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후 독일사회의 전망

 

 

이 상 욱*

 

 

Ⅰ. 서  론

 

  1. 문학논쟁

 

  통독 된지 10년에 이르는 지금 통독을 전후해서 수 많은 보고서와 연구 자료들이 발표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정치적 분단을 소재로 하는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것은 독일의 상황이 어느듯 긴장의 상황에서 화해의 상황으로 들어섰다는 증후가 보이기 시작한 때라고 할  수 있다. 통일을 전후한 작품에서는 민족 정체성의 추구와 정체성 상실로 인한 내적 갈등의 몸부림들이 작품을 통해 마구 쏟아져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순수 문학의 차원에서 시작된 작품활동이라기 보다는 이념적 논쟁 내지는 그들의 정체성에 대한 비판이 주로 활동의 근간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 작품들은 대개가 Peter Schneider의 <Mauerspringer>와 같은 작품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정체성 확립의 혼란을 거듭하면서 동서독 어느 곳에서도 안정을 취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인 작품이 있는가 하면,  Christa Wolf 논쟁에서 나타났던 것과 같이 이념의 우월에서 과거의 이념의 앞잡이들의 책임을 추궁하는 논쟁이 문학의 주된 테마로 다루어진 작품들이 있는가 하면, 통독 후 급격하는 경제적 혼란으로 인한 사회구조조정에 대한 필요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Peter Schneider 의 경우 주인공은 동서독 어는 곳에도 그 체제에 안주하지 못하고 동서독의 장벽을 넘나들고 방황하면서 적극적으로 어느 체제에 속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는다. 이는 독일이 그토록 그리던 통일을 이루고 난 후 그들의 유토피아는 현상에서 여전히 멀어저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추구하는 바가 끝내 열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독일의 진정한 장벽은 가시적인 베르린 장벽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 속에 굳게 닫힌 마음의 장벽에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갈등만 커 가는 데서 생긴 것이다. 이는 크리스타 볼프 논쟁에서도 언급된 바이지만 가시적 베르린 장벽을 허믈어뜨리는 것 못지 않게 독일인의 마음 속에 자리한 서로의 불신의 장벽을 허물고 화합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급선무라는 것이다. 이를 주장한 대표적인 작가는 Martin Walser다. 그는 <Die Bürgschaft>(1985) 에서 독일의 정체성 문제를 두고 독일인이 겪었던 방황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를 효과적으로 그리기 위해 작가는 이 작품에서 서독인이 동독으로 건너가서 겪는 그들의 일상생활을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은 무감각해진 독일인의 의식 상태가 위기에 가깝게 여겨졌기에 이들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 이들의 치유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통독이 이루어지자 직접적으로 대두된 문제로 통독 비용에 관한 문제가 다루어지고 있다. 통독으로 인한 예기치 않았던 엄청난 비용을 국민들이 부담해야 하자 이에대한 불만과 불협화음이 커졌던 것은 사실이다. 통독으로 인한 외적인 문제는 해결될 수 있는 문제로 보이나 이를 계기로 돌출되어 나오는 오랜동안의 불신과 이질성에 따른 심리적 거리감 내지는 반목 질시는 그리 쉽게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Walser의 작품 <Alfred Dom>은 2차 대전 말기 드레스덴에서 있었던 2월 사건, 전쟁에 승리한 4강국의 회담, 동베르린 노동자 봉기, 장벽 구축 등과 같은 사건들을 주인공의 생을 통해 부각시키고 있다. 이들의 사건은 다만 주인공의 회상을 통해 재현되고 있다. 엘베강 유역의 아름다운 정경은 이를 방문시 목도하는 동독 일상의 황량함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드레스덴 시민들의 불만과 고립감은 방문할 때 마다 점점 증폭되고 있다. 이는 외적 경제적인 격차로 인한 괴리감보다 점점 더 심적인 괴리감을 증폭시키고 있는 연유다. 주인공을 통해 잃어버린 유년기를 찾아가는 과정이 분단된 독일사의 연대기로 승화되는 대목이다. 줄거리 마지막에서 주인공은 결국 찾던 길을 찾지 못하고 만다. 이유인즉 그의 유년시절 이상향은 미래를 향한 적극적 비젼을 전혀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예는 분단의 상처가 통독 후에도 어떻게 남아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들의 극복이 분단 이후 선결해야 하는 문제로 대두되고 있음을 보여 준 것이다.

  본 논문은 통독 후 10년을 거쳐 오면서 독일의 변화양상을 따라서 연구 보고서를 제출한 것을 요약하여 약술하고 앞으로 추진될 연구의 전망을 개관한 것이다.

 

 

Ⅱ. 본  론

 

  통독 이후 직접적으로 독일에 대두된 문제는 경제적 부담, 정치적 이질화에 따른 불협화음으로 인한 새로운 고통을 맞게 되면서 가장 뜨겁게 논쟁의 열기를 띄었던 부분으로 작가들 간의 과거 활동에 대한 비판논쟁이었다.

