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주의(Gnostik)를 통해 본 파우스트*

1)

 

이  영  수**

 

 

 

Ⅰ. 서  론

 

  파우스트의 불만에 찬 독백을 살펴보면, 기독교 교리에서 설정하고 있는 인간과 우주에 관한 도그마, 즉 신, 천국, 지옥, 인간 등의 교리에 반발하여 그가 설사 지옥에 간다 해도 그는 우주에 관한 통일적 원리를 체득하고자 원한다. 그는 학자로서 완벽했다. 그는 모든 학문을 연구하여 통달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학자로서 인식하고자 원하는 무한한 욕구는 자기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의문을 전혀 해결할 방법이 없다. 그는 진실로 신학만이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과제를 과학을 통해 풀어 보려고 했다. 그가 신학을 인간 탐구의 근본으로 여겼으나, 유감스럽게도 그의 가슴에 다가온 신학은 생명이나 우주의 오묘한 이치에 대하여 아무런 해답을 주지 않았다.(V.378)

  그는 마법에 몸을 맡긴다.(V.377) 이제 이성의 세계, 로고스의 세계가 아닌 파토스의 세계에서 우주의 생명 창조에 관한 신비로운 힘의 원천(씨앗)을 알아보려는 것이다.(V.380) 그는 학문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세계, 즉 정령, 영혼, 초월적인 어떤 힘, 또는 악마적인 힘까지 포함하여 우주의 궁극성을 탐색하려 든다. 이와 같은 파우스트를 두고 리케르트(Rickert)는 당시의 사상적 신비주의가 기독교 정신과 만나면서 만들어 내는 하나의 굴절 현상이라고 보았다.1) 또 그는 파우스트를 정통한 기독교인도 아니고 교회에 충실한 믿음의 소유자도 아닌 그냥 어떤 종교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어떤 '종교인'이란 말을 두고 기울이는 사람의 관심사에 따라 여러 가지 관점에서 논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오래도록 파우스트를 기독교의 이단자라는 믿음 하에 그의 종교적 심성은 경건주의에 기울어 있는 범신론자로 못박았다. 그러다가 파우스트 제 1 부를 읽고 있던 어느 날 문득 그가 영지주의자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치솟아 그를 영지주의자라는 가설 하에 '천상의 서곡', '서재', '마녀의 주방', '메피스토와의 계약', 그리고 무엇보다도 '파우스트의 구원'과 관련된 맥락에서 그의 행위와 생각을 연결시켜 보았다. 그랬더니 그는 영락없는 영지주의자였다. 파우스트를 기독교의 이단자라는데 까지는 학계의 정설로 인정해 왔지만, 그가 어떤 이단자이냐에 항상 대답이 궁해 왔던 차에 그 해답이 '영지주의자' 닥터 파우스트라는데 생각이 이르렀던 것이다. 필자는 파우스트를 이상주의자라고 학위논문에서 규정하고, 이상주의 또한 인간의 종교가 될 수 있다는 가정을 했다. 닥터 파우스트가 영지주의자라고 해서 그것이 그의 이상주의와 모순되는 것도 아니므로 나의 견해가 조금씩 나아가는 것 같아 기쁜 생각이 들었다.

 

  본 논문은 포이만드레스(Poimandres)2)가 설정한 영지주의의 이론적 틀 속에 「 파우스트 」작품의 내용을 담아 파우스트의 행위와 생각을 상호 연관지어 파우스트가 어떤 면에서 영지주의자인가를 확인해 보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 파우스트 」의 연구가인 엠리히(Emrich)가 이 작품의 종말 부분에 여전히 '수수께끼'라 할 만큼 불확실한 내용이 있다고 했다.3) 언제 보아도 신비적 색채를 띤 이 '구원의 수수께끼' 부분이 곧 영지주의의 구원관임을 확인해 보고, 주인공 파우스트를 영지주의자로 규정하려는 것이다.

