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속에 살아있는 괴테의 명시들에 관한 고찰

                                                      


                                                        진  영  철*


                


 

1. 서론


  지상에서 시정신의 수호자일 뿐만 아니라 근대의 유럽에서 영국의 셱스피어와 더불어 가장 뛰어난 문학의 천재로 칭송받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1749~1832)의 탄생 250주년을 맞이하여 그의 시에 붙여진 명곡들에 관한 글을 쓴다는 작업은 괴테가 평생동안 심혈을 기울여 쓴 파우스트 Faust보다 더 어렵고 불가능한 일로 생각되어 두려움이 앞서지만 그의 훌륭한 시들이 많은 음악가의 빛나는 작품 속에서 새로이 태어나 숨쉬고 있는 모습을 조금이나마 살펴보고 싶은 것이 나의 자그마한 소망이다.

  괴테는 1776년 2월에 26세의 나이로 칼 아우구스트 Karl August공의 초청을 받고 프랑크푸르트를 떠나 바이마르 Weimar로 가서 추밀고문관으로 일했던 까닭에 독일정부는 금년에 바이마르를 유럽의 문화도시로 지정하여 많은 기념행사들이 일 년 동안 그곳에서 치루어지고 있다. 괴테의 필생의 대표작인 <파우스트> 뿐만 아니라 구스타프 말러 Gustav Mahler의 제2교향곡 <부활 Auferstehung>도 여러 번 공연된다. 뿐만 아니라 일간지와 주간지를 비롯해서 TV 프로그램도 괴테애 관한 얘기를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지난 8월에는 바이에른 TV가 <괴테의 발자취를 따라서 Reisen mit Goethe>라는 프로그램을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두 주간에 거처 방영했고, <파우스트> 역시 그의 생일인 8월 28일경 TV에서 시청할 수가 있었다. 실제 약 80%의 독일인들은 괴테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며 세계 역사상 어떤 인물도 괴테만큼 상세하게 조명된 일은 없을 것이다. 괴테의 신봉자들은 시성의 사소한 일화까지 들먹이면서 전세계에 큰 영향을 준 둘도 없는 스승으로 신격화 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시성(詩聖)의 생애와 작품 간의 모순들은 어떻게 해명되어야 하고 지크리트 담 Sigrid Damm이 쓴 이중자서전 <크리스티아네와 괴테 Christiane und Goethe>가 계속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을 뜻할까? 그는 끝내 냉소적인 메피스토같은 인물이라는 신랄한 비평을 받아야만 할까? 그러나 괴테는 <파우스트> 속에서 부활절 산책 때 내뱉은 탄식 속에서 자신이 모든 인간중의 인간임을 강조한다.

 

  “여기서 나는 인간이지. 그래도 될거야!”

  “Hier bin ich Mensch. Hier darf ich's sein!”


  50년 전 괴테의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여 프랑크푸르트의 바올로 교회에서 토마스 만은 괴테를 “모순의 위대한 촉매자이며 극단적인 것을 수용하는 천재적 중계자”라고 극찬했으며, 프란츠 카프카는 1912년 일기에서 <괴테의 놀라운 본질>에 관한 논문을 쓰려고 하다가 몇 주 뒤에 “괴테, 고통 속의 위안”이라는 짤막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세계괴테협회는 <파우스트> 뿐만 아니라 거장의 감동적이고 예술가곡의 소재가 된 수많은 아름다운 시들 즉 <들장미>, <마왕>, <나그네의 밤노래>, <달에게>, <가니메트>, <멀리 있는 연인에게> 등을 비롯해서 나폴레옹이 에집트 원정시 몸에 지니고 갔다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빌헬름 마이스터> 및 <친화력>을 극찬한다.

  베토벤(1770~1827)은  제9교향곡의 4악장에 쉴러 Friedrich von Schiller(1759~1805)의 <환희의 송가 An die Freude>를 소재로 불후의 명곡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괴테의 텍스트에 붙인 곡도 비극 <에그몬트 Egmont> 서곡을 비롯하여 <고요한 바다와 즐거운 항해 Meeresstille und glückliche Fahrt>와 <미뇽 Mignon> 등 걸작들이 많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괴테의 작품이 소재가 된 명곡들을 교향곡과 관련악곡을 먼저 다룬 뒤에 베토벤, 슈베르트 및 브람스의 예술가곡들에 대해 설명하려고 한다.


 

2. 본론


  괴테는 생존시 모차르트 Wofgang Amadeus Mozart (1756~1791)를 우상처럼 여기고 <돈 조바니 Don Giovanni>보다는 <파우스트>를 오페라로 작곡해주기를 희망했지만 모차르트의 요절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괴테의 시 <제비꽃 Das Veilchen>에 붙여진 그의 가곡(K. 476)은 최고걸작으로 평가되며 <피가로의 결혼 Die Hochzeit des Figaro>를 착수하기 직전에 씌어졌다. 괴테가 1773년 경 발표한 <에르빈과 엘미레 Erwin und Elmire>에 나오는 발라드로 모차르트는 어떤 시집에서 이 <제비꽃>을 발견하고 곡을 붙였고 다행스럽게도 괴테의 시를 소재로 모차르트가 작곡한 유일한 가곡이기도 하다.