  작가가 정치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이미 괴테 시대에서부터 시작된 문제였지만 최근 구 동독 출신의 작가 Christa Wolf 가 <남은 것이 무엇인가?> (Was bleibt)(1990년 6월 발표) 라는 책을 발표하자 이를 기화로 작가에 대한 논쟁이 본격화 되기 시작했다. 이는 Wolf의 작가적 태도에 불만을 품었던 구서독 출신 작가들이 Wolf를 위시해서 통독전 독일정부에 협조 또는 정치적 앞잡이 노릇을 했던 작가들에게 공격의 화살을 돌렸기 때문이다. 즉, 이들은 작가로서 사명을 버리고 오히려 동독 정부의 “비밀경찰Stasi”의 협력자로서 그당시 동독의 망명자들을 비난했으며, 동독인은 동독에 머물면서 사회주의 국가건설에 전념할 것을 종용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거부감에서  Ulrich Greiner 는<Die Zeit> 신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es ist diese für Christa Wolf typische Unschärfe -Relation zwischen der wirklichen Welt, die als ferne Ahnung herüberschimmert, und der poetischen Welt ihrer Texte. Aus dieser Unschärfe-Relation hat sie schon immer ästhetischen Mehrwert geschlagen. nur war dieser Mehrwert noch nie so gering und schäbig erkauft wie in diesem Texte. Erkauft durch vorgebliches Nichtwissen, durch sträflich naives Erstauntsein. ... Ein trauriger Fall. Ein kleines Kapital aus der langen Geschichte Deutsche Dichter und die Macht. Mut zu haben ist schön, aber niemand darf dazu verurteilt werden, ihn haben zu müssen. Daß Christa Wolf diesen Text in der Schubalde behielt, ist ihr gutes Recht.

 

  Christa Wolf는 서독에서 유명한 뷔히너상까지 받았으나 그녀의 과거경력은 실은 수치스러운 것이었다. 자신이 신상의 발언을 했기에 이해하는 차원에서 그녀에 대한 비평이 이루어졌을 따름이다. 그녀가 적극적으로 정치망명자들을 감시하고 이들을 탄압했다는 것은 절대로 그녀의 말대로 환경적인 영향에서 행해진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ꡔ남은 것이 무엇인가ꡕ라는 작품을 들어서  “이 책의 원고를 이미 1979년에 구상해서 그 때 벌써 동독정부를 비난했으나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책상설합 속에 보관해 두었던 원고를 이제 발표하게 된 것이며 오히려 자신이 구 동독정부의 희생자가 되었다.”라고 하는 변명은 지나친 감이 있다.

  이에 대해 Frank Schirmacher는 <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Literatur und Welt füreinander sein können. Man hat mit Recht daraufgewiesen, daß der Nazi-Staat die intellektuelle Klasse nicht zuletzt durch suggestive Kategorien wie Ordnung, Preußentum, nationale Selbstzucht auf sich verpflichten konnte. Um so erstaunlicher, daß Dienstverpflichtung der Intellektuellen trotz dieser Erfahrung noch einmal gelang: Sozialismus, Solidarität, schäpferische Widerspruch. ...

 

  이와같은 논쟁 못지 않게 통독 후 작가들의 입장에서 혼란을 거듭하게 된 것은 서독작가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대부분 반통일적인 입장을 취해 왔다는 것이다. 이들은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국민의 여망이 백림의 장벽을 드나드는 열린 공간 속에서도 통일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았을 뿐 만 아니라 통일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이들은 오히려 독일통일의 편협된 생각보다는 유럽 통합이라는 보다 거대한 꿈을 실현시키는 것이 독일의 장래에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이들은 독일이 유럽통합이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하나의 집에서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보다 더 세계관적인 시각으로 보면서 자신을 과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같은 이념의 혼돈을 이룬 시대에 끝없는 싸움은 비생산적으로 치닫았으며, 이에 통독 후 독일의 앞날에 대한 우려를 표방했던 작가들은 상당히 타협적인 의견을 내어 놓게 되었다. 우선 그들은 볼프의 변명, 즉, “과거 서독 정부도 이미 동독정부를 합법적으로 인정했으며”, 그녀 자신이 이미 서독정부로부터 상까지 받은 바 있는데, 이는 그녀의 문학을 서독이 이미 인정한 상태가 될 수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녀의 주장은 서독 내에서도 사회주의 지지자들이 있듯이 사회주의의 이상이 나쁘지 않다는 이상국가 형태에 대한 견해는 자유로와야 한다는 것과, 그들이 구사하는 언어는 숨겨진 언어이기 때문에 동독정부에 협력하는 문학은 사실상 있지 않았다는 것이었으며, 정치적 상황을 두고 지식인을 이용하거나 또 그 결과에 대해서 증오하는 풍조는 오래전부터 내려온 잘못된 풍조이기 때문에 이것은 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같은 변론과 더불어 통독후 국가체제의 변화에 따라 누구보다도 심리적인 불안을 갖게 된 구동독인은 현재까지도 ‘불안한 자유’를 받아 들여야 하는 강요 앞에서 심지어는 옛 동독체제를 동경하는 작가들을 노골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이와같은 이해에서 옛동독인의 과거활동에 대한 일말의 자기비판이 있은 후에 이들을 용납하자는 일부의 의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작가들은 이들의 과거 역사적 죄과를 잊고 덮어둠으로써 국민적 화합을 이루고, 이를 거울 삼아 새로운 통일독일의 화합을 이루자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2. 우익작가들의 목소리

