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echt 작품에 나타난 우화에 관한 연구

1)

이  상  욱*

 

 

 

 

Ⅰ. 서     론

 

  Brecht는 그의 이념에 근거한 드라마를 창작하면서 많은 경우에 우화형식(Parabelform)을 빌렸다. 그는 그의 드라마의 구조형식에서 드라마의 등장인물을 개인으로서의 역할 보다는 기능상 역할을 갖는 인물로 만들었으며 무대사건도 자율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무대사건을 통해 현실을 의식되어진 현실로 변화되게 하려했다. 이는 무대사건과 등장인물들을 비유적으로 만들어 드라마에서 이념을 실현시키기 위한 그의 연극론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대사건은 그의 현실적 존재를 구성하는 것과 긴장의 관계를 가지면서 의미를 갖게한다. 이때 무대 인물은 현실과 비현실의 이중적인 특성을 갖게 되는바, 이들의 비현실성은 현실적 사건의 모사로서 그 사건을 넘어 개념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현실을 시사해 주는 무대사건을 구성하는 우화적 기능을 갖고 있다. 그로 인해 그의 연극에서 미학적인 자율성도 현실의 변화를 위한 의식고취로 제한되기도 한다. 그것은 무대의 사건이 현실과 결합되기 위한 유추로서 묘사되기 때문이다. 요컨데 "우화란 하나의 예술형식으로서 그의 법칙은 유추로 되어있다"1)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화란 "2개의 사건 사이에서 팽팽히 실행되어진 유추"2)로서 미학 외적 현실을 위한 것이므로 그 현실을 표시하는 현상에 상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화는 주어진 지식을 장면으로 형상화하여 관객의 사고행위 속에서 재획득되어지게 한다. 이런 과정에서 나타난 추상성은 사회 현실을 현재적 형상 속에서 구체화하는 법칙이다. 이 법칙은 현실을 보편화하는 역사화를 통해 현실의 모델을 전체주의적 성격에서 묘사되어지며, 이와 같은 성격을 지닌 우화는 본질상 서사적인 장르로서 마치 드라마에서 이야기자와 같은 성격을 갖는다.

  또한 우화는 하나의 규정된 목적을 위한 이야기로서 구성된 바, Brecht 문학이 질문으로 제시하고 이에 대한 대답과 문제 해결을 위한 이야기로 구성되고 있다. 이런 우화는 자연적으로 유추를 통해 답을 제시하기 때문에 그 특성상 소외기법에 상응하게 된다. 질문에 대한 대답이나 문제해결은 이야기 속에서 암시로 나타나기 때문에 사고작용을 유발하는 특성이 소외기법과 상응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Lessing의 반지우화에서 종교의 우월에 관한 Sultan의 질문에 대한 Nathan의 대답이나 신약성경에서 나타난 질문에 대한 대부분의 대답이 이런 사고작용을 통해 얻어지고 있는 것과 같다. 이런 사고작용을 유발하는 질문과 대답은 내적 일관성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우화는 이 경우에 있어서 하나의 교육적인 도구로서 연계된 규범을 필요로 한다.

  또한 우화는 명료화된 세계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우화 이전에 형성된 지식은 이해의 기초로서 사고의 일반적인 기초를 형성한다. 이 경우 우화는 세계관에 결합되어 있어 세계상과 관련하여 하나의 의미부여(Sinngebung)의 기능을 갖는 바, 비유적인 상을 형성하는데 이 비유적인 상도 현실을 의미하는 폐쇄적인 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화는 현실을 위한 하나의 교육적인 도구로서 성경이나 설교문학에서 계도를 위한 중요한 장르가 된 것이다.

  Brecht가 우화에서 이런 폐쇄적인 상을 만들고 있는 것은 막스주의적인 교훈에서부터 상을 얻으려고 한 것이다. 막스주의적인 교훈은 세계현상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Brecht에게 체계적인 선험(先驗)을 제공해 주고 있기 때문에 그가 세계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관객들의 사고행위를 강요하고 있는 것은 현실 속에서 의식을 근저에 둔 설교적인 의미의 계도를 위한 기구로서 우화를 사용하고 있다. Brecht는 「연극소론」(Kleines Organon für das Theater)에서 우화의 기구적 특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Ohne Ansichten and Absichten kann man keine Abbildungen machen. / Ohne Wissen kann man nichts zeigen; wie soll man da wissen, was wissenswert ist ? "3)

 

  요컨데 Brecht는 막스주의적 세계상을 그의 문학에서 실현하기 위해 대부분의 작품에서 Hultberg가 지적한 바와 같이 비유를 위한 우화를 도입하고 있다.4)

 

 

Ⅱ. 본     론

 

1. 우화와 극작품

 