  그러나 괴테의 <파우스트>는 F. 리스트 Franz Liszt (1811~1886)의 <파우스트> 교향곡, G. 말러 Gustav Mahler (1860~1911)의 제8교향곡 <천명 Tausend>의 제2부 및 프랑스 작곡가 베를리오즈 Hector Berlioz (1803~1869)의 <저주받은 파우스트 Der verdammte Faust>와 구노 C. Gounod (1818~1893)의 가극 <파우스트>의 텍스트로도 사용되고 있다.


 

2. 1. 괴테의 <파우스트>와 교향곡


  교향시의 형식을 확립시킨 리스트는 고전적 교향곡에도 교향시의 방법을 활용하기 위하여 <파우스트 교향곡 Eine Faust-Symphonie>를 작곡했다. 이 교향곡은 3개의 악장과 종결합창으로 구성되어 있다. 리스트는 3개의 악장에 각각 “파우스트”, “그레트헨”, “메피스토펠레서” 등 세 인물의 이름을 마치 표제어인 것처럼 붙임으로서 그들의 성격을 음악으로 묘사하려고 한다.

  형식상으로는 베토벤의 제9교항곡과 흡사하지만 내용상 리스트는 고전적인 동기의 전개 등을 중요시하지 않고 종결장면 역시 <파우스트>의 종결장면과 일치시키면서 “암흑에서 광명으로” 즉 천국에의 길을 암시하고 있다. 리스트는 제1악장 “파우스트”에서는 진리에 대한 열망과 인간의 지식의 한계를 느끼는 파우스트를 그리고 있으며, 제2악장 “그래트헨”에서는 리스트의 여성에 대한 애정과 찬미가 보이며, 제3악장 “메피스토펠레스”에서는 리스트의 생애에서 발견되는 악마주의가 표현되고 있다. <파우스트>의 최종장면의 대사인 “모든 무상한 것은 다만 하나의 비유에 지나지 않는다.....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 간다”는 말러의 <천명의 교향곡>의 피날레에도 쓰이고 있다.

  괴테의 <파우스트>를 음악작품으로 만든 최고 걸작은 말러의 제8교향곡일 것이다. 관현악단과 합창단의 인원이 총 1028명이어서 “천명의 교향곡”으로 불리는 이 곡은 말러자신의 지휘로 뮌헨에서 초연에 실패한 작품으로 현재에도 드물게 공연된다. 그러나 말러 자신은 제8교향곡에 대해 “지금까지의 저의 교향곡들은 모두 이  곡에 대한 서주에 불과합니다. 종전의 작품은 모두 주관적인 비극을 다루었으나 이 교향곡은 위대한 영광과 환희를 찬양할 것입니다”라고 술회하고 있다. 그는 제2교향곡 <부활>의 사상을 더욱 정화시키고 피안에서의 불멸의 삶을 누리고 싶은 깊은 심정의 발호를 여기서 표현하려고 한 것이다. 4개에서 6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종전의 교향곡과는 달리 이 곡은 제1부와 제2부로 나누어져 있다. 제1부에서는 9세기 마인츠 Mainz의 대승정이었던 프라바누스 마우루스 Maurus의 저서에서 찾아낸 “오라, 창조의 성령이여”가 텍스트로 사용되었고 제2부에서는 괴테의 <파우스트> 중 제2부의 마지막 장면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작곡하고 있다. 첫째 부분에서는 합창과 메아리를 통해 오라토리오의 서주부분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며 둘째 부분에서는 제2소프라노가 죄를 뉘우치는 그레트헨의 주제를 노래하고 영광의 신인 어머니(제3소프라노)가 “오라! 드높은 하늘 위로 오라! 그가 너를 알아보면 뒤따라 올 것이다!”라고 노래하면서 셋째부분으로 넘어간다. 학자가 마리아를 찬양하고 신비한 합창으로 노래되는 다음의 구절들은 이 교향곡의 절정을 이룬다.

 

  “모든 무상한 것은 단지 비유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날 미치지 못한 것은 여기에서 일어났어라.

   엄청난 일이 여기서 이루어졌노라.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 가누나.“


  “Alles Vergängliche ist nur ein Gleichnis;

   Das Unzulängliche, hier wird's Ereignis;

   Das Unbeschreibliche, hier ist‘s getan.

   Das Ewig-Weibliche zieht uns hinan.”