 

  통독이후 문학논쟁이 구동독체제 하에 있었던 작가들의 책임에 대한 논쟁에서 화해를 위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자는 목소리가 잠잠해지는 듯 하더니 갑자기 독일의 과거사를 거부하고 모든 전통을 거부했던 60년대 말의 급진 좌익세력에 대한 비판의식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들의 비판에 앞장선 사람들은 Botho Strauß, Hans Magnus Entensberg, Tankred Dorst, Peter Handke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표방한 이데올로기는 과거 미국 내부에서 일어났던 인종차별 내지 소수민족간의 갈등 속에서 국민적 화합을 도출하려했던 새로운 문화 즉, “복수문화주의”(Multikultralismus)에서 비록된 것이며 거슬러 올라가서 독일 낭만주의 문학의 “세계화주의”(Universalismus)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들의 이념은 순수했던 과거 계몽주의자들이 부르짖었던 것과는 달리 종족과 언어풍속, 민족정신, 종교등과 같은 민족의 공유된 문화에서 발생한 국가적 통일성을 찾는데 있었다. 때문에 과거와 같이 낭만주의적 풍토에서 행해진 것이 아니라 현실세계의 절박한 문제에서 발생한 것이다. 그것은 당면한 갈등 등에서 일어난 정신적 공허감을 충족해 주어야 한다는 데서 연유한 것이다.

  때문에 1989년 독일 내에서 통독의 물결이 일어나기 시작하자 성급하게 독일역사에 대한 책임규명을 부르짖었던 젊은 세대의 조급함과는 거리가 먼, 개인주의적인 “자유서방인”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극단적인 감성주의적 물질주의자들의 세력을 방지하려는 애국적인 열정이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목소리를 낸 사람들은 젊은층의 과격한 저항정신의 소유자라기 보다는 중견의 작가들에 의해서 오히려 대변되고 있었다.

  Botho Strauß의 수필집 <넘쳐드는 희생양의 노래> (Der anschwellende Bocksgesang)는 독일의 과거사를 거부하고 모든 전통을 거부했던 60년대 말의 급진적 좌익세력에 대한 비판을 가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고착화에 빠지거나 환상적인 유토피아에 빠진 경솔한 젊은층을 공격하고 이들의 값싼 향락주의 내지는 개인주의를 항거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은 현대의 얼굴들의 횡포로 대중을 우롱하는 언론 편승자들을 비판할 뿐만 아니라 여론을 조장하는 사이비 계몽자들이나 자포자기한 자기소외자들을 또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급기야 독일 전체의 좌파 우파의 싸움으로까지 번지면서 연일 신문에 반박하는 글들이 쏟아지게 했으며 이것이 때마침 일어났던 신나치주의와 맞물려 Strauß의 선전포고에 해당하는 좌파비난은 약간의 설득력을 잃게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작품 <속죄양>과 마찬가지로 그의 <이타카>(Ithaka)도 큰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Homer의 ꡔ오딧세이ꡕ를 각색한 것인데, 오딧세이와 같이 그는 20년간 방랑생활을 마치고 거지로서 섬으로 돌아와서 그녀를 구혼하는 많은 구혼자 가운데서 자기의 부인을 만난다. 그는 자기의 부인에게 자신을 알리고 많은 구혼자들을 물리치고 , 신은 오딧세이와 백성들 사이에 옛질서의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계약을 체결한다. 이 작품은 <뮌헨 캄머쉬필>(Münchener Kammerspiel)에서 시연되었을 때 정치적 상황이 미학적으로 처리되었기 때문에 많은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되었다.

  <Die Süddeutsche Zeitung>은 이 작품이 <속죄양>과 더불어서 가장 보수적인 성향을 불러 일으킨 작품으로 확인했다.

 

  “Allein schon wie Strauß den verwahrlosten Zustand beschreibt, in den Penelopes Freier den Palast von Ithaka gebracht haben, erinnert unwillkürlich an die Zustandbeschreibung der bundesdeutschen Wohlstands-und Talkgesellschaft im ‘Bocksgesang’. Und ähnlich wie der Essay eine ‘rechte Phantasie’ von ‘unaufgeklärter Vergangenheit’ und ‘mythischer Zeit’ verschwört, träumt das Stück von dem alten Königtum, das ihr von alters her kennt, von blutiger Reinigung und der alten heiligen Ordnung, die Odysee wiederherstellt.”

 

  뿐만아니라, 이 작품은 많은 구혼자들을 죽이는 장면을 묘사함으로써 고대 그리스의 소설에서 보여진 잔인함이 19세기의 독일 내지는 Friedrich황재의 복고를 동경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Strauß의 신화를 통한 복고주의는 통독 후 급속도로 확산된 물질만능주의자와 이기적 향락주의자에 대해 각성을 촉구하고 건전한 독일의 건설을 위해 독일의 옛 정신을 회복함으로써 독일의 정신적 질서를 회복하고 정신적인 지주를 수립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문학에서 비정치성을 주장했던 Peter Handke조차 같은 목소리를 내게 했다. 그는 유고슬라비아 전쟁에 대한 극단적인 보수주의적 목소리를 내면서 세르비아인의 편에 서게 되었다는 비난을 심하게 받게 되었다.