  Brecht는 그의 극작품 「사천의 선인」(Der gute Mensch von Sezuan)에서 "우화작품" (Parabelstück)이라는 이름을 부쳤으며 「코카사스의 백목원」(Der Kaukasische Kreidekreis)을 위시해서 그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우화작품으로 이해되기를 바랬다. 이는 단적으로 Brecht가 그의 작품에서 우화가 얼마나 적합한 형태인가를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Die Parabel ... stellt für den Dramatiker das Ei des Kolumbus dar, weil sie in der Abstraktion konkret ist, indem sie das Wesentliche augenfällig macht."5)

Brecht가 우화를 편애한 것은 우화가 그의 극문학에서 알려진 현실을 추상화하여 이를 장면으로 형상화하므로써 그의 미학적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사상이나 추상성은 예술형식으로서 우화보다는 우선하는 바, 그는 하나의 세계상의 테두리에서 암시되어지는 미학 외적 현실에 중심을 두면서도 문학적 가치를 창출하려 했다.

  문학이 취급하는 미학 외적 현실이 우화에서 유추로 형상되면서 교훈적인 의도를 지니게 된다. 그런데 우화의 교훈적인 의도는 현실 인식에서 세계를 변화하는 힘을 부과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 위해 Brecht는 그의 문학에서 미학외적 현실을 우화로 옷입히고 있다. 이를 그의 「놋쇠구입」 (Der Messingkauf)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Der Philosoph wünscht das Theater rücksichtslos für seine Zwecke zu verwenden. Es soll getreue Abbilder der Vorgänge unter den Menschen liefern und eine Stellungnahme des Zuschauers ermöglichen."6)

 

  여기서 나타난 그의 극문학은 극장을 "학문적 시대의 극장"으로서 "철학자의 극장"으로 만들기 위해 우화를 등장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극장이 철학의 고유한 매체는 아니지만 Brecht 에게는 극장을 사상과 연관하여 사상을 교육시키기 위한 기구가 되고 있음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것은 Brecht가 극장을 그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만들어 이용하려 하기 때문이다.

  극장이 이와 같은 목적성을 갖게 될 때 우화는 극장에서 유용한 문학형식이 된다. 이렇게 될 때 예술은 의도된 지식을 오락적인 방법을 통해 현실에 대한 의식을 고취시키려는 목적성을 갖는 하나의 매체로 전락될 수 있다.

 

2. 극장의 법칙과 우화형식

 

  Brecht는 극장에서 현실의 묘사도 자연과학과 마찬가지로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법칙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Brecht는 이런 주장에서 그 근거에 막스주의적 사회교육의 이념을 깔고 있는 소위 "학문적 시대의 극장"7)으로서 실용적인 측면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Haben die neuen Wissenschaften so eine ungeheure Veränderung und vor allem Veränderbarkeit unserer Umwelt ermöglicht, kann man doch nicht sagen, daß ihr Geist uns alle bestimmend erfülle."8)

 

  자연이 인간의 안녕을 위한 실용적인 가치를 성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극장에서의 사회교육의 법칙은 실용적인 가치, 즉, 기존의 사회적 관계를 변화 또는 개선 시키는 것으로 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Das Theater soll durch seine] Darstellungen des gesellschaftlichen Zusammenlebens der Menschen den Zuschauern den Schlüssel für die Bewältigung ihrer gesellschaftliche Probleme aushändigen" 9)

  Brecht는 극장을 현실을 주어진 주변세계에서부터 실존 가능한 세계로 변화시키는 "철학자의 극장"으로서 역할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극장의 대상은 현실적이고 이 현실은 변화된 형태로 제공되어야 하며 동시에 극장은 실존의 법칙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극장은 현실을 투명하게 만드는 기구로서 그의 법칙이 가시적인 것으로 되는 한에 있어서 사실상의 현실이 된다는 것이다.

 

  "Es müssen die Gesetze sichtbar werden, welche den Ablauf der Presse des Lebens  beherrschen. Diese Gesetze sind nicht auf Photografieren sichtbar."10)

 

  극장에서 이와 같은 법칙의 조건하에서 우화형식이 설정되어야 한다,. 극장을 현실뿐만 아니라 이 법칙도 동시에 묘사하여야 하는바, 우화형식은 현실과 이 법칙을 동시에 명료하게 만들어주는 가장 적합한 형식이다. 우화에서 나타나는 법칙은 그것이 사회로 부터 발생하는 동시에 또한 그 사회에 다시 영향력을 가하게 되는데 이 법칙이 바로 그 사회를 변화하도록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현실을 규정하는 법칙에 관여하는 미학적 매체가 우화형식이라는 것이다.