 

2. 2. 관현악으로 다시 탄생한 괴테의 작품들


  관현악으로 접목된 괴테의 시는 많은 음악가의 작품에서 발견된다. J.S. 바흐의 <수난곡> 및 헨델의 <메시아>나 하이든의 <천지창조>같은 대곡과는 규모나 연주시간에 있어서 비교할 수는 없지만 관현악이나 현악합주를 곁들인 독창, 중창, 합창들은 베토벤의 <고요한 바다와 즐거운 항해 Meeresstille und glückliche Fahrt>, 슈베르트의 <물 위를 떠도는 혼령의 노래 Gesang der Geister über den Wassern>, 슈만의 <괴테의 파우스트 장면들 Szenen aus  Goehtes Faust> 그리고 F. 멘델스존 Mendelssohn의 <발푸르기스의 첫 밤 Die erste Walpurgisnacht> 등을 손꼽을 수 있다.

  시성(詩聖) 괴테와 악성(樂聖) 베토벤의 만남은 1812년 처음으로 이루어졌지만 베토벤은 이미 <6개의 노래 Sechs Gesänge>와 <괴테의 시에 붙인 3개의 노래> 등을 발표했다. 베토벤이 <에그몬트 Egmont>에 음악을 붙이고 싶고 칼스바트 Karlsbad 에서는 연주해보이기까지 했으나 당시 가까이 지냈던 쉴러의 죽음(1805년)과 안나 아말리아 공작부인의 타계(1807) 등으로 괴로워했던 괴테는 응답할 수가 없었다.4) 아폴로적인 것을 가까이 하고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멀리했던 괴테의 성품은 여기서도 발견된다. 하지만 베토벤은 괴테의 <고요한 바다와 즐거운 항해>를 혼성 4부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으로 만들었고 이에 대해 괴테에게 편지를(1823. 2. 8) 쓰고 있다.


  “이들 두 편의 시 <고요한 바다>와 <즐거운 항해>의 대조적 요소는 음악으로 표현해도 변함없는 효과를 나타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화음이 귀하의 화음에 정확히 일치했는지를 알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쁘겠습니다.”


  베토벤은 이처럼 시가 담고있는 내용을 그대로 재현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곡의 전반부에서는 바다의 깊은 정적을, 후반부에서는 순풍을 타고 바다 위를 항해하는 선원들의 마음을 잘 묘사하고 있다.

  전반부에서는 “깊은 고요가 물에 가득하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쉬고 있는 바다. 사공은 걱정스럽게 물결 하나 일지 않는 바다를 둘러본다.”하고 합창단이 노래한 다음, “무섭고 죽음같은 고요함, 끝없이 펼쳐진 곳에서 물결 하나 일지 않는다.”하는 대목이 포르테로 노래된다.

  후반부에서는 “안개가 걷히고 하늘은 맑게 갠다. 바람의 신은 굳게 맨 끈을 푼다.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사공은 움직인다. 서둘러라. 물살이 갈라지고 먼 곳이 가까워 진다. 이제 육지가 보인다”라고 발걸음을 재촉하듯 합창단이 노래한다.

  멘델스존은 괴테가 1779년 7월 30일에 쓴 발라드 <발푸르기스의 첫 밤>을 소재로 작곡했다. 첫 밤은 4월 30일부터 5월 1일에 걸친 밤으로 하르츠 Harz 산맥의 최고봉인 브로켄 Brocken 산 위에서 마녀들이 모임을 가졌다고 전해지고 있다. 괴테는 이 발라드를 측근의 작곡가인 첼터 Zelter 에게 성악곡으로 만들 것을 의뢰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오랜 옛날부터 독일의 브로켄 산으로 가는 마녀나 악마들의 기행을 어느 민속학자가 그것에 역사적인 근원을 주려고 했다. 독일의 이교도 중 노인이나 장로들은 그들의 신성한 숲에서 쫓겨나 그리스도교를 강요당하자 이른 봄에 충실한 제자들을 데리고 접근하기 힘든 험한 하르츠 산으로 숨어들었고 전래된 풍습에 따라 그곳에서 천지의 영에게 기도와 불을 바쳤다...”

  멘델스존이 조부때부터 기독교로 개종한 유태인으로 괴테의 이 작품에 마음이 끌려 하이든의 <사계>의 형식을 빌려 서곡을 포함한 10개의 부분으로 구성한 이 작품은 괴테가 죽은 이듬해인 1833년에 초연되었다. 서곡에서는 <악천후>와 <다가오는 봄>이 묘사되며 제1곡에서는 “5월은 미소짓고 숲엔 얼음과 눈이 녹는다...... 산 위에는 깨끗한 눈이 있고 우리는 서둘러 올라가서 만물을 찬양하고 성스러운 행사를 지낸다. 불길이여, 연기를 내며 타오르라...”라고 테너가 노래한다. 제2곡에서는 대중 속의 한 노파가 “기독교도들을 조심해요”라고 알토로 노래한다. 제3곡에서는 도리아의 사제(바리톤)와 교도들이 “오늘 제물 바치는 것을 꺼리는 자는 먼저 포박될 것이다. 숲은 넓다. 땔감을 나르라...”를 노래하면서 제4곡으로 넘어간다. 제5곡에서는 도리아 교도(베이스)가 “어리석은 기독교의 사제들을 책략으로 용감히 무리치자”를 노래하며 제6곡에서는 도리아 교도와 이교도의 혼성합창이 “오라, 창과 갈퀴와 불을 들고 어두운 밤에 바위틈을 지나....”라고 노래한다. 제7곡에서는 <밤의 동기>를 도리아 사제가 무겁게 노래하며, 제8곡에서는 기독교의 한 파수꾼(테너)이 다른 파수꾼들과 말한다. “살려다오, 전우여. 이건 바로 지옥이야. 보라. 마귀들이 불빛에 비치는 것을... 그들은 인간의 모습을 한 늑대와 용이다.... 자 모두 도망치자...”