 

 

Ⅱ. 본  론

 

- 파우스트는 영지주의자 -

  『신약 성경』의 경우 네 복음서, 즉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이 모두 같은 관점에서 쓰여졌다는 의미에서 이것들을 모두 공관복음서(the snoptic Gospels)라고 부른다. "예수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오천명에게 나누어주고도 남았다"는 이야기는 네 복음서에 모두 들어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스토리나 배열이 비슷하고 순전히 예수의 전기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거의 동일한 체제인데,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Logos)이 있었나니. 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 이 말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 " 라는 식으로 어딘가 철학적 서술이다. 요한이 화제로 삼는 주제들과 공관서와는 다소 다르다. 요한에게서는 예수가 율법의 문제를 토론하는 랍비로도, 침입해 오는 신의 나라를 선포하는 예언자로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옴과 감, 그가 무엇이며, 무엇을 세상에 가져왔는가에 관해 말한다. 공관서의 예수에게는 아주 특징적인 비유들이 없다. '목자'와 '포도나무'에 관한 구체적 담론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것들은 상징적 상으로 예수를 계시자로 서술한다. 요한서에는 "나는 … 이다"에 의해 그 성격을 얻는데, 공관서에는 그런 유사형이 전혀 없다. 이 부분이 다른 복음서와 좀 변조되어 있어 불트만과 같은 학자는 이것이 영지주의(Gnosticism) 계통에서 성립된 복음서로 보고 있다.4)

 

  파우스트는 불만에 찬 학문의 세계에 저주를 퍼붓고 생을 마칠 결심을 한다. 마침 부활절 새벽 종소리에 정신이 들어 자살 충동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가 산보에서 장막에 덮인 깊은 밤, 들판을 뒤에 두고 돌아와 서재에 앉는다. 밤은 예감이 넘치는 신성한 두려움으로 그의 영혼을 일깨운다. 이 순간 거친 충동은 잠들고, 대신 그의 인간과 신에 대한 사랑이 가슴속에 일기 시작하는 것이다. 파우스트는 바로 이 때 초월적인 하늘의 계시를 동경하여 그 계시가 넘쳐 나온다고 믿고 신약 원전을 펼쳐 들고 그 중에서도「요한복음」을 선택하여 솔직한 느낌 그대로 로고스의 번역에 착수한다.

  '태초에 말(Logos)이 있었다'는 '말'을 신통하지 못한 그 무엇으로 보고 영(靈)의 올바른 가르침에 따라 그 말을 달리 행위(Tat)라고 번역하고서는 만족한다. 이 세상의 만물이 말씀으로 생겨났다기보다는 신의 창조적 행위로 생겨났다고 생각하고 이를 영의 도움으로 여긴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영'이 바로 영지주의에서 말하는 '퓨뉴마'임은 두말할 여지도 없다. 이제 영지주의(Gnosticism)를 살펴보자. 영지주의의 사상을 어느 한 시대의 임의적인 일개 분파, 예를 들면 발렌티노파(Valentine), 마르치온파(Marcion), 바실리데스파(Basilides) 등의 집단에 한정하여 적용시키기보다는 포괄적인 차원에서 현재 밝혀지지 않은 앞선 시대의 발생 집단에 대해서도 그 적용 범주를 확대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충분히 근거 있는 영지주의의 특징을 모색할 경우, 포이만드레스의 설이 지금까지 별다른 반론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의 저술은 헤르메스(Hermes)라는 영지주의에 탐닉하고 있는 인물이 그의 아들 아시레피우스(Asilepious)와의 대화 형식에 따라 희랍어로 서술해 놓았다.5)

  우주와 인간의 창조, 세계의 몰락과 인간의 타락 과정을 묘사하고 있으며, 또 절망적인 상황에서 인간 구원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주제로 담고 있다. 이제 영지주의자들의 신관(神觀), 창조관(創造觀), 인간관(人間觀), 그리고 구원관(救援觀)을 중심으로 파우스트 박사의 영지주의적 견해와 비교해 보기로 한다.

 

1) 하느님

 

  포이만드레스의 설에 따르면, 우주 자연의 존재를 초월하여, 즉 세상의 창조 이전에 이미 신들이 先在한다. 그리고 이 우주 자연은 모두가 二元論的 사유 구조하에 이해되고 있다. 정신(精神)은 인간 존재의 본성에서 비롯되고, 이 정신 속에 생명과 빛이 포함되어 있고, 또 정신이 곧 신이기도 하다. 이 인간 정신을 통해 절대적 신을 바라볼 수있고, 절대적 신을 바라볼 수 있는 정신이 절대정신이다. 이 절대정신에서 로고스(ein höher Äon)가 나왔고, 로고스를 통해 창조(정신)를 낳았다는 것이다.