 

3. 현실의 역사화와 우화

 

  전술한 바, "학문적 모델"로서의 극장은 또한 현실의 역사화로 나타난다. 자연과학이 자연법칙에 따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극장도 사회의 법칙에 따라야 한다. 그러므로 Brecht는 극장에서의 사건이 사회의 구조법칙에 따르고 있음을 모델의 형태로 보여 주고 있다. 극장에서 묘사하는 현실의 모상은 현실의 법칙에 따라 배열되어 있음을 가시적으로 만들어 현실을 본질로서가 아닌 과정으로서 묘사하여 현실을 추상화하고 소외화한다.

  따라서 Brecht의 극장에서는 현실이 극장 위에서 추상화되고 소외화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사용되는 미학적 방법은 우화를 통한 소외화로 나타난다. 여기서 우화는 역사화의 성격을 띄게 된다.

  역사화는 현실의 구조를 규정하는 하나의 법칙학(Gesetzwissenschaft)으로 드라마에서 우화의 존재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즉, "우화는 현실적인 것의 역사적인 법칙을 제시하고 방향을 암시하는 현실의 소외인 것이다."11) 이렇게 될 때 우화형식과 역사화는 상호적으로 조건 지우고 있다. 요컨데 우화는 일반적인 형식규정이며 역사화는 우화를 위한 규정이라는 것이다.

  역사화는 구체적인 현실을 규정하는 역사적인 법칙의 구현작업으로서 드라마에서 이것이 추상화로 나타나면서 역사적인 것과 현실을 결합하고 있다. 이들은 역사의 현실화로서 또 현실의 역사화로서 나타날 수 있는 두가지 측면이 있다.

  요컨데 현실의 역사화는 이를 통해 현실의 일반적인 모델을 발생시키며 역사화는 역사의 소외화요 우화의 현실화로 규정할 수 있다.

 

"Historisierung heißt : Verfremdung der Geschichte oder der Aktualität zur Parabel"12)

  그것은 드라마의 역사화와 역사적인 현실에 개연성을 가미해서 구성하는 문학적인 방법을 취하기 때문이다.

 

4. 우화와 전체성.

 

  앞에서 언급한 역사화의 또다른 원칙의 하나는 우화가 하나의 구체적인 개체 속에서 전체를 묘사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사건은 전체를 설명하기 위한 모델로서의 예시이기에 개적 사건이 전체에 관계하여 전체로서 이해되고 비판되어질 때 그 개적 사건은 이해되고 비판되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델로 제시되는 Brecht 극장의 의도와 일치한다. 왜냐하면 Brecht의 극장은 전체주의의 묘사위에서 이해되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Brecht의 극장에서 전체주의는 적어도 상대적으로 주어짐으로써 하나의 질문제시를 위해 전체적인 지평선이 나타나야 한다. 여기서 제시되는 모델도 그 방향설정이 전체주의의 필요성에 연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방향에 따라서 개체는 포기되어지고 전체성에게로 관계를 맺어 가는 바, 개체의 직접적인 현실성이 구조 속으로 옮겨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사용된 우화는 현실적인 형식 가운데서 그 장점이 나타난다.

  「아르트로우이의 지속적인 상승」 (Der aufhaltsame Aufstieg des Artro Ui)이나 「제3제국의 공포와 비참」(Furcht und Elend des Dritten Reichs)등은 파쇼주의 통치의 의미를 부각시키는데 있어서 사회적인 현실을 포괄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서푼짜리 오페라」(Die Dreigroschenoper)와  「사천의 선인」(Der gute Mensch von Sezuan)등은 개적인 문제에서 전체주의적 입장을 통해 사회질서의 전체적 질서를 부각시키고 있다.

  Brecht의 작품을 이 전체성의 특징에 따라 분류해 보면 첫 번째 작품군은 일반적인 질문을 통해 특수한 문제 속에서 전체성을 보여 주는 작품들이다. 이들은 「서품짜리 오페라」와 「마하고니시의 흥망성쇄」 (Aufstieg und Fall der Stadt Mahagonny)등이다. 이들 작품들에서는 특수성 가운데서 보편성이 직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Brecht의 작품 가운데서 또한 그룹은 국가 사회주의의 본질이 우화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작품들이다. 이들은 「둥근머리와 뾰족머리」 (Die Rundköpfe und die Spitzköpfe)와 「아르투로우이의 지속적인 성장」등이다. 이들 작품들은 첫 번째 그룹이 일반적인 사회구조만을 취급하고 있는 반면에 역사적 사실의 현상에 관계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Brecht의 작품 가운데서 마지막으로 특징지울 수 있는 작품은 현실과는 약간 소외된 상태를 묘사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이작품들은 「카라르 부인의 총기」 (Die Gewehre der Frau Carrar)와 「제3제국의 공포와 비참」등이다.