  마지막 제9곡에서는 도리아 교도와 이교도가 “불길이 연기로 맑아지듯이 우리들의 신앙을 맑게 하소서”라고 합창한 다음에 도리아 사제가 “우리들의 오랜 행사를 뺏는다 해도...”라고 노래하면 모두가 “신의 빛을 누가 빼앗을 것인가”라고 기도하듯 부르면서 전곡이 끝난다.

  슈베르트는 괴테의 <미용의 노래 Mignonslied>를 네 번이나 작곡했으며 1816년부터 1821년까지 <물 위를 떠도는 혼령들의 노래>에 다섯 번에 거쳐 곡을 붙였다. 이 노래는 질풍노도시기에 괴테가 쓴 마지막 작품으로 1779년 바이마르의 칼 아우구스트 공작 Herzog Karl August von Weimar 과 함께 스위스이 베른 Bern 지역을 여행할 때 라우터브룬 Lauterbrunn 근처에 있는 슈타우바흐 Staubach 의 폭포가 300미터가 넘는 높이의 벼랑 위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괴테는 하늘과 땅 사이를 영원히 오가는 물의 모습 속에서 인간의 영혼이 변화하는 것을 본 것이다. 1821년에 슈베르트가 개작한 다섯 번째 악보는 8명의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것으로 시인의 의도를 철저하게 재현시키고 있다.

  정신착란증세를 일으켜 1854년에 라인강에 투신자살을 시도했다가 본 Bonn 근처의 정신병원에 옮겨져 2년 뒤에 세상을 하직한 슈만 Robert Schumann (1810~1856) 역시 슈베르트처럼 괴테의 시를 소재로 많은 곡을 남겼다. <미뇽진혼곡 Requiem für Mignon>, <줄레이카의 노래 Lieder der Suleika>, <서동시집 West-östlicher Divan> 과 <빌헬름 마이스터 Wilhelm Meister>에 나오는 시들 및 1844년부터 죽을 때까지 고심했던 대규모의 <파우스트> 구성 등 괴테의 많은 작품을 음악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괴테의 파우스트 중의 장면들 Szenen aus Goethes Faust>은 슈만의 모든 정력이 집중된 대작으로 1844년 러시아 여행 도중 <파우스트> 제2부의 깊고 높은 정신세계에서 영감을 받은 후 1853년 뒤셀도르프에서 서곡을 작곡할 때까지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작곡의 순서는 제3부, 제1부, 제2부, 서곡으로 가장 본질적인 것부터 시작되고 있다. 이것은 다른 작곡가들이 쓴 <파우스트>의 음악(구노나 베를리오즈 등)과의 근본적 차이점이기도 하다. 슈만의 작곡메모에 의하면  괴테의 <파우스트> 제2부의 마지막 장면을 독창, 합창, 관현악을 위해서 썼고(제3부) 그 후 슈만은 과로 때문에 심한 피로증세를 보인다. 1847년 이후 드레스덴에 머물던 그는 <사원장면 Szene im Dom>, <정원장면 Szene im Garten>, <성모상 앞의 그레트헨> 등 제1부를 작곡한 뒤에 제2부에서 <아리엘, 일출 Ariel, Sonnenaufgang>, <한 밤중 Mitternacht>, <파우스트의 죽음 Faust's Tod>을 다루고 1853년 8월에 서곡을 스케치하고 오케스트레이션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슈만에게 있어서 작품이나 연주, 성공이나 실패의 범주를 초월한 예술적 실존이 빛나는 걸작인 것이다.