  인간이 아버지인 神에게서 생명과 빛을 통해 신의 모습을 닮은 인간, 세상의 인간이 창조되었다. 바로 신을 닮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 구원의 가능성이 있다고 영지주의자들은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신격 또는 신과 같은 품위 등은 인간을 창조한 신과 인간이 닮았다는 점에서 신을 말하는 영지주의자들의 신관인데, 이 신관으로부터 유출된 신격의 산물, 즉 에온(Äon)들이 다수 등장한다. 최초의 정신인 누우스(Nus), 모든 영들의 영인 퓨뉴마(Pneuma), 빛을 의미하는 포스(Phôs), 말씀을 뜻하는 로고스(Logos), 인간의 전형이 되고 있는 안트로포스(Anthropos) 등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신적 존재에 대한 그노티시즘(영지주의 Gnosis)6)의 설명은 우주의 모든 창조물에 대한 해명을 시도한 것으로서 진리에 대한 탐구와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靈知)의 추구이다. 파우스트가 과감하게 '신'에게 반역하여 악마의 능력을 통해 신의 비밀에 더욱 가까이 가려고 하는 행위가 결국 '환락'의 추구였다(ein jedes Gelüst). 그는 여러가지 환락을 그때그때 추구했다. 이상주의자의 환락이란 '저곳'에 이르는 수단이요, 신의 비밀을 알게 되는 영지이다. 또 그가 이상 또는 영지를 추구하는 과정 중에 캄캄한 충동에서 죄를 범하게 된다. 이상주의자의 최우선 과제는 자아 완성이요, 자기 구원이며, 영지주의자로서는 곧 신의 비밀이다. 자기 구원은 곧 자기완성이다. 자아 완성의 노력이 인간의 죄, 오류, 실패 등을 치유하는 수단이 된다고 보아 파우스트는 자신의 노력을 자기 구원의 중요한 원리로 삼고 있다.

  절대신에서 유출된 모든 에온들은 신들의 충만한 영역, 곧 플레로마(Pleroma)를 이루고 그 안에 완전한 신이 거주한다. 빛의 영역이라 불리는 이 플레로마는 데미우르고스(Demiurgos)에 의해 창조된 자연의 원형이다. 그래서 자연의 본성 안에 불완전하게나마 이 플레로마가 반영되어 있다. 이렇듯 자연은 그 자체로 무지한 가운데 불완전하게나마 나타나는 신성의 모방을 보고 그 신성을 선망하지만 무지로 인한 결함 때문에 끝내 성취하지 못하고 공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영지를 통한 구원의 가능성은 창조된 자연의 정체를 바르게 아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빛의 영역인 플레로마와 어둠에서 비롯한 자연사이의 대립은 선과 악의 차이만큼 구분되고 영지와 무지처럼 화해할 수 없으며 선망하지만 성취되지 못하는 이원론적 대립으로 등장하게 된다. 영지는 철저하게 영과 육의 이분법을 전제로 한다.7)

  「 파우스트 」에 나타나는 '이원적 대립'은 파우스트와 메피스토, 선과 악, 코스모스와 카오스, 한 인간이 가진 두개의 영혼, 즉 영혼과 육체로 이분된 인간으로 표출되고 있다.8) <천상의 서곡>에서 등장하는 주(Herr)와 메페스토는 또 다른 세계에서의 이원적 대립의 원형이다. 주(Herr)가 창조의 근원적 절대자라면, 메피스토는 하늘의 수석 천사가 칭송하고 있는 창조의 성업을 부인한다(V.294). 또 인간의 자아실현을 부정하고 인간의 노력으로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정한다(V.312). 또 그는 생성하여 존속하는 것의 가치를 부정한다. 주가 인간이란 노력하는 동안 방황한다(V.325)고 전제하고 착한 인간의 어두운 충동에도 불구하고 바른 길을 찾아갈 것이란(V.336) 믿음을 간직하고 있으나, 메피스토는 착한 인간도 자신의 길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믿는다.

 

  이원론적 대립은 반드시 두 대상 사이에서만 생겨나는 것이 아닌 한 개체에서도 가능한 원리이다. 이를 음양의 사유 구조와 같은 것으로 파우스트의 가슴속에 깃들인 두개의 영혼이 그와 같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아 내 가슴속에 두개의 영혼이 살고 있어

서로가 분리되려고 원하고 있다

하나는 노골적인 애욕을 갖고 관능에 묶여

이 세상에 매달려 있을려고 하고

다른 하나의 영혼은 속세를 벗어나

조상의 영들이 살고 있는 저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것이다.(V.1112 f.)

 

Zwei Seelen wohnen, ach ! in meiner Brust,

Die eine will sich von der andern trennen ;

Die eine hält, in derber Liebeslust,

Sich an die Welt mit klammernden Organen ;

Die andre hebt gewaltsam sich vom Dust

Zu den Gefilden hoher Ahnen.