  이상에서 분류한 작품들은 일종의 유형론에 따라서 분류한 것이다. 여기서 특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우화의 형식과 상은 이 작품의 대상이 포괄적이고 일반적이면 일반적일수록 더욱더 순수하게 실현되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Brecht가 이들 작품에서 전체성이 구현되도록 배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한 개체의 양상이 하나의 상으로 옷입게 될 때 전체적인 것이 시선 밖으로 사라질 위험이 있는 반면에 전체성은 직접적으로 하나의 상으로 변화되게 한다. 그러므로 전체성은 직접적·간접적으로 규정하는 우화의 원칙이며 형상의 순수성 정도를 규정하는 것이다.

 

5. 우화와 서사극

 

  Brecht 작품에 나타난 우화는 전체성의 설명이요 현실에 대한 명시적인 유추이다. 작품에서 우화가 전달하는 지식은 우화의 근저에 놓여 있어서 우화는 하나의 인식하는 주체를 전제로 하는 바, 종래적인 의미에서 이야기자를 전제로 하고 있다.

  이와같은 개념에 비추어 볼 때 우화는 본질상 서사적인 장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드라마에서 이야기자의 역할과 마찬가지로 우화의 역할도 현실과 상 사이를 전달할 뿐만 아니라 상을 다시 현실로 옮겨 주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우화는 상의 비유성을 의식적으로 우화속에 함유하려고 한다.

  또한 우화는 극에서 하나의 통일자로서 나타나 작품의 부분을 전체에 연결한다. Prolog에서 나타난 상이 드라마의 전개를 위한 기본적인 상이 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코카사스의 백목원」이다. 전체성을 구현한 우화의 상이 Prolog에서 형성되어 드라마 전체를 이끌어 가는 예를 이 작품에서 살펴 보자.

  Brecht는 이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Der kaukasische Kreidekreis ist keine Parabel. Das Vorspiel könnte darüber einen Irrtum erzeugen, da äußerlich tatsächlich die ganze Fabel zur Klärung des Streitfalles wegen des Besitzes des Tals erzählt wird. Genauer besehen aber enthüllt sich die Fabel als eine wirkliche Erzählung, (...)"13)

 

  이 작품은 "우화작"이라는 제목은 달지 않았지만 이 자품의 Vorpiel에서 제시된 문제가 미학적인 질문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서 그 해답이 토론의 과정을 거친 우화적인 해설로서 제시되고 있다. Epilog에서 나타난 Vorspiel의 해답은 다음과 같다.

 

 Epilog : "Daß da gehören soll, was da ist, denen, die für es gut sind, / Also. / Die Kinder den Mütterlichen, (...) / Und das Tal den Bewässern, damit es Frucht bringt."14)

 

  Brecht는 이 작품을 역사적인 맥락에서 해석하고 있는 바, 줄거리에서 묘사된 현대적 사건이 역사적인 과거와 직면하고 있다. 즉, 이 작품은 중국의 오래된 전설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 전설은 중국에 토착화된 Kazbeki 영주와 결합되어 코카사스에 자리하게 된 것이다.

  이 연극은 오랜동안 마스크를 쓰고 행해졌으며 오래된 고사본이 사용되었다. 그 후 이 연극은 오랜동안의 공연을 거쳐 오면서 역사적인 사건을 구체화 시키는 연극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이 연극은 2중적인 시간의 차원을 갖는 바, 한편으로는 과거의 역사와 관계를 맺으면서 또 한편으로는 직접적으로 현재와 관계를 맺게 한다. 즉 이 연극은 과거 역사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우화와 현재적인 관계를 맺는 관객사이의 관계가 동시에 성취된 것이다. 물론 여기서 이야기 되어진 사건은 역사적으로 실재의 사건이라기 보다는 그 사건의 가능성 조건, 즉 사회적인 환경이 역사적이란 뜻이다. 주지한 바, 이런 역사적인 개연성의 근거에 이야기 되어진 사건은 우화로서 묘사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Brecht가 연극에서 이와같은 서로 다른 두 시대를 형성하고 객관화 할 수 있는 것은 하나의 지혜라고 했다. 이 지혜는 바로 이 사건에서 자리매김을 하고 비이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이런 지혜로서 Azdak의 결점을 시사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Azdak의 시대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옛날, 유혈의 시대에"(In alter Zeit, in blutiger Zeit)15) 라는 표현은 동화에서 나타나는 표현으로서 과거에 대한 종래의 신화적인 해명에 대한  방향전환이다. 이러한 방향전환은 과거 역사에 대한 막스주의적 역사모델을 도입한 것으로 나타난다. 언급된 바와 같이 부정적인 과거 역사가 Azdak의 법관시절을 하나의 "황금시대"라고 표현함으로써 과거의 불행했던 시대에서 벗어나 황금시대의 유토피아 시대로 도래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상위계층의 권력싸움에서 비롯된 무정부주의에서 얻어진 결과로 판단하고 있다.