  끝으로 브람스 Johannes Brahms (1833~1897)에 의해 작곡된 괴테의 <겨울의 하르츠 여행 Harzreise im Winter>에 관해 이야기 하기로 하겠다. 브람스는 1867년부터 1872년까지 5년간 합창곡을 쓰고 있으며 여러 도시의 합창단을 지휘하면서 얻은 체험이 칸타라 <리날도 Rinaldo>, <승리의 노래 Triumphlied>, <운명의 노래 Schicksalslied> 등을 낳은 원동력이 되었다. 알토 독창과 남성합창 및 오케스트라를 위한 랩소디로 작곡된 <겨울의 하르츠> 여행은 괴테탄생 2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독일의 주요도시에서 금년에 많이 공연되고 있어서(뮌헨의 가스타이크 Gasteig 에 있는 필하모니 연주장에서 7월초에 볼 수 있었다) 독일인들의 높은 문화수준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괴테는 1777년에 <베르테르>에 감탄한 청년 프레싱크를 데리고 겨울의 삭막한 하르츠산을 여행한다. 괴테의 마음 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면서 사람의 심금을 울려주는 시를 쓰게 된 것이다. 속세의 고통과 체념이 브람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1869년 여름 브람스는 클라라 슈만 Clara Schumann의 가족과 계속 교제를 하고 있던 중 셋째 딸 율리에 Julie 에게 남모를 깊은 애정을 갖게 되었으나 아무도 이것을 모르고 있어서 율리에는 어느 백작과 약혼하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브람스는 자신의 슬픔을 음악으로 달래기 위해 <겨울의 하르츠 여행>을 작곡하게 되었고 클라라 슈만을 크게 감동시킨 명곡으로 알려져 있다.

  브람스의 <운명의 여신의 노래 Gesang der Parzen>는 괴테의 희곡 <이피게니>에서 가사를 취하고 있는 마지막 합창곡으로 브람스를 후원했던 마이닝덴 Meiningen 의 게오르크 Georg 공작에게 헌정되었다.


2. 3. 민요와 예술가곡


  노래는 민요 Volkslied 의 장르이든 예술가곡 Kunstlied 의 장르이든 말과 소리의 내적인 완전한 조화를 이룩해야 한다. 노래 속에는 불가해한 신비적 요소가 살아 있어서 세상의 비밀스런 어떤 본질과 풍경이 재현되고 있다.

  원래 말의 특징은 이야기되거나 노래로 불려지는 시문학의 모체로 특히 고대와 중세에서 시는 노래였다. 노래는 짧막한 노래전달이고 사랑의 호소이며 감정의 빠른 분출이다. 중세이래 노래는 민요와 예술가곡의 두 가지 형태로 지속되어 왔다.

  민요의 특색은 원초적이고 투박한 면을 갖고 있는 이야기 방식이며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정서가 노래된다. 그들의 가장 대표적인 주제들인 사랑과 이별,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고독 및 죽음 등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내용들이 민요의 그릇 속에 담겨 있다. 즉 민요는 특정한 화자의 것이 아니라 누구나가 그 속에서 자기의 기분을 맞출 수 있는 감정표현의 양식인 것이다.

  따라서 많은 시인들은 민요의 마르지 않는 샘물에서 자신의 영감을 얻었으며 특히 독일문학에서 근대시의 새로운 경지에 들어선 괴테의 <제젠하임의 노래 Sesenheimer Lieder>는 아나크레논파의 진부한 사교시에 젖어있던 국민들에게 민요의 자연스러운 생기를 불어넣어 절실하고 진정한 사랑이 담긴 체험시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민요의 이같은 특성에 대한 관심은 낭만파시인 아힘 폰 아르님 Achim von Arnim 과 브렌타노 Clemens Brentano 에 의해 공동 수집되고 편찬된 <소년의 이상한 뿔피리 Des Knaben Wunderhorn> 속에 많은 시들이 수록되었다.

  민요에서 이같이 영감을 믿는 것은 문학에만 국한되지 않고 음악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모차르트 이후 브람스에 이르기까지 많은 음악가들이 민요를 작곡하거나 편곡함으로서 그들의 음악적 영감을 더욱 풍요롭게 하면서 드디어 예술가곡 Kunstlied 의 양식을 노래에 도입하게 된다. 모차르트가 작곡한 <제비꽃 Das Veilchen> K. 476이 예술가곡의 효시가 된다. 베토벤은 괴테의 시보다는 쉴러의 시에 더욱 많은 곡을 붙였지만 <6개의 노래> 중 제1곡부터 제3곡까지는 괴테의 시에 붙인 가곡들이다.

 

  제1곡: 미뇽. 레몬꽃이 피는 나라를 아십니까?

        Mignon. Kennst du das Land, wo die Zitronen blühen?

  제2곡: 새로운 사랑과 새로운 인생

        Neue Liebe, neues Leben

  제3곡: 괴테의 <파우스트 Faust> 중의 <벼룩의 노래>

그밖에도 베토벤은 <괴테의 시에 붙인 3개의 노래> op. 83을 남기고 있는데 제1곡은 <슬픔의 기쁨 Wonne der Wehmut>, 제2곡은  <그리움 Sehnsucht>, 제3곡은 <물들인 리봉 Mit einem gemalten Band>로 구성되어 있다.


 

2. 4. 괴테와 슈베르트


  연가곡집 <겨울나그네 Winterreise>와  <아름다운 물방앗간집의 딸 Die schöne Müllerin>으로 더욱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프란츠 슈베르트는 500여곡의 가곡을 남겼는데 그 중에는 괴테의 시에 붙인 것이 60여곡으로 가장 많으며 쉴러의 시에도 50여곡을 붙이고 있다. 그밖에 빌헬름 뮐러 Wilhelm Müller 와 슈바르트 Schubart, 헤르더 Herder와 쇼버 Schober 등의 시들이 그에 의해 주옥같은 가곡으로 태어났으며 가곡의 장르에서는 어떤 음악가도 슈베르트를 능가할 수 없다.