O gibt es Geister in der Luft,

Die zwischen Erd' und Himmel herrschend weben,

So steigt nieder aus dem goldnen Duft

Und führt mich weg, zu neuem, buntem Leben !

 

  지상에서의 양극성의 원리가 빛과 암흑, 코스모스와 카오스, 작품에서는 헬레네와 포르키스 등으로 대별되고, 파우스트의 가슴은 휴식과 창조적 활동, 명상과 실천, 향락과 끊임없는 노력 등이 투쟁하는 장소가 되어 이원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아 슬프다. 마음의 날개에 어울리는

육체의 날개가 없어서.(V.1090)

 

Ach ! zu des Geistes Flügeln wird so leicht

Kein körperlicher Flügel sich gesellen.

 

  신을 찾아 나서는 파우스트의 모습을 살펴보자. 파우스트는 학자이고, 의사이고, 또 신학자이다. 그가 오랫동안 연구하여 대학 강단에서 10년이상 강의와 연구를 맡아 왔다. 그는 학문적으로는 완벽하다. 그러나 자기 구원의 적극적 탐색도 소용없이 그는 절망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취해 온 학문 방법을 모두 걷어치우고 자신의 연구실 물건 등을 내팽개쳐 버리며 분통을 터트린다. 그가 연구한 것은 기껏해야 부분적 진리를 가능하게 할 뿐, 인간의 삶과 우주의 통합적 진리를 터득하지 못한 것이다. 그는 이 우주의 가장 내밀한 곳에서 지배하고 있는 힘(Gnosis)이 무엇인지를 탐색하고자 하여 마술에 몸을 맡겨 초월적 세계로 나아가려고 시도해 본다. 그가 절망하여 마술에 의존하는 것은 기독교의 신을 떠나 영원을 확인하려는 그의 영혼의 존재론적 방황이다. 이것은 영지주의에서 말하는 '절대적인 앎(영지)'을 말하는 것인데, 이 앎을 영의 힘과 말을 빌려 우주의 신비를 캐 보려는 파우스트의 노력이 '환락'의 추구로 나타나는 자구책이라 하겠다.

 

2) 천지창조

 

  포이만드레스의 영지주의에 따른 우주 창조 이해를 살펴보면, 창조사 이전에 선역사(先歷史)가 있었다. 그에 따르면 플레로마에서 타락한 테미우르고스가 우주 안에서 세상을 창조하였다. 우주는 주신(Godhead), 에온들의 영역인 플레로마, 어둠에서 비롯한 자연, 그리고 세상을 창조하기까지 바탕이 되었던 요소들(Chaos)로 구성되어 있었다. 여기서 바탕이 된 요소들이란, 플레로마에 속하지 않고 말씀(Logos)이 언급되지 않은 땅과 물, 공기 등을 말한다.

  데미우르고스가 불과 영을 주관하는 신이 되고, 불은 자연의 요소가 아닌 빛의 요소이고, 영은 신적 요소이든 인간적, 자연적 요소이든 인간에게서도 발견되고 있는 만큼 어디에나 내재하는 기운이면서 동시에 창조적 능력을 배태하고 있는 비현실적 충동이다. 모든 사물은 이런 영을 받는 순간, 곧 역동적 모습이 된다.

  감각적 우주 안에 생겨난 모든 것은 데미우르고스가 주어진 질료들을 가지고 신적 능력으로 창조를 이루었다. 자연은 말씀(Logos)을 가지고 있지 않아, 데미우르고스가 천체를 조종함으로써 자연으로 하여금 산출할 수 있도록 충동하였고, 그렇게 하여 자연이 역동적인 힘인 영을 받아 세상의 피조물을 산출하였다. 그러므로 피조물의 세계는 먼저 자연이 지배하는 세계요, 감각적 세계는 데미우르고스가 지배하며 우주는 신의 섭리로부터 빚어진 천주(절대신)에 의해 지배된다.(Poimandres 8)

  자연이 세상의 온갖 피조물을 산출하였지만 지각이 없다는 점에서 죽음과 사멸은 운명으로 맞이해야 하며 따라서 생명과 빛에 도달하지 못한다. 다만 인간만이 신의 아들로서 혼과 정신에 힘입어 생명과 빛에 도달할 수 있다. 그것은 세상의 인간이 자연에게서 받은 육체로 말미암아 죽음이란 운명을 감수하고도 마침내 불멸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감각적인 것들, 즉 물질은 자연으로 되돌아가고, 자연은 