  Azdak은 "혼돈의 노래"(Lied vom Chaos)에서 "혼돈" 즉, 무질서와 혼돈에 대해서 긍정적인 가치를 부여한 것은 유토피아 시대의 의미를 설명한 것이다. 혼돈이란 통치관계의 혁명적인 전환으로서 유토피아시대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백성으로 대변된 Grusche에게는 시대의 변화가 희망으로 다가 왔으나 양탄자 공장 직공들은 기갑병에 의해 그들의 반란이 진압당하여 무산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위치 상승은 성취되지 못했다. 그러므로 Azdak은 몰락한 대영주를 체포한 후 그를 도망하게 한 데 대해 두가지 상반된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이는 Azdak이 아직까지도 완전한 유토피아의 시대가 도래하지 못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마치 현자가 바보처럼 행하여 "악동의 옷을 입은 혁명가"처럼 시대에 편승하려 했던 것이다.

  Azdak의 재판은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에서 해석해야 한다. Azdak의 자의적인 재판은 전래의 사회질서가 가진자들을 위한 법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법을 폐지하지는 않았지만 법을 전복함으로써 판결의 깊은 논리성을 숨기고 있었다. 그 결과 Azdak의 지혜는 긍정적이긴 하지만 모범적이지는 못했으며 그의 Utopie의 현실은 부정적인 현실에 대한 반박으로 나타난다.

  이 작품의 Vorspiel에서 계곡의 소유자를 결정하는 문제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우화에서 Grusche에게 아이를 맡기게 되는 판결의 결과가 서로 상응하게 된 데에는 Utopie구현에서 암시된 규칙이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있다.

  또 이 과정에서 Vorspiel과 본 연극의 줄거리에서 하나의 개적인 사건이 전체적인 해결을 암시하는 추상성을 만들고 있다. 현재는 역사적 발전의 종결점으로서 역사적 경향의 실천으로 나타나는 바, Vorspiel에서 문제가 제기되고 우화에서 그 해답을 구하는 극의 구조는 서로 양극성 속에서 우화의 역사화인 동시에 현실화로 나타난다.

  이 작품의 대상은 Utopie와 역사의 관계로서 Vorspiel과 Kreidekreis 사건은 구체적 사건의 역사화를 통해 모순된 사회정의의 전도가 역사적인 합법성의 증거로 나타나게 됨을 극에 있어서 사사적인 방법으로 구현하고 있다.

 

6. 우화와 사실주의 문학

 

  Brecht는 그의 작품에서 현실성이 없는 사건을 작품에 병행시킴으로써 우화적인 성격의 줄거리를 만든다. 「사천성의 선인」에서 신들의 등장이 그 한 예이다. 신들은 종교적인 의식이 없이 등장하여 인간과 같은 태도를 취한다. 그 밖의 주인공인 Shen Te는 창녀로서 또 상점 소유자로서, 변장한 후에는 사촌 Shui Ta로서 Vorspiel과 Epilog에서 나타난다. 이를 통해 Brecht는 우화적인 작품을 구성하고 있다.

  Brecht가 이와 같이 현실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교적 의식을 갖지 않는 신들을 등장하게 한 것은 이들 신들이 전통적인 의미의 신들이 아닌 극작품에서 소외된 인물로 등장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소외가 우화적 성격에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기 때문이다.16)

  Brecht는 이 작품에서 우화의 비유적인 성격을 줄거리 구성에서 그의 탁월한 예술성으로 구현해 내었다. 그는 이 우화를 통해 삶의 묘사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점을 찾았었다. 그는 일상적이고도 평범한 것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우화를 통해 발굴해 내었다. 이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은 개적으로 구체적인 특성을 상실함이 없이 일반화에 도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화는 개적 구체적 사건에 대한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가장 확실한 답을 줄 수 있는 것으로서 Brecht에게는 "콜롬부스의 계란"17)과 같은 묘책이 된 것이다.

  그는 작품에서 우화의 편리함을 이용했으며 우화적 해결에 대해 언제나 만족했었다. 그러므로 그는 이 우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변호하고 있었다.

"Sie (=die Parabel) biete (...) die Möglichkeit, auf indirekte Weise die Wahrheit an den Mann zu bringen"18)

  우화의 유용성은 우화가 본질적인 것을 눈에 들어나게 함으로써 추상성 속에서 구체화 하는데 있다.

  뿐만 아니라 우화는 모델과 개적 특성화 사이의 모순을 하나의 생산적인 모순으로까지 발전시킬 수 있는 작품 유형이다. 이는 현실 모델이 줄거리 속에서 구체화 되어짐으로써 우화가 추상성 속에서 구체화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서 설명한 우화가 개적 사건에서 부터 추상화하는 것과 상반된 것으로 보이나 Brecht의 인식론의 출발점이 변증법적으로 추상적인 현실 모델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이 현실모델은 사회현실의 진행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것을 「사천성의 선인」에서 설명해 보기로 하자.