 

  “Also wenden sie sich zur Erholung von dem undankbaren Kriegsschauplatz Jugoslawien ab und dem Kriegsschauplatz Handke zu. Um nicht wieder an der Wirklichkeit zu scheitern, sehen sie von ihr ab. Sie basteln sich eine. Das Ergebnis ist ein Handke, der nicht nur niedergemacht werden darf, der niedergemacht werden muß. Wer will schließlich noch mit einem Schriftsteller zu tun haben, der in einer Diskussion jemandem mit der Bemerkung über den Mund fährt: ‘Sie können sich Ihrer Leichen in den Arsch stecken’ ? ...... Schaut Handke um sich, sieht er eine Person, die aus Handke-Bestandteilen zusammengesetzt ist, von denen die meisten gefälscht sind. Vermutlich wird er bereits das Empfinden gehabt haben, er könnte angesichts dessen den Verstand verloren. In dem Augenblick aber wird er den Zuruf der Mente vernommen haben: Jetzt hat er den Verstand verloren. Und das wird ihn vor dem Schlimmsten bewahrt haben.”

 

  그도 Botho Strauß와 마찬가지로 옛독일의 신화적 배경에서 불굴의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고 하면서 물질만능주의에 물든 서구인을 비판하고 옛독일의 자연 상태를 찬양하면서 복고주의적 정신을 부르짖었다. 이에 대해 Thomas Assheuser는 <Die Zeit>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Wie Strauß, so setzt auch Handke ein goldenes und unheilvolles Versprechen in die Welt: Erst dann, wenn die Gegenwart als ganze überwunden ist, wird hinter dem Schleier der mißratenen Zivilisation das eigentliche Leben und die eigentliche Kultur zum Vorschein kommen- das große Andere, das Sein hinter der Realität, die wahre Sprache hinter der falschen Kommunikation...”

 

  그 외에도 옛독일정신의 복고주의를 부르짖었던 신우익 작가의 반열에 선 작가들은 Martin Walser, Hans Magnus Enzensberger 등과 같은 많은 작가들이 있다.

  이와같은 이념적 갈등은 옛동독인과 서독인의 정서적 이념적 갈등 못지 않게 독일의 통일을 이루는데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3. 독일의 사회 구조 위기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통독 후 동서독 간의 이념적 정서적 갈등 외에도 통독후 급변하는 사회제도 변화와 이질적 통일로 말미암아 물밀듯이 몰려온 다양한 목소리들은 독일의 사회구조를 불안으로 치닫게 했다. 더군다나 독일이 1920년 이래로 끊임없이 증가해 왔던 실업자 수가 400만을 넘어서자 독일의 국민 순수입이 감소하고 경제 사회 교육 문화 전 분야에 걸쳐 위기에 직면한 변화를 강요받기 시작했다.

  독일의 한 소식지는 다음과 같이 보고하고 있다.

 

  “(...) In Interviews hatte der Präsident der Bundesanstalt, Bernhard Jagoda, erklärt, es spreche sehr viel dafür, daß die Zahl ähnlich sei wie im September, als der Vier-Millionen-Wert zum ersten Mal seit fast zwei Jahren knapp unterschritten worden war. (...) Bisher geht Bundesanstalt davon aus, daß im Jahresdurschnitt 4,3 bis 4,4 Millionen Menschen ohne Arbeit sein werden. Im kommenden Jahr könnten sich noch Ansicht von Experten die schlechter gewordenen Wirtschaftsprognosen  negativ auf den Arbeitsmarkt auswirken.”

 

실업자 수가 증가하자 독일의 힘이 약화된 가운데 처음부터 직업의 기회를 갖지 못한 소위 “3분의 2 사회” (Zweidrittel-Gesellschaft)의 구성원이라는 소외계층이 발생되어 사회에 큰 부담을 안겨주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은 이제 더 이상 본래의 가난한 자들과 구별이 곤란할 정도로 각종 세금과 연금의 부담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자들이다.

