmtheitsstelle)라 부르고, 이처럼 정의되지 않는 소여는 문학 작품에서 뿐만 아니라 언어로 기술되는 모든 대상들(사람, 사물, 사실 관계, 자연 현상 등등)에서는 본원적으로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여기서는 언어 묘사 대상에 내재하는 불확정성으로 정의한다.




2. 불확정 所與의 해석 방식


문학 작품 속 불확정 所與에 대해 독자는 두 가지 입장을 취할 수 있다. 그 하나로 독자는 작품을 읽어가며 명확히 정의되지 않은 부분들을 의식은 했지만 그러나 의도적으로 이 대목을 그대로 둘 수 있다. 그 결과 독자는 작품의 특징적 구조만을 파악해 내게 된다5). 그러나 한 문학 작품을 대할 때 일반적으로 우리는 다른 이해 방식을 취하게 된다. 이를테면 정의되지 않은 부분들은 통상 별 의식을 않은 체 읽어 내려가게 되는데, 이런 이유로 독해 시 작품의 도처에 내재하는 - 비유적으로 말해 - ‘구멍들‘을 별로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 이유는 대략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우리는 작중 대상을 해당 어휘 및 그 의미 단위를 통해 막 긍정적으로 정의되는 그런 측면에서만 파악하게 된다. 이는 의식 차원의 정보처리 과정이 線的으로만 진행된다는 인간 지능의 특수성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다시 말해 흔히들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우리의 의식은 두 가지 이상의 작업을 동시에 수행해 낼 수 있는, 예를 들어, 정의된 의미를 풀어냄과 동시에 정의되지 않은 ’구멍‘을 천착해 내는 멀티태스킹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6). 특히 작중 세계가 실제가 아님을 분명히 의식하고서 책을 읽을 때에는, 설사 작가가 의도적으로 일부 대목에 ’구멍‘을 장치해 두었다하더라도 독자들은 이에 괘념치 않고 그냥 스토리만을 추적하게 된다. 두 번째로 작중 대상은 - 엄밀한 의미에서 - 텍스트에 주어진 사실 관계를 통해서만 정의되지, 이를 넘어서는, 실제 대상이 갖는 여러 다른 정의들은 스스로 제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독자는 통상 책을 읽을 때 작품 속에 실제 나와 있는 것 이상을 읽게 되며, 묘사 대상을 여러 관점에서 보충을 하게 되는데, 바로 이러한 까닭으로 우리는 불확정 대목을 임의로 제거해 나가게 된다. 이 때 독자에 의해 보완되는 이들 정의 내용은 텍스트가 암시하는 것들일 수도 때로는 텍스트가 의도했던 바와 어긋나는 모멘트를 포함하기도 한다(L1, S.267f.; L2, S.51f. 참조)7).

 

 

3. 볼프강 이저의 불확정성 개념


이저의 불확정성 개념은 인가르덴에게서와 달리 해석된다.


1) 이저는 불확정성을 문학 작품과 실제 생활 세계 내지 독자의 경험과의 불일치 관계에서 찾는다. 구체적으로 이저는 문학 작품을 “대상       에 대한 반응의 記述”(Darstellung von Reaktionen auf Gegenstände)로 정의하고, 이런 의미에서 문학 텍스트는 역사 현실의 실제 대       상과도 그리고 독자의 경험과도 “완전히 합치“될 수 없으며, 따라서 이 ” 여분의 불일치”(die mangelnde Deckung)가 불확정성을 생성       하게 된다고 주장한다(L3, S.10ff.).