  이 작품의 서문에서 "이세상에 결핍이 극심하여 사람들은 신에 대한 외경심이 없고 대 혼란속에서 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신들이 등장하게 된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또한 신들은 이런 이유 외에도 이 세상은 불행으로 가득차 있어 불평하는 자들의 불평이 그들에게 도달했기 때문에 도래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들의 불평 때문에 근심하게 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결핍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에게서 신에 대한 외경심이 사라지게 된것을 두려워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상에서 사람들의 빈곤을 해결하는 것 보다 그들 자신이 계명의 선포자로서 그들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 세상으로 내려왔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현재의 상태로 머물 수 없고 세상을 변화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우화에서 제시된 주제는 신의 출현이 아니라 신이 직면하게된 현실이 묘사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의 시작에서 관객은 이와 같은 사실을 알게 된다.

 

"Ich bin Wasserverkäufer hier in der Hauptstadt von Sezuan (...) Es heißt allgemein, daß uns nur noch die Götter helfen können"19)

 

  여기서 배우는 독백이 아닌 질문을 하는 자와 대답을 하는자의 동시적인 역할을 하게 되고 관객또한 처음부터 구체적인 상황에 함께 연출하는 Mitspieler의 역할을 갖게 된다. 그러나 관객은 물장수 Wang을 통해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고 제시된 사실과는 거리를 취하게 되며 이 상황에서 등장한 신의 도래를 우화적인 사건으로 받아 들이게 된다. 해결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를 신의 도래로서 해결하려고 한 것은 우화가 비현실적인 것을 현실적인 것으로 묘사함으로써 비현실적인 것을 구체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실묘사는 "우화적인 사실주의"로서 시적 가치를 창출하게 된다. 실제로 연출가 Wekwerth는 쮸리히의 연출에서 이런 우화적인 성격을 시사하기 위해 일부러 신의 출현을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과 같은 의상을 입고 객석에서 부터 무대로 출현하게 했었다.20)

  관객은 이런 우화적 묘사에서 거리를 취한 상태에서 신들과 더부러 선인을 찾아 나섬으로써 비현실성에서 묘사되어진 이데올로기가 묘사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요컨데 우화는 일종의 촉매와도 같이 사건자체를 가시화하는 바, 여기서 묘사되어지는 이념이 구체적 사건에서 가시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우화를 통해 가시화된 이념은 신이 선인을 찾아 나서는 가운데서 Shen Te를 만나게 되면서 부터 점점 분명해 진다. Shen Ten는 집세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신의 영접이 불가능한 상태이었지만, "아니오"라고 말하지 못하게 되었고, "선하면서도 살아야만"(gut zu sein und doch zu leben)한다는 신의 계명은 세상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이념의 당위성으로 가시화 되고 있었다.

  자체적으로 모순을 가진 창녀가 신을 영접할 사람으로 추천되었기에 물장수 왕은 신이 이 사실을 알지 못하도록 어색한 제스쳐를 했으나 신은 이미 왕의 태도에서 이 사실을 꽤뚫어 보고 있었다. 그리하여 3번째 신은 왕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Aber wenn du willst, daß wir von hier weggehen, dann brauchst du es doch nur zu sagen."21)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관객은 모순적인 현실상황을 묘사한 우화적인 장면에서 가시화되어가는 Brecht의 이념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 작품의 Epilog에서 신의 실패로 묘사된 장면에서 확인되고 있다. 이 실패는 우화적인 묘사의 의도를 개발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Leider können wir nicht bleiben / Mehr als eine flüchtige Stund : (...) / Und lasset, da die Suche nun vorbei / Uns fahren schnell hinein! / Gepreisen sei, gepreisen sei / Der gute Mensch von Sezuan" 22)

 

  신들이 Shen Te 의 절망적인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는 것은 현실적인 문제에 있어서 그들의 속수무책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이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관객은 이 문제의 해결자로 남게 된 것이다. Brecht극에 있어서 이와 같은 문제 제시는 관객을 연극에 포함시키는 또 하나의 무대 기교가 되고 있다.

  Brecht극에서 관객은 우화가 중재한 현실에 대한 해답을 이념적으로 적합한 것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우화는 관객에게 자신의 고유한 이데올로기를 직접적으로 소개함으로써 관객을 의식시키지는 않는다. 그 해답은 우화가 제시한 상과 현실의 상 사이에 거리감을 둠으로써 관객이 얻어낸 인식으로 부터 발생한다. 이와같은 우화의 성격에 대해 Manfred Wekwerth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화는 일상적인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일상적인 것을 파괴해서는 안된다. 우화는 그 일상적인 것을 모든 구체성 속에서 보유해야 하며 유추를 통해 그것을 전달한다."23)

  신의 등장으로 묘사된 우화는 현실의 문제를 강화하여 재현함으로써 현실을 전달하고 있으나 그 현실은 수용 또는 생산과정의 결과로 나타난다. 고로 이런 우화적인 현실 속에는 현실만이 모방되는 것이 아니고 추상적인 수용을 통해 그 해결의 상을 구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코카사스의 백묵원」의 경우와 같다.