  특히 실업자 문제 못지 않게 사회전반의 구조를 위태롭게 하고 있는 문제가 각종의 사회보장제도에 따른 부담금의 문제이다. 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연금의 문제는 현재의 연금의 지불이 고용자들이 부담한 경비로 지급되고 있는 바, 연금부담자와 연금수혜자 사이에 있어서 균형이 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데 1960년도에는 연금부담자와 연금수혜자의 비율이 약 3:1의 추세였으나 현재에는 점차로 그 비율이 약화되어 2025년 경에는 인구감소와 고용감소등으로 인해 그 비율이 1:1 정도로 될 것 같아 큰 혼란이 올 것은 분명하고 따라서 여기에 대한 대비는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와같은 불균형의 예는 병보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병보험에 있어서 그 부담이 점차로 증가하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 요인에 따른 것이겠으나 의술의 발달로 인한 인간수명의 연장 등으로 인한 자연연령의 증가로 인해 더욱더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연금 비용부담자들은 점점 더 무거운 부담을 갖게된 것이고 이에 대한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해서 각종 세금혜택을 찾아 선의의 세금 부담경감과 더불어서 고의적인 세금포탈자까지 그 수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또한 이를 감독하고 정책을 수립해야 하는 국회위원들 조차도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지지기반을 잃어버리면 그들이 국회위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지 못하고 각종 사회보장금을 지불하고 국가의 예산을 낭비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152종에 해당하는 각종 연금관리 공단이 설립되어 어떤 의미에 있어서는 이들이 국가에 기생하면서 막대한 국가의 예산을 소모하고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 집단은 점차적으로 사회 기반을 굳혀 가면서 관료화 되어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각종 변호사들의 도움으로 세금을 피해가고 있어 국가의 세원은 줄어가는 반면 이들에 대한 세무상담비용 내지는 수수료는 급증하고 있는 추세이다. 때문에 특이하게도 현재 독일은 이러한 세무상담 내지는 변호를 위한 전문인이 늘어가고 있어 이에 대한 연구는 전세계에서 1위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논문이 70% 이상이 독일어로 발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사회보장제도가 점차 그 뿌리가 흔들리게 되자 독일 내에서는 각 분야에서 기존의 제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교육계에서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

Georg Picht는 1964년 그의 논문에서 독일사회가 소외계층에 대해서 기회의 균등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많은 재능을 잠재우고 있다고 하면서 국가는 이들에게도 교육의 균등을 제공하여 많은 재능을 개발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정책은  어느정도 성공하여 독일의 대학이 지식의 본산이 되고 전 세계의 유능한 인재들이 양산되게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에 와서는 이와는 전혀 반대 방향에서 의의를 제기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즉 교육의 양적 성장은 질적 퇴보를 가져 왔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 학생들의 유학추세도 우수한 학생들이라기 보다는 교육의 부담을 갖지 않고 공부할 수 있다는 잇점 때문에 저개발국 출신의 학생들이 증가하는 추세도 독일의 대학의 질을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이와같은 일련의 변화 속에서 독일인의 직업에 관한 의식 또한 경직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독일은 옛부터 장인정신을 존중해왔기 때문에 한 직업에서 다른 직업으로 이동한다는 것이 용이치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직업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자격증(Meist)이  평생을 바쳐야 취득이 가능한 상황에서 현재 무더기로 양산되는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대적 요청에 맞는 직업에 쉽게 순응하고 또 변화에 따라 다른 직업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하는바, 현재 독일의 상황이 이에 적응하고 있지 못한 상태이다.

  무엇보다도 현재 독일은 이와같은 외적 변화에 대한 문제 못지 않게 독일인의 외적 문제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독일이 국가사회주의를 거쳐 오면서 과거문제에 대한 부담과 자신이 희생을 당하고 있다는 “희생의식”(Opfermentalität)에서 비롯된 문제가 있다는 것과 독일시민들에게서 계몽주의 이후로 자유와 책임의식이라는 건전한 사고방식이 점차적으로 사라지고 모두가 남에 의해 희생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팽배해지면서 이 희생의 대가를 모두가 국가로부터 받으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런 현상은 통독 이후 동독인이 갖는 불만과 합세하여 “피보호의식”( Klientenmentaltät)으로 형성되면서 이것이 서서히 집단적이고 조직적으로 그 요구를 표출시키고 있어 60년대 이후 힘을 잃은 학생운동권과 합세하여 정치적 조직을 결성하여 집단화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데 있어서 그 위기가 또한 고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독일 사회에서 자신의 개발을 촉구하는 경쟁사회 분위기를 저해하고 “업적 대신 향락”이라는 병적 사회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재분배 사회를 지향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4. 경쟁사회 지향인가? 재분배사회 지향인가?

 

  독일이 이미 전술한 바와 같이 1990년 거의 불가능하게 보였던 통독을 기적처럼 이루었으나 그 결과 엄청난 통독 비용과 유럽에서의 통독을 위한 동의조건으로 건 독일의 입장약화 등으로 인해 통독 후 10여년을 지난 지금 급격한 변화와 더불어 예기치 않았던 부작용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게다가 이미 152종에 달하는 방대한 사회보장제도와 각종 단체들의 난립과 더불어 평등주의적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물결이 가세함으로써 독일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에 독일은 구조조정을 통해 국제사회에서의 경쟁에 대비하려고 하고 있으나 많은 경제 기득권자들과 각종 사회 보장제도에 의존하려는 “수동적인 더부살이” 정서를 가진 계층간의 갈등으로 이 또한 용의치가 않다. 이러한 상황은 매우 복잡하여 구동독인을 포함해서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계층은 보다 많은 사회보장을 요구하고 있고, 이에 못지 않게 자신들의 노력의 대가로 얻은 분깃을 세금이나 각종 사회보장을 위한 출연금으로 소득이 줄게 된데 대해 불만을 품은 계층은 이에 저항하거나 아니면 합법적인 탈세나 제산 도피를 하는가 하면, 복잡한 세금제도 등으로 전문인이 아니면 접근할 수 없는 각종 혜택영역을 점유하려는 계층 등으로 국가적 화합이 심히 약화되어 있음을 앞에서 언급했다.

