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ethe의 象徵詩劇 “Epimenides”의 深層 分析

 

                                                      

                                                  박  찬  기* 1)

                                  

 

 

1. 배경

 

  이 작품은 독일의 프로샤(Preussen) 연합국이 1814년 프랑스군을 격파하고 베를린으로 개선했을 때, 괴테가 장차 일어날 수 있는 독일의 “民族主義”를 염려하여 교훈적으로 작성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독일은 여러 나라로 분할되어 있었는데, 승전(勝戰)의 기쁨으로 범독일적 민족의식(民族意識)이 고취되었던 것이다. 괴테가 염려한 것은 “감성적”이고 배타적인 민족주의로서, 그것이 후일 혹시나 민족간의 갈등과 분쟁으로까지 발전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였다.

 

  民族의식과 民族감정은 “民族”을 오히려 不幸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괴테의 예감은 불행하게도 적중하였다.

 

  그것은 그때로부터 꼭 100년이 지난, 1914년 7월 28일 괴테가 염려했던 제1차 世界대전이 세르비아에서 발단됨으로서 현실화하였다. 民族間의 사소한 사건이 걷잡을 수 없는 사태를 몰고 왔다. --- 그로부터 불과 4일 뒤인 8월 1일날, 독일이 러시아에 선전 포고를 하기에 이르렀고 ― 8월 3일에는 프랑스에 선전 포고를 했고, 곧이어 독일군이 중립국 벨리에를 거쳐서 군사이동을 했다는 이유로 英國마저 참전하게 되어버렸다. --- 그리하여 순식간에 유럽전체가 처참한 世界大戰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獨逸의 패전은 비참하였다. 전쟁 범죄에 대한 책임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사정에도 불구하고 배상금을 지불해야하는 부담이 가중되었다. 경제가 어려워짐에 따라 통화가 급팽창하고 물가가 오를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1939년 9월 독일의 풍운아 히틀러(Hitler)는 전격적으로 폴란드를 공격함으로서 세계 제2차 大戰을 터트리고 말았다.

 

  2차 大戰이 또다시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을 때, 勝戰國인 영국, 미국, 프랑스 등이 베를린 郊外 포쓰담에 모여 전후처리를 숙의하게 됐는데 이때, 獨逸을 16개로 분할하여 체코, 세르비아 등 여러 민족에게 흡수 합병시키자는 案이 나왔다고 한다. 그것은 독일민족을 아주 없애버리자는 말이었다. 2번씩이나 전쟁을 일으켜서 人類에게 재앙을 가져오는 독일민족을 산산이 분할 “흡수”시킴으로서 앞으로의 不幸을 막아보자는 취지였다고 한다.

 

  그때 누군가가『독일은 괴테를 탄생시킨 민족이 아닌가! 그리고 이 전쟁이 독일에게만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하고 反論하였기 때문에 다행이『民族 말살(抹殺)』의 그 제안은 채택되지 않았고, 독일을 東西 獨 및 베를린(Berlin)으로 나누고, 또 베를린을 4개의 구역으로 분할하여 연합군이 공동으로 통치하기로 최종 합의하였다고 전한다.

 

2. 작품의 내적 동기

 

  프로샤 王, Friedrich Wilhelm Ⅲ 世가 프랑스로부터 개선하게 됐을 때, 범국민적 축하의 축제극으로 상연하기 위해 Berlin 궁정극장의 支配人 이플란트가 괴테에게 작품을 만들어줄 것을 부탁한 것은 1814년 5월 17일이었다고 한다. 上演 예정일은 6월 17일 이어서 시간이 촉박했음에도 불구하고 괴테는 대단한 열성으로 작품을 완성하였는데, 막상 예정됐던 날짜에는 작품상연이 안되어서 크게 실망했다고 전한다.