2) 이러한 전제하에 이저는 그의 저서 제 2 장에서, 문학 작품 자체가 불확정성을 만들어내는 “형식적 조건들”을 다음과 같이 열거한다:

    a. 도식화된 관점들, 즉 작중의 여러 관점 내지 입장들이 상충 관계를 보일 때, 이들 사이에 빈 공간(불확정성)이 생성된다(L3, S.15).

    b. 이른 바 시리즈 소설에서 서스펜스가 꺽어지거나 또는 늘어질 때 단절 효과가 발생 한다. 이 "단절"(Schnitt)은 앞의 예와 유사하게           공백을 만들어 낸다(L3, S.17).

    c. 각각의 단절에 곧 바로 이어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키거나 혹은 전혀 다른 줄거리를 이어 갈 경우, 지금까지 익숙해져 있던 스토리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상황들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때에도 불확정성은 생성된다(L3, S.18f.).

    d. 현대 소설사를 살펴보면 서술자의 주석이 이야기 자체보다 훨씬 길며 동시에 이 관찰 시각이 작중 상황마다 쉼 없이 변화하는 작품           을 종종 접하게 된다. 이 경우 독자는 서술자의 변덕스런 주석에 걸맞게 부득불 마찬가지로 계속 새로운 판단을 내려가지 않을 수 없           게 되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불확정성이 생성된다(L3, S.19ff.).

    e. 이와는 조금 달리 "상호 수정이 불가피한 입장들"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경우가 발생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해당 수정이 어떻게 진행           되어야 하는 지에 대해 텍스트는 스스로 아무 언급도 하지 않음으로 인해, 독자는 이들 여러 입장들이 서로 유희를 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되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불확정성이 발생한다(L3, S.24ff.).

    f.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독자의 접근을 불허하겠다는 느낌을 주는 그러한 대목들이 있는데, 이 경우 독자는 부득이 불확실하다는 느낌          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된다(L3, S.30f.).


4. 인가르덴과 이저의 불확정성 개념 비교


이저의 불확정성 개념은 인가르덴의 그것과 다음 두 가지에서 차이가 난다:


1) 인가르덴이 글로 쓰여진 모든 텍스트에서 불확정성을 찾아내고 있는 반면, 이저는 “문학 작품” 외의, 즉, “다른 성격의 텍스트”에서는       불확정성을 찾아보지 못한다. 우선 이저의 입장에 따르면, 문학 작품은 “대상을 그냥 모사하지도 또 그런 것으로 창출해 내지도 못한다       ”고 한다. 이들 대상은 그저 “우리에게 일견 잘 알려져 있는 그런 세계”를 우리의 일상 감각과는 좀 “다른 형태”로 구성해 낼 뿐으로, 따       라서 “문학 작품이 의도하는 바는 우리의 경험 세계와 비교하여 결코 일치될 수 없다”고 이저는 덧붙인다. 이와는 달리 - 예를 들어 -       학술 논문은 실제 대상 세계의 특정 사실 관계를 있는 그대로 기술하고 있을 뿐인데, 왜냐하면 이 텍스트에서 언급되는 사실 관계는 텍       스트 밖에서 “정확히 그렇게 정의되어 있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실제 대상과 언어 묘사 대상에 대한 인       가르덴의 대비 설명에 의하면, 학술 논문에도 무수히 많은 불확정 소여가 존재하게 된다. 요컨대 문학 작품과 학술 논문간에는 종류의       차이만 있지 기본적인 불확정성 문제 자체가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이 인가르덴의 선험적 불확정성 이론의 출발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저가 인가르덴과는 달리 학술 텍스트에는 아무런 불확정 소여가 없다고 보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인가르덴                                 이저

   해당 대상       묘사 대상                실제 대상        문학 작품 속 대상

       a                                        a

       b              b                         b                  b

       c                                        c

   그림 설명:


   ㄱ. 화살표는 관찰 방향을 나타낸다.

   ㄴ. a, b, c를 에워싸는 둥근 원은 정의로 가득 채워진, 완성된 형태의 관련 대상을 나타낸다.

   ㄷ. 점으로 나타난 원은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정의되지 않은 대상의 도식적 형상체를 나타낸다.