  이와같은  불협화음의 사회 속에서 서로가 극단적인 자기의 이익만 추구하고 있는 가운데 독일의  1998년 9월 27일의 선거 결과는 사회주의자의 부활(Die Renaissance des Sozialen)을 의미하는 결과가 되었고, 이로 인해 독일 사회의 구조는 불필요한(?) 각종 단체와 기구들이 설치됨으로써 상대적으로 자유경쟁의 시장경제 체제가 수정되면서 국가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독일은 개혁의 필요성을 부르짖는 목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때늦은 감이 있지만 각종 사회보장 단체를 위시해서 불필요한 기구들을 구조조정을 통해서 정리할 필요가 있지만 기득권을 가진 세력에 밀려 이것이 용이치 않는 실정이다.

  이와같은 상황에서 독일문제에 대한 연구가 다각도로 행해지면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들이 많은 학자들에 의해 제시되고 있다. 독일이 통일전 분단국가라는 점에서 한국과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었으나 이제 통일을 실현하고 이에 따른 문제들이 대두되면서 통독후 독일 문제에 대한 많은 연구들은 통일을 앞둔 한국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며, 특히 경제적으로 IMF의 지도체제 하에서 국가경쟁력을 재고하기 위한 구조조정 단계에 있는 한국에는 선행된 독일문제에 대한 연구들은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독일의 구조조정문제는 지금까지 사회보장제도가 가장 잘된 나라들 중의 하나인 독일이 방대한 사회보장제도 등으로 인해 적지 않은 제정적 부하를 지고 있는 바, 현재 국민 연금제도 실시 후 많은 갈등을 겪고있는 한국이 한번은 반드시 참조해 보아야 할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이와같은 상황에서 한국에 있는 독일문학 내지는 독일학 연구자들이 분단문학, 분단극복문학, 통독문학등이나 통독과 독일 경제,사회 등에 관한 분야별의 문제를 접근하는 연구들을 많이 발표하였으나 이제는 최근 독일 사회의 표면적 문제의 근저에 자리한 집단 이기주의의 배경에서 노정되는 이념갈등에 관한 심층적 분석연구가 요청되고 있다.

 

  앞서서 언급한 바와같이 현재 독일은 통독을 이루어낸 후 경제적 부담과 동서독이 합해진 상황에서 이념적 갈등 및 이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한 극단적인 집단이기심의 대립 등으로 전체 독일의 뿌리를 흔들지도 모르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는 사회보장제도로 일변된 면에서 짐작하듯이 독일의 평등주의적 사회주의의 지향은 더 이상 냉엄한 국가간의 경쟁 앞에서 그 힘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국가 구성원의 화합마저도 자칫 손상을 가할지도 모른다는 보고이다. 이와같은 사실로 미루어 보아 “독일의 생산 모델 내지는 경제 모델의 혁신”과 “방어적인 출자”(defensive Investition)와, “개혁의 구조기반 약화”(Strukturschwächen im Innovationsgeschehen)등에 따른 대비책과, “고용분담의 지연”(Rigidtäten der Arbeitsteilung)에 대한 연구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독일 자동차 공업의 성공사례”에 대한 자료에서 독일 문제에 대한 연구의 방향을 잡을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 자료에서 얻은 보고의 견해는“1990년 초반부에 독일 자동차 산업의 예기치 않은 위기는 생산 모델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생산원가의 상승을 통해서 발생했는가 하면, 90년대 중반에 와서 자동차 공업의 신속한 회복이 독일내의 임금 삭감에서 얻은 이익이 아니라, 공업의 세계화 정책에 기인한 것”인 바, 독일내의 “경쟁사회 지향”과 “소득 재분배 사회 지향”이라는 이념적 갈등에서 계층간에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면서 서로의 이익만 챙기려하는 허위적인 이데올로기를 불식시키고 국가 경쟁력 강화에 우선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90년도 중반 독일여론조기관(Institut für Demoskopie)의 한 보고서가 밝힌 바와같이 “독일이 자유경쟁 사회 보다는 평등사상, 즉 사회주의 사상을 더 선호하고 있다”는 데에 대한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한 또 다른 우려는 영국의 Anthony Giddens( Direktor der London School of Economics)의 영향을 받은 Tony Blair가 지휘하는 노동당의 “제 3의 길”(the Third Way )의 이념이 독일 사회에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상황으로 볼 수 있다.