  독일 문학에서 괴테와 쉴러가 이룩한 최고봉의 고전주의 전통을 계승하여 자연과 자유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청년독일파 das junge Deutschland 와 낭만주의는 국민의식을 다시 소생시켜 민요를 통해 민족의 전통을 부각시키고 있다.

  18세기 후반에 활약했던 고전파 음악의 대가들인 하이든, 모차르트 및 베토벤의 영향을 받은 슈베르트는 시를 가곡으로 변형시키고 목소리의 음색을 멜로디로 바꾸어 시가 음악 속에서 영혼의 숨을 쉬게 했던 것이다. 우리에게 낭만주의 태동을 알린 “가곡 Lied”이라는 이름 속에 마음 속의 감탄과 표현할 수 없는 그리움을 일깨우고 정열이 불타오르게 한다.

  슈베르트는 교향곡, 관현악곡, 실내악곡 및 가곡들을 남기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곡들은 그의 가장 본질적인 작품들이다. 그의 음악의 진수를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리고 그의 드높은 의도를 알려고 한다면 우선 그의 가곡들에게 가까이 가야 한다. 이같은 가곡에 알맞는 서정시는 그의 음악작품으로 탄생했고 괴테의 수많은 아름다운 시들도 슈베르트에 의해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1816년까지 19세의 슈베르트는 이미 24편의 괴테시를 작곡했고, 그 중에서 <마왕>, <실잣는 그레트헨>, <눈물의 위안> 그리고 <향수 Heimweh> 및 <고요한 바다 Meeresstille>가 동봉된 슈파운 Spaun 의 서신이 괴테에게 전해졌는지 아니면 그의 비서 첼터 Zelter에 의해 분류되는 과정에서 휴지통에 버려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1825년 6월에 괴테는 멘델스존의 4중주와 함께 그의 시에 붙인 슈베르트의 뛰어난 3편의 가곡들 <매형 크로노스에게 An Schwager Kronos>, <미뇽에게 An Mignon> 및 <가니메트 Ganymed>를 받았다. 그는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멘델스존에게 고마움을 표시했지만 슈베르트에게는 고맙다는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1830년 여가수 빌헬미네 Wilhelmine 가 <마왕>을 노래했을 때 괴테는 감탄을 금하지 못했고 비로소 자기의 잘못을 후회했다. 괴테는 민요를 소박하고 단순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슈베르트는 괴테의 고전적 작품에서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낭만주의적 혼돈을 묘파했던 것이다.

  슈베르트는 작곡에 필요한 시들을 선택할 때 걸작이든 또는 졸작이든 이미 다루어진 것을 피하고 있다. <들장미 Heidenröslein>, <마왕 Erlkönig>, <달에게 An den Mond>, <미뇽 Mignon>, <툴레의 왕 Der König in Thule>, <어부 Der Fischer> 등에 쓰인 시는 모두 괴테의 것으로, 슈베르트에 의해 음악으로 묘사된 중요한 작품들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실을 잣는 그레트헨 Gretchen am Spinnrade> (D 118)

  <양치기의 탄식 Schäfers Klagelied> (D 121-b)

  <끊임없는 사랑 Rastlose Liebe> (D 138)

  <연인곁에 Nähe des Geliebten> (D162)

  <고요한 바다와 즐거운 항해 Meeresstille und glückliche Fahrt> (D 216)

  <미뇽의 노래 Mignons Gesang> (D 331)

  <마왕 Erlkönig> (D 328)

  <사냥꾼의 저녁노래 Jägers Abendlied> (D368)

  <하아프 주자의 노래 Harfenspieler Ⅰ~Ⅲ> (D478~480)

  <호수 위에서 Auf dem See> (D 543)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D 674)

  <줄레이카 Ⅱ Suleika Ⅱ> (D 717)

  <뮤즈의 아들 Musensohn> (D 764)

  <나그네의 밤노래 Wanderers Nachtlied> (D 768)

  <미뇽의 노래 Lied der Mignon> (D 877)

 

 

2. 5. 괴테와 다른 음악가들


  19세기에 나타난 많은 작곡가들이 슈베르트와 경쟁하고 그를 능가하지는 못했지만 슈만, 브람스, 볼프같은 음악가들은 명료한 윤곽과 표현 및 천재적 영감으로 무수한 걸작을 남기고 있다.