  Brcht는 우화에서 이런 추상성을 인식하는 방법으로 서사적 변증법을 적용하고 있다. 연극에서 관객은 단지 참석자로서 자리한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과정의 근거하에서 관찰하고 실험해야하는 정확한 관점이 관객에게 주어지고 있다. 우화는 관객 자신을 실험주의자로 현실에 대한 사회 경제학적 사회 정치학적 관점에서 자신을 발견자로 위치하게 하여 제시된 문제의 완성자로 남게 한다.

  이런 점에서 Brecht의 연극은 우화를 통해 연극이 시작되고 관객에게 관찰자와 판단자의 관점이 제시되는 실험주의적 성격을 띤 연극으로 관객은 이 연극을 완성해야 하는 생산자적 역할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Ⅲ. 결  론

 

 Brecht의 작품은 여러 가지로 기술되고 있으나 그 중에서도 가장 설득력이 있는 기술은 Brecht가 연극에서 Ideologie를 설정하고 이 Ideologie의 실현을 위해 적합한 우화를 찾아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가 연극에서 우화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이를 활용하려고 한 것은 우화가 그 특성상 현실적 문제를 문학적인 방법으로 취급하기에 편리하기 때문이다.

  우화는 주어진 지식을 장면으로 형상화하여 관객을 통해 사고 행위 속에서 재획득되어지게 한다. 이 과정에서 재획득된 지식은 추상성을 띄면서 개적 사건에 국한되지 않고 일반화되어 전체성을 설명할 수 있는 구체적인 법칙을 만들어 낸다. 이 법칙은 하나의 모델로 제시되며 또한 초시간적인 활동을 보유하는 역사화의 과정을 통해 전체주의의 묘사로 나타난다.

  우화는 또한 그의 성질상 서사적 경향을 띄면서 문제해결방식에서 변증법적 과정을 취한다. 이때 관객은 무대의 사건을 바라보는 자로서만 남게 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인식하고 자신이 질문을 받은 자로서 생산자로서 문제해결에 관계하게 된다. 우화는 서사극에서 이야기자가 갖는 역할을 가지면서 현실상황과 관객사이에서 전달자의 역할을 갖게 된다.

  Brecht의 극작품이 대부분 우화로 구성되어 있는 바, 드라마에서 우화적 특성을 살펴 보기 위해 그의 대표적인 우화작품 「사천성의 선인」과 「코카사스의 백묵원」을 예로 연구했다.

 「코카사스의 백묵원」에서는 Vorspiel에서 계곡분쟁에 대한 해결의 지혜를 우화를 통해 제시하고 있는 바, 중국의 오래된 전설을 우화로서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 본 연극은 계곡 분쟁에서 계곡의 소유자를 결정하는 문제와 백묵원의 판결의 결과를 상응시켜 해결의 암시적인 제시로 나타내는 우화의 역사화로 설명하고 있다.

  「사천성의 선인」에서는 현실변화의 당위성을 묘사하고 있는 바,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상에 신이 도래하게 되고 이에서 유도된 줄거리 구성이 추상화 되는 우화적인 성격을 갖는 극으로 연출함으로써 문제의 해답을 시사하고 있다.

  이들은 작품에서 우화적인 성격을 통해 그 미학적 가치를 갖게 하는 좋은 보기의 작품들이다.

 

 

Zusammenfassung

 

 

Eine Studie über die Parabel in Brechtschen Werken

 

 

vorgelegt von Rhie, Sang-Uk

 

 

  Eine Analyse des Brechtschen Werkes zeigt die Verwendung der Parabel als Vehikel der Vermittlung marxistischer Ideologie. Die Parabelform in "das Ei des Kolumbus" ästhetisiert widersprüchliche Probleme der Wirklichkeit und trägt die Verfremdun- gstechnik in der Brechtschen Dramaturgie.

  Die Parabel ist nach Brecht die szenische Gestaltung eines vorgegebenen Wissens, das als Abstraktion der Parabel zugrunde liegt und durch den Zuschauer in einem Denkakt wiedergewonnen wird. Die Abstraktionen sind vor allem die Gesetze, die die gesellschaftliche Wirklichkeit beherrschen und deren Funktionieren die Kunst in modellhaften Gestaltungen dieser Wirklichkeit verdeutlicht.

  Die Parabel ist ihrer Natur nach eine epische Gattung, da sie einen Erzähler voraussetzt - hier liegt eine deutliche Entsprechung zu Brechts Theorie des epischen Theaters, so daß auch in diesem Sinne die Affinität zur Parabelform gegeben ist.