  우여곡절 끝에 그 작품이 초연된 것은 그 다음 해 3월 30일, 괴테는 그 소식을 듣고 『Epimenides 가 드디어 Berlin에서 覺醒되었습니다. 마침 이 적절한 시기에 말입니다. 독일 민족이 다년간 막연한 표현으로 예언하였던, 바로 그것을 여기서 象徵的으로 다시 한번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괴테가 말하는『각성』즉 Erwachen 은 두 가지 뜻을 내포한다. 하나는 主人公 Epimenides가 作品속에서 잠을 깨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 작품 자체가 오랜 기다림 끝에 베를린에서 상연된다는 뜻일 것이다. [혹시 제3의 뜻이 또 있지 않나 하고 필자(박찬기)는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이 작품에 대한 그의 애착이 얼마나 강하였던가는 또한 1814년 7월 7일 K. Lieblich에 부치는 편지에서 더욱 명백히 나타나고 있다.

 

3. 예언자 에피메니데스의 神話

 

  고대(古代) 그리스의 전설적인 철학자 Epimenides 는 여기서 괴테의 分身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괴테는 자기 자신의 所信을 그의 입과 행동을 통해서 전달하고자 한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전설에 의하면 古代 그리스의 크레타 島 출신인 賢人 Epimenides는 오랫동안 (약 57년간) 깊은 석굴 속에서 잠들어 있다가 信託에 의하여 <잠>이 깨어 국민을 현명하게 인도할 수 잇는 지혜를 부여받았다고 한다.

 

  괴테는 그의 지혜를『시』와『공』의 두 차원으로 나누어서 2차의 각성을 통해 획득한 것으로 하였다.

 

                        “Bist vorbereitet”, sprach er, Wähle nun!

                         willst du die Gegenwart und das, was ist, (.......)

                         und gleich erschien durchsichtig diese Welt,

                         Wie ein Kristllgefäss mit seinem Inhalt, ---

 

 

  이것이 바로 에피메니디스의 제 1차의 각성(覺醒)으로서, 그는 마치 수정의 항아리 속을 들여다보듯 國內外의 정세를 환히 투시할 수 있게 되었고, 국민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적절하게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된 것이다.

  전설(傳說)상의 Epimenides는 신(神)의 은총을 받아 동굴 속에서 57년 동안 깊은 잠에 빠져 있다가 다시 깨어났을 때, 時間과 空間을 초월하는 초인적(超人的)인 능력을 지니게 되었는데, 이것은 괴테 자신이 예술과 문학의 세계에 오랜 세월을 바쳐왔으며, 전쟁중에도 그 고통을 국민과 함께 하지 못했다는 사실과 대비(對比)된다. 또 동시에 괴테 자신이 긴 세월의 정진(精進)으로 말미암아 어느 정도 높은 차원(次元)의 Epimenides的 지혜(智慧)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괴테는 어리석은 大衆, 즉 愚衆을 상대로해서 자신의 고차원적 識見을 직설적으로 피력할 수 없는 처지였다. 자기는 文學과 藝術의 깊은 온축(蘊蓄)을 통해 널리 유럽의 지성인이 되어 있었지만 당시의 일반대중은 물론, 상당한 지식인들까지도 편협한 애국주의(愛國主義)에 사로잡혀 있는 실정으로서, 그들의 그 좁은 안목은 큰 세계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는 수준에 미달되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 당시 넓은 식견과, 時代를 꿰뚫어보는 형안(炯眼)을 지녔던 괴테에게 당시의 비판자들이 얼마나 답답하고 야속했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용이하게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차원 높은 괴테의 世界市民性을 <애국심>의 결여라고 비판하는 소의 애국자들에게 그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4. 예술가의 智慧와 使命

 

  Epimenides는 두 번째의 覺醒을 통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투시할 수 있는 지혜를 얻었다. 다시 말하면 <時間>을 지배하는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혜는 적절한 시기에 형식을 통해서만 국민에게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表現의 藝術, 즉 作家의 능력이 요청된다.

 

  괴테는 이 作品의 冒頭에서 그 점을 다음과 같이 암시하였다.

 

              詩人은, 그 불행한 宿命을 승화시키고자 試圖하는 도다.