  요컨대 오늘의 독일문제는 한마디로 문제 자체만으로도 감당키가 어려운 지경인데, 더욱 문제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현재 우리의 정치 난맥상과 마찬가지로- 최고 정책 결정 기관인 국회에서 여/야가 현안을 둘러싼 의견 조율에 실패, 국정은 사실상 어려움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그런가 하면 이 분열상은 정치 차원을 넘어 경제, 사회, 문화 심지어는 시민 개개인의 일상 생활 양태에서도 관찰되고 있다. 예컨대 유럽화폐통합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한편으로 ‘주변국들에 협상조건으로 제시한 독일 마르크의 포기와 더불어 지리적, 경제적 특권을 포기하고 유럽공동체의 길에 적응하자’는 입장과, 다른 한편으론‘ 이웃 국가들의 입김을 차단하고 옛 독일의 길을 걸으면서 지정학적, 경제적으로 유럽 중심국가의 주도권을 잡으면서 그 세력을 확대, 강화해 나가자’는 주장이 아직까지도 화합을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유럽 화폐 통합을 둘러싼 여론 조사 결과 참조) 독일은 유럽 화폐통합을 실현시켰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일상 생활 의식에로 시각을 돌려보면, 문제의 심각성이 어느정도인지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를테면, 철저히 ‘시장경제 논리’에 입각하여 생산성과 부의 극대화를 꾀하는 세력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론 국가의 주체로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와 의무에 충실해야 하는 자주독립적 책임의식은 저버린체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으려고만 하는 “수동적인 더부살이”(passive Kostgänger u. Klienten)계층의 수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요컨데 대전 후 독일 정치/경제 체제의 상징이었던 “사회적 시장 경제”(soziale Marktwirtschaft)를 견고하게 지탱해 오던 내적 조화는 이제 사회적(sozial)이고자 하는 세력들이 점점 그 세력을 굳혀 가면서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포장된 평등주의적 사회주의로 인해 그 힘을 상실하면서 화합의 힘은 약화되었고 오히려 악덕 자본주의의 극단적인 의기주의(die Ellbogenmentalität des Kasinokapitalismus)의 치부를 들어내는 탈세 영업자(Schwarzarbeiter) 나 자본도피자(Kapitalflüchtige)들은 그들 나름대로 약삭빠른 대응책 강구를 일삼고,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국가에 대한 더부살이 근성으로 분열되고 있는 실정이다.

  요컨대 이들의 문제를 크게 구별해 보면 “경쟁사회 지향인가? 재분배사회 지향인가?”를 두고 서로 대립되어 있는 문제로서 이 문제에 대한 연구는 무엇보다도 독일 사회의 심층적 분석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5. 통독후 독일에서의 새로운 변절자

 

  이상의 연구에서 나타난 일련의 문제들은 독일이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큰 변화를 거치면서 독일 사회가 매우 불안하게 된데서 그 심각성을 노정하고 있다. 그것은 구세대가 새로운 탈바꿈을 하는 가운데서 이념의 혼란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들 이념의 혼란상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같이 새로운 우익단체인 “제 3의길”(der dritte Weg) 등의 다양한 모습들로서 예측불허의 새 기류들이다(unübersichtigkeit) 이들은 소위 양대측의 전환이라고 불리워지기도 한다.

  이들 이념의 전환에서 가장 큰 변화는 지금까지 좌익성을 띄웠던 독일 작가 내지는 정치가들이 갑작스럽게 우익지향으로 방향전환을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여러 가지 요인에서 분석할 수 있겠으나 쏘련의 붕괴와 더불어서 공산주의 체제의 와해와 급변하는 국제회와 더불어서 경제구조의 재편성등으로 인한 시대적 적응에서 과거역사에 대한 재평가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의 방향전환자들의 중요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독일의 녹색당원으로 60년대 학생운동의 대표자였으나 현재 독일보수신문의 대표지인 <die Welt>지의 주필이 되어 “현재의 독일현대화의 걸림돌은 좌익세력이라고” 까지 말하는 Thomas Schmid와 68년도 독일의 관료주의를 비난했던 자였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신자유주의자”(Neoliberaler), “배신자”(Verrat)또는 “파쇼주의자”(Faschicht)라고 까지 불리우는 Daniel Cohn-Bendit, FAZ를 공격했으며 USA를 심지어는 나찌시대의 SA또는 SS라고 까지 비난했으나 1991년 걸프전쟁에서 이란의 공격을 지지했으며 오늘날에는 유고전쟁에서 포격을 지지하기도 했던 Hans Magnus Enzensberger와 60년대 테러주의자 또는 좌익운동의 변호사였으나 현재 “애국주의자” 내지는 “국가주의자”로 급변한 Horst Maller 등과 그 밖의  H. Ch. Stroebelle , A. Dregger, H. Schmidt, R. Augstein, G. Schröder등이 새로운 변절자로 나타났다. 이들의 입장에 대한 변화는 아직까지 불확실한 점도 있으나 이들에 대한 연구는 독일의 장래를 예측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Ⅲ. 결  론

 

  독일이 우연찮게 통일을 이루었으나 통독후 분단의 문제는 만만치 않았다. 그것은 외형적인 분단의 통일문제 못지 않게 심리적 분단의 문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더욱더 현저히 들어났다. 심리적 분단의 장벽도 동서독 간의 문제뿐만 아니라 계층간의 또는 사회지향 이데올로기간의 격심한 갈등 때문에 더욱더 두터워져 갔던 것이다.