  먼저 슈만은 괴테의 시를 슈베르트만큼 선호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미뇽진혼곡 Requiem für Nignon>은 독창, 합창 및 관현악을 위한 훌륭한 작품이다. 그는 또한 18편의 괴테의 시에 곡을 붙이고 있다. 즉 <서동시집>에서 3편과 <자유사상 Freisinn>, <부적들 Talismane> 그리고 <줄레이카의 노래 Lieder der Suleika>등이다.  슈만의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 Liebeslied>(op. 51)는 피아노 반주에 의해 경쾌한 분위기가 전달된다. 또한 그가 몹시 좋아했던 <빌헬름 마이스터>를 소재로 <하프주자의 발라드 Ballade des Harfners> 작곡에 전심전력을 기울였다. 여기서도 피아노는 노래의 내용을 은밀하게 전달하고 있어 뛰어난 조화를 이룬다. <눈물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 Wer nie sein Brot mit Tränen ass>에서의 피아노 반주는 이 노래를 더욱 회화적이고 거의 인상주의적 특징까지도 자아내게 한다.

  다음에 <독일뢰퀴엠>, <겨울의 하르츠여행>, <운명의 노래>, <운명의 여신의 노래> 등의 걸작을 만들어낸 브람스는 루트비히 티크 Ludwig Tieck(1773~1853)의 <마겔로네 Magelone>를 소재로 유일한 연가곡집 <티크의 ‘마겔로네’에 의한 로만스 Romanzen aus Tiecks Magelone>(op. 33)을 7년에 걸쳐 완성하지만 그가 가장 사랑했던 것은 피아노반주의 49편의 독일 민요였다. 그는 함부르크 여성합창단이 부른 민요의 매력에 대해 클라라 슈만에게 편지하였다.

  “그들은 내 앞에서 새로운 나의 독일민요를 많은 연습 끝에 노래했습니다. 아름다운 민요들은 나를 매우 즐겁게 해주리라고 생각됩니다. 민요들을 진지하게 들으면서 생각한 것은 그것들을 제대로 알아야 하겠다는 점입니다.”

  브람스는 일생동안 330편의 성악곡을 작곡했는데 그 중 194곡은 피아노 반주가 달린 가곡들이고 45개의 합창곡들과 33개의 사랑의 노래들이 있다. 그의 성악곡들은 슈만이 죽은 뒤에 클라라와 그녀의 자녀들을 마음 속으로 위안하면서 씌어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브람스가 클라라에게 갖고 있었던 감정은 괴테가 샤를롯테 케스트너 Charlotte Kestner 에게 갖고있었던 것과 같은 것이다. 클라라 슈만은 바로 브람스의 롯테였던 것이다. 파랑색 연미복과 노란 조끼를 입은 <베르테르>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있었던 그의 가곡은 <명심 Beherzigung>과 시를 소재로한 <무섭게 나타나는 사랑 Grausam erweiset sich Amor> 등이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끝으로 구스타프 말러와 함께  1860년에 태어난 후고 볼프 Hugo Wolf(1860~1903)는 슈베르트 및 슈만과 함께 독일 가곡의 대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876년부터 하이네와 레나우 Lenau 의 시에 곡을 붙이기 시작하면서 가곡의 길에 들어선다. 그는 2~3개의 기악곡을 제외하고 순수한 가곡작곡가였으며 1888년부터 2년 동안 무려 200여편의 가곡을 발표했다. 그의  3대 가곡집은 53개의 노래로 구성된 <뫼리케의 가곡집 Mörike Liederbuch>, <아이헨도르프 가곡집 Eichendorff Liederbuch>(18곡) 및 <괴테 가곡집 Goethe Liederbuch>이라고 할 수 있다.

  모두 51편의 가곡들이 수록된 <괴테가곡집>은 1888년부터 이듬해까지 작곡되었으며 <서동시집>에서 발췌한 17곡과 <줄레이카>에서 뽑은 10곡 및 <빌헬름 마이스터>에서의 10곡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 중에서 중요한 가곡들은 다음과 같다.

 

  제1곡 <하프주자의 노래Ⅰ  Harfenspieler Ⅰ>

  제9곡 <미뇽, 그대는 아는가 남쪽나라를  Mignon, Kennst du das Land>

  제11곡 <쥐잡이  Der Rattenfänger>

  제19곡 <주의 공현대축일  Ephiphanias>

  제24곡 <꽃의 인사  Blumengruss>

  제29곡 <아나크레온의 무덤  Anakreons Grab>

  제31곡 <왕의 기도  Königliches Gebet>

  제49곡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제50곡 <가니메트  Ganymed>


  괴테의 시들은 이처럼 슈베르트, 슈만, 볼프로 이어지는 독일 낭만파의 가곡 속에 영원히 살아있는 것이다.


 

3. 결론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탄생 250주년을 맞이하여 그의 아름다운 시들이 때로는 교향곡이나 관현악곡 속에서 때로는 성악곡이나 가곡속에서 지금도 숨쉬고 있는 모습을 살펴보았다. 리스트와 말러의 교향곡들, 베토벤의 <고요한 바다와 즐거운 항해> 및 슈베르트의 <미뇽의 노래>와 <물 위를 떠도는 혼령들의 노래> 그리고 슈만의 <괴테의 파우스트 중의 장면들> 및 브람스의 랍소디 <겨울의 하르츠 여행> 등은 관현악 작품 중에서도 걸작으로 꼽힌다.