   ㄹ. 이저는 텍스트의 한 대상이 - 만일 실제 세계에도 동일 대상 유형이 존재할 때에는 - 텍스트 밖에 실재하는 대상의 그 구체적 정의            와 일치하는 것으로 보며, 이런 맥락 에서 개별 대상 자체로는 불확정성이 발견될 수 없다.

   ㅁ. 인가르덴에게서는 관찰 방향이 거꾸로 주어지게 된다. 이런 까닭으로 실제 대상의 세가지 기본 특성(완벽한 정의/통일성/개별성)은            언어 묘사 대상에서는 충족될 수 없고, 대신 수많은 불확정 所與만이 도처에 산재하게 된다. 동시에 실 세계에서는 정의 되어 있지            만 텍스트에는 분명히 정의되어 있지 않은 기타 사실 관계들은 텍스트의 관점에서 정의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2) 작중 세계와 실생활 세계간의 불일치가 불확정성을 생성해 낸다는 이저의 견해를 두고서, 인가르덴은 왜 이러한 사실을 인정치 않는지       를 한번쯤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인가르덴에게서는 언어 묘사 대상의 범위가 실제 차원을 넘어       “비 실제”, 즉, 순수 지향적 대상에로까지 확대 된다8). 이런 이유로 인가르덴은 문학 작품에 나타난 대상들을 각기 있는 그 자체로 대상       의 범위로 간주한다. 반면에 이저는 대상 영역을 오로지 실제 객관적 대상에로만 제한하며, 이런 이유로 이저에게서는 순수 지향적 대       상들은 그 본연의 존재 양태대로 인식되지 않는다. 따라서 실생활 세계의 대상들과 시적 세계의 대상은 형식과 내용 그리고 질과 양 모       든 면에서 차이가 나게 마련이며, 이 편차 - 다음 그림 설명에서 이는 사선 친 부분으로 나타남 - 가 곧 불확정 소여로 정의된다.

                인가르덴                                 이저


       지시 대상        언어 묘사               생활 세계          가공 세계

   (실제/순수 지향적)      대상

                                   비실제 

                                   

                                     실제

3) 불확정성을 만들어내는 텍스트 자체의 "형식 요건들"(이저; L3, S.14))은 인가르덴에게서도 언급은 되지만 이저에게서와 같이 여러 가       지 형태로 세분되지는 않는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인가르덴의 경우, 작중 세계와 독자의 독해 과정을 구분 지어, 각       각의 본질적 특성을 분석해 나간다. 그 결과 ① 불확정성은 - 실제 대상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 작중 대상의 독특한 존재 양태속에 선험       적으로 주어지며, ② 이 ‘구멍’을 채우는 작업(Konkretisation; 불확정 소여의 구체화)은 작중에서(즉, 작가에의해)진행되는 불확정 소여       의 구체화 과정과는 별개의 것으로 진행되며, ③ 독자에 의한 구체화 작업의 결과물은 다시금 필연적으로 도처에 구멍 투성이인 “도식       적 형상”에 지나지 않게 된다9). 반면 이저는, 문학 작품이란 “도대체 (독자에 의해) 읽어지는 그 순간 비로소 생동감을 띠게 되며”(L3,       S.6), 이런 이유로 작중 대상이란 바로 이 독해 과정속에서 그 존재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는 입장을 전개한다. 따라서 작품 차원에서의       불확정성은 잠재적 존재 양태로만 머물며, 그 활성화는 오로지 독해 과정을 통해서만 비로소 가능해 진다는 결론은 어쩔 수 없는 논리       적 귀결이다. 요컨대 불확정성을 작중의 여러 형식 요건에 따라 나누는 해석 방식은 독해 과정에 초점을 맞춘 이저의 독특한 수용미학       적 발상으로, 불확정성의 경험적(a posteriori) 측면을 부각시켜 그 구체 사례들을 유형별로 정돈해 놓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반       면 인가르덴은 언어 묘사 대상의 특수 존재 양태를 그 매체의 본질적 특성에 기초하여 해석해 냄으로써 독자의 구체화 과정과는 무관       하게 그 자체로 이미 불확정성을 내재하게 된다는 선험적(aprirori) 이론을 펼쳐 나간다. 이런 까닭으로 인가르덴에게서는 작중 형식 요       건에 따른 불확정성의 유형별 세분(이저)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게 된다.


 

맺음말


지금까지 우리는 불확정성 개념을 둘러싼 로만 인가르덴과 볼프강 이저 두 사람의 견해를 대조하여, 그 차이점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음을 토로하면서, 다음에서는 두 사람의 견해 중 어느 쪽이 더 설득력이 있는가를 간단히 가려내어 보기로 하겠다:


1) 모든 종류의 언어 텍스트는 필연적으로 불확정성을 내포하기 마련이란 인가르덴의 견해가 문학 작품과는 다른 - 예컨대 - 학술 논문       같은 텍스트에서는 불확정성이 없다는 이저의 주장보다 더 타당성이 있다. 왜냐하면 학술 논문과 같은 텍스트 역시 언어로 작성되며,       언어는 - 간단히 말하자면 - 매체의 기본 속성상 실제 대상의 ‘전체성/구체적 통일성/개별성’을 구현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2) 언어 묘사 대상은 독해 과정을 통해서만 비로소 생명력을 띠게 된다는 이저의 견해는 - 비유적으로 말해 - 그다지 예리한 사실 판단이       라 볼 수 없다. 왜냐하면 한 텍스트를 읽을 때 우리는 지시 대상을 구체적으로 떠올리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텍스트의 관       련 어휘나 대목이 나타내려는 대상성이 죽었다고, 즉,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언어로 전달되는 대상은       텍스트 그 자체로 나름대로의 - 비록 잠재적 존재 양태이지만 -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3) ‘독자의 의식에서 활성화되는 형상 내지 사실 관계가 실제 대상 내지 사실 관계와 비교하여 차이가 없으면’이라는 이저의 언급은 사실       관계에 비추어 볼 때 부적절하다. 왜냐하면 그래픽 매체로 직접 구현되는 것과는 달리 언어란 간접 매체로 전달되는 대상은 언어로 변       환되는 순간 언어란 매체의 특수성에 의해 상당 부분 결정되고, 따라서 독자의 의식 속에서 재현되는 해당 대상은 필연적으로 언어 매       체로 변환되기 전의 원래 모습 그대로와 일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언어 텍스트에 대한 완벽한 해석이란 있을 수 없는 바, 텍       스트 자체가 이미 그 매체의 본질적 특성에 의해 도처에 불확정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4) 불확정성의 생성 원인으로 이저가 열거한 텍스트 자체의 형식 요건이란 언급하였듯이 문학 작품이 지니는 무수한 사례들 중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이저는 한편으로는 언어 텍스트만의 독특한 현상 방식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묘사 대상이 “독       해 과정을 통해 비로소 생동감을 띠게 된다”는, 즉, 텍스트보다는 독자의 인지/해석 과정에 더 무게를 두는 수용미학적 주의․주장에 집       착하는 논리적 부적절함을 범하고 있다.


5) 인가르덴의 불확정성 해석 방식은, 언어 묘사 대상을 오로지 현실 세계의 객관적 대상의 존재 양태와만 비교를 했다는 점에서 미흡한       점이 없지 않다. 다시 말해 심리 현상 또는 형상을 띠지 않는 사실 관계 등을 두고서는 언어 묘사 대상의 특수 존재 양태와 이들 대상의       존재 양태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모두 설파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참고문헌


L1: Roman Ingarden: Das literarische Kunstwerk, Tübingen 1965.

L2: Roman Ingarden: Vom Erkennen des lietrarischen Kunstwerkes, Tübingen          1968.

Iser: Die AppelstrukturL3: Wolfgang  der Texte, Konstanz 19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