  이미 논술한 바와같이 베르린 장백의 붕괴를 전후해서 80년대에 발표된 Peter Schneider의 <Mauerspringer>(1982)나 Martin Walser의 <Die Bürgschaft>(1985) 와 <Verteidigung der Kinderheit> 등의 작품들에서 독일의 내적 갈등을 반영하고 있었다. 여기서 나타난 문제점들은  민족 정체성의 추구, 정체성 상실로 인한 내적 갈등, 독일사회의 경직성에 대한 비판등이었었다. 이와같은 상황에서 통독이 이루어지자 갈등의 소용돌이에서 크리스타 볼프의 논쟁이 시작되더니 이어서 곧 좌우익간의 이념적 논쟁이 벌어지고 급기야는 계층간의 이해관계에서 그 쟁점이 첨예화 되어 갔다. 이것은 곧 독일 전체사회 내의 구조위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와 더불어서 새로운 사회구조 개편을 부르짖게 했으며 각자가 급격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지금까지 고수해왔던 이데올로기를 헌신짝처럼 벗어 버리고 발빠르게 독일사회에 적응하려는 움직임들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통독후 10년을 거쳐온 지금에도 전독일의 공감을 얻고 있는 작품은 아직 잘 눈에 뜨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누구하나 용이하게 오늘날 다양화된 독일사회를 진단하고 전망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이것을 전망하는데는 문학자는 문학자 나름대로 아직도 여전히 과가독일의 유토피아적인 꿈을 버리지 못하고 그 꿈을 실현할 것을 기대하고 있는 반면, 정치가 및 사회학자들은 자신들 나름대로 독일을 요리하고 세계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한 발빠른 움직임을 전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앞서 언급한 대로 통일독일 10년을 거쳐 오면서 발생되어졌던 독일사회 문제와 이들의 양상을 개관하면서 앞으로의 독일사회의 향방을 가름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기술해 볼 것이다. 바야흐로 유럽통일을 실현하고 독일이 제 2의 도약을 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들이 향후 독일이 변화하는 모습을 통해 전망해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기술된 본 연구는 앞으로 계속될 프로젝트와 더불어서 완성하고자 한다.

 

 

Literaturverzeichnis:

 

Baring, Arnulf : Scheitert Deutschland?, Stuttgart, 1997

Bridenkopf, Kurt : Anmerkungen und Alternativen zum Entwurf des Grundsatzprogramms der CDU, 1993

Emmerich, Wolfgang : Die andere deutsche Literatur, Opladen, 1994

Handke, Peter : Sommerlicher Nachtrag zu einer winterlichen Reise, Frankfurt/M. 1996

Lenke, Kurt u.a. : Vordenker der Neuen Rechte, Frankfurt/M. 1997

Schnell, R. : Geschichte der deutschsprachigen Literatur seit 1945, Stuttgart, 1993

Die Zeit, 01, 06, 1990

Die Zeit, 28, 02, 1997

Die Zeit, 199, Nr. 16

FAZ, 02,06,1990

Die Süddeutsche Zeitung, 19, 07, 1996

 

 

Zusammenfassung

 

                                                     vorgelegt von Rhie, Sang-Uk

                                                     Prof. der deutschen Abteilung

 

 

  Die vorliegende Arbeit nimmt sich die gewandelte soziale Lage in Deutschland nach der Wiedervereinigung zum Thema.

  Die kurzen Tage der Euphorie über die deutsche Wiedervereinigung sind vorbei. Die enormen  Kosten haben namentlich auf dem Hintergrund einer Phase des internationalen politischen und wirtschaftlichen Strukturwandels zu schweren Einbrüchen in der Lebensqualität in Westdeutschland geführt. Grobalisierung, der Zusammenbruch des Weltkommunismus und die Frage der europäischen Intergration haben die ideologischen Lager in der Bundesrepublik destabilisiert. Mit Habermas wird eine neue Unübersichtlichkeit diagnostiziert, die kein einheitliches Porträt der Gesellschaft als Ganzes mehr zuläßt.

  Die Auseinanderstzungen in der deutschen Literatur nach der Wiedervereinigung sind ein Symptom dieser ideologischen Verunsicherung. Der Streit um die Rolle der Schriftsteller in dem Unrechtstaat DDR und um die Neue Rechte zeigen den Verlust der ideologischen Heimat und die Hinwendung zur Kulturkritik.

  Die Wiedrvereinigung hat dazu für viele Deutsche den Schlußstrich unter die Nachkriegsgeschichte gezogen und die Normalisierung der Rolle ihres Landes in der Welt eingeläutet. Die Einbindung in die Europäische Union mit dem zwar unausgesprochen aber unübersehbaren Ziel einer europäischen Regierung hat die Frage nach der Bedeutung der Nationen in Europa wieder in den Vordergrund gestellt.

  Die Intensität und Vieldimensionalität ideologischer Umstrukturierungen zeigt sich an der Zahl und Prominenz derer, die ihre Lager wechseln. Der Verrat hat Konjunktur in diesen Tagen. Diejenigen, die heute die Bundesrepublik regieren, die ihre Spitzenpositionen besetzen und in den Medien ihr Meinungsklima bestimmen, haben Kindheit und Jugend in den Zeiten von Krieg, Nachkrieg und kaltem Krieg verbrac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