  뿐만 아니라 성악곡이나 가곡같은 다른 장르의 음악에 소재로 쓰인 괴테의 주옥같은 시들은 헤아릴 수가 없다. 베토벤은 <미뇽>,<그리움 Sehnsucht>,<슬픔의 기쁨>에 곡을 붙이고 있다. 그 후 하이든, 모차르트 및 베토벤의 영향을 받은 슈베르트가 괴테의 시에 붙인 가곡들은 60편이나 된다. 가곡은 바로 슈베르트의 가장 본질적인 작품들이며 괴테의 아름다운 시들도 슈베르트에 의해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는 낭만주의의 진수를 음악에 도입하고 가곡을 통해 삶의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그는 모든 음악가 중 가장 문학적인 음악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음악가 자신은 음악을 평생 모국어로 쓰고 있는 시인이기도 하다. 그는 문학작품을 소재로 훌륭한 가곡을 썼으며 특히 18세에는 이미 괴테의 24편의 시를 작곡하였고 <마왕>을 괴테에게 헌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괴테는 슈베르트가 죽을 때까지 그를 불행히도 알아보지 못했다. 슈베르트 이후 슈만 볼프로 이어지는 낭만주의 가곡들 속에서도 괴테의 시들은 발견되지만 슈베르트의 작품에는 미치지 못한다. “가곡과 괴테의 시”라고 말하면 바로 독일인들은 슈베르트를 상기할 만큼 특히 슈베르트의 가곡들은 다른 음악가의 작품들과 함께 후세에 남겨진 값지고 훌륭한 문화유산인 것이다.


 

 Bibliograph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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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ucourechlier, Andre: Schumann, Rowohlt Vg. Reinbek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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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ünchen-Leipzig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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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ser, Hans Joachim: Das deutsche Lied seit Mozart, Berlin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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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iger, Emil: Goethe in 3 Bdn. Zürich 1952?1959

Trunz, Erich(Hg.): Goethes sämtliche Werke. Hamburger Ausgabe, München 1982

Der Spiegel (16. 08. 1999)

Der Spiegel (23. 08. 1999)

 

 

Zusammenfassung

 

 

  Eine Studie über die vertonten Goethes Gedichte

 

 

von Prof. Young-Cheol JIN

 

 

  Die vorliegende Arbeit versteht sich als eine Studie über die Goetheschen Gedichte, die von den berühmten Komponisten vertont worden sind.

Johann Wolfgang von Goethe, dessen 250 Geburtstag  am 28. August gefeiert wird, galt als Statthalter des poetischen  Geistes auf  Erde. Aber seine Werke werden leider immer weniger gelesen. Und was bedeuten die Widersprüche zwischen Leben und Werk des Olympiers? Ist er in der Tat ein doppelgesichter Mephisto? In der Weltgeschichte sind so viele Einzelheiten über kaum einen Menschen wie über ihn berichtet, und zwar sind 79 prozent der Deutschen stolz auf ihn.

  Die Goethe-Weltgemeinde meint, Goethe solle als menschlich, als human beobachtet werden. Seine wichtigen Werke(z.B. "Mignon", "Wanderers Nachtlied", "An den Mond", "Erlkönig", "Ganymed", "Prometheus", "Wilhelm Meister" und "Faust") sind bald in der Form des Orchestralwerks, bald in der Form der Lieder vertont.

In der Genre des Orchestralwerks befinden sich die 8. Sinfonie(Tausend) von Gustav Mahler und die Faust-Sinfonie von Franz Liszt.

  Das Lied weist eine so vollständige und auch innige Verschmelzung von Wort und Klang auf. Im Lied lebt das unfassbare, göttliche Mysterium weiter. Erst Schubert erweckte das Lied zum Leben. Er ist der poetischste aller Musiker. In gewissen Sinne war Schubert auch ein Dichter, dessen Muttersprache Musik war. Die Lieder sind das Wesentlichste innerhalb des gesamten Schubertschen Werkes. Er versuchte mehrmals die anspruchvollen Gedichte von Goethe zu vertonen. Leidenschaftlich bewundert Schubert die Goetheschen Werke. Daher vertonte er schon mit 18 Jahren 24 Gedichte Goethes, darunter findet man "Der Erlkönig", "Gretchen am Spinnrade", "Trost der Tränen", "Heimweh" und "Meeresstille".

  So mancher Liedkomponist hat im 19. Jahrhundert im Wettstreit mit Schubert gelegen, doch selbst Robert Schumann und Johannes Brahms, die einem Genie am nächsten waren, haben ihn nicht übertroffen. Zum Schluss ist Schubert der allbegabteste Komponist der Goetheschen Lieder, die auf ewig mit dem Orchestralwerk aus Goethes Texten in der Welt beliebt s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