  Die Szene "Kreidekreis" des Werkes "Der Kaukasische Kreidekreis" behandelt einen Gerichtsfall, der ein parabolischer Kommentar zum Problem des Vorspiels darstellt, in dem der Streit zwischen zwei Kolchosen wegen des Besitzes eines Tales das theatralische Spiel geschlichtet wird. Die Problemlösung durch das theatralische Spiel macht das Vorspiel in seiner ideologischen Präsentation ästhetisch fragwürdig. Diese Deutung geht von der von Brecht bestrittenen Voraussetzung aus, das Spiel sei ein parabolischer Kommentar zum Problem des Vorspiels. Wir sehen den parabolischen Charakter auch beim Auftritt der Götter im Stück "Der gute Mensch von Sezuan". Ihre Auftritte entbehren jeder religiösen Feierlichkeit. Brecht meint, die Parabel biete, den Vorteil der Erfaßbarkeit und der Eingängigkeit, auf indirkte Weise die Wahrheit zu vermitteln und die Parabel ermögliche es, ohne Pathos, das immer sehr problematisch sei, Kräfte zu mobilisieren.

  Brecht benutzt die Parabelform in seinem Stück "Der gute Mensch von Sezuan" um in Hinsicht auf die problematische Wirklichkeit der Welt eine neue Möglichkeit zu finden. Die Parabelform gestattet ihm, das Komplizierte in der Welt zu entwirren. In diesem Sinne ist die Parabelform konkret in der Abstraktion. indem sie das Wesentliche augenfällig macht.

 

 

Literatuverzeichnis

 

Ⅰ. Primärliteratur

 

Brecht, Bertolt : Gesammelte Werke in 20 Bänden, Frankfurt a. M., 1967

Brecht, Bertolt : Gesammelte Werke in 10 Bänden, Frankfurt a. M., 1967

 

 

Ⅱ. Sekundärliteratur

 

Buck, Theo(Hg.) : zu Bertolt Brecht, Stuttgart, 1983

Dithmar, Reinhard : Fabeln, Parabeln und Gleichnisse, München, 1995

Geißler, Rolf(Hg.) : Zur Interpretaion des Modernen Dramas, Frankfut a. M., 1978

Grimm, Reinhold : Bertolt Brecht, die Struktur seines Werkes, Nürnberg, 1972

Hinck, Walter : Die Dramaturgie des späten Brecht, Göttingen, 1977

Hinderer, Walter (Hg.) : Brechts Dramen, Stuttgart, 1984

Knopf, Jan : Brecht, Handbuch, Stuttgart, 1980

Koller, Gerold : Der mitspielende Zuschauer, Theorie und Praxis im Schaffen Brechts, Zürich, 1979

Müller, Klaus - Detlef : Die Fuktion der Geschichte im Werk Bertolt Brechts, Tübingen, 1976

Schumacher, Ernst : Er wird bleiben, NDL, 4, 1956, H. 10

 

 

각주

 

* 독어독문학과 교수

1) Klaus-Detlef Müller : Die Funktion der Geschichte im Werk Bertolt Brecht, Tübingen, 1967. S. 191.

2) Ebd.

3) Bertolt Brecht : Kleines Organon für das Theater; In. Bertolt Brecht G.W. VⅡ. S. 687.

4) Klaus-Detlef Müller:Die Funktion der Geschichte im Werk Bertolt Brecht, Tübingen, 1967. S. 193.

5) Ernst Schumacher : Er wird bleiben, NDL. 4, 1956, H. 10, S. 25.

6) Bertolt Brecht : Der Messingkauf ; In : B. Brecht. G. W. Ⅶ, S. 500

7) Klaus - Detlef Müller : a.a. O. S. 196

8) Bertolt Brecht : a.a. O. S. 669

9) Bertolt Brecht : Schriften zum Theater . in 7. Bänden, 5. Bd. S, 86

10) Ebd, S. 35

11) Klaus-Detlef Müller : a.a. O. S. 200

12) Ebd.

13) B. Brecht : a.a. O. S. 368

14) B. Brecht. G. W., St.Ⅱ. S. 2105.

15) Ebd. S. 2008

16) Gerold Koller ; Der mitspielende Zuschauer, Theorie und Praxis im Schaffen Brechts, Zürich, 1979. S. 62.

17) Ebd. S, 63. "das Ei des Klumbus", 문제 해결에 있어서 이 우화가 기발한 착상과 방법의 발견으로 해석된 것      이다.

18) Ebd. S, 62

19) Bertolt Brecht : GW. Ⅱ. St. 2. S. 1489

20) Gerold Koller, a.a. O. S. 66ff.

21) Bertolt Brecht. GW2.StⅡ. S. 1603

22) Ebd. S. 1606

23) Gerold Koller : a.a. O. S.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