               (Der Dichter versucht das Schicksal zu entbinden)

 

  소용돌이 치는 運命 : 목적(Ziel)도 절도(Mass)도 모르고, 마구 바닥치는 거친 運命을 사랑스러운 예술의 손길로 노래와 이야기를 통해 어루만지며, 현명하게 이끌어주는 것이 “예술의 使命”이라는 것이다.

 

  이 작품의 첫머리에 예술의 神 <Muse> 와 함께 東方의 예언자 <에피메니데스>가 등장하는 것도 이 점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인간 괴테의 깊은 마음속에 자리잡은 그 二元的인 요소 그리고 이 작품의 근본이 志向하는 취지는 다음의 도표로 표시될 수 있다.

 

                        예술가(뮤즈) 미의 균형=조화의 세계                     

       괴테  

                        예언가(에피메니데스) 역사의 의식=지혜의 세계

 

  괴테는 작품을 통해서 위의 두 세계 고차원적으로 연결시키고 또한 그것을 현실의 共時性 Synchronique으로부터 영원의 通時性Diachronique으로 擴大시키려 한 것이다.

 

  예컨대 작중의 <전쟁의 魔神>이 반드시 敵國에 의해서만 횡행하게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조국의 장래를 위태롭게 하는 요소들은 국내의 과격한 國粹主義者들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전쟁의 귀신>들이며 <계략의 요서> 들인 것이다.

 

  괴테적 관점에서 나라를 위해 정말로 간절히 요구되는 것은 <조화의 경지>이며 <지혜의 세계>인 것이다. 독일의 군국주의가 그 후 결코 나라를 반석위에 올려놓지 못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괴테의 관점이 결국 옳았음을 의미하며 그의 사후 거듭된 독일 민족의 비극들은 그 점을 너무나 명백하게 뒷받침하고 잇다.

  반면 독일이 양차대전에 패하고 전 민족이 멸망 직전에 처하게 되었을 때마다 국가를 정신적으로 지탱해 준 힘은 언제나 괴테적 사상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내부적(內部的)인 그 힘뿐 아니라, 외부적(外部的)으로도, 독일 민족을 문화 민족으로 대접받게 만들고 군사외교적인 보복을 모면하게 해준 데도 괴테의 드높은 휴머니즘 정신이 결정적으로 작용하였던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작가로서 그 존재의의(存在意義)를 단순히 현실적이고 민족적인 차원에서 찾을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괴테의 경우에는 조국관과 범인류적 이상 사이의 대리보디는 관점에서 논란이 제기되는 특수한 사정이기 때문에 과연 그가 애국적이었느냐, 그리고 또 애국이란 궁극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는 것이 새삼 문제시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에커만에게 다음과 같이 소신을 밝힌 바 있는데, 그것이 바로「에피메니데스」의 근본 취지와 연결되는 것으로 믿어진다.

 

  한 사람의 작가로서 일생 동안 편협한 선입견을 타파하고, 민족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국민 정신을 고상화(高尙化)하고, 품위를 높이는데 헌신하였다면 그것이 바로 애국Patriotisch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Eckermann, 1832)

 

  괴테가 그의 작품「파우스트」를 비롯하여,「서동시집」,「친화력」등 많은 작품에서 그와 같은 뜻으로 민족을 깨우치고 국민의 품위를 높이는 데 공헌한 사실을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여기「에피메니데스」에서 그 점이 직접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이 지니는 폭넓은 의의를 단순히 일의적(一義的)으로 국한하여 구명하려는 것은 아니다 괴테 자신의 말대로 이 작품은 <독일의 도처에서 계속 상연되어야 하고 당대에서 뿐 아니라 먼 후일까지도 계속 되어야> 하므로 그 속에 감추어진 진실한 말마디들의 심오한 뜻은 앞으로도 무한히 되풀이해서 새롭게 음미되어야 할 것이고, 시대의 변천과 더불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빛이 되어 주리라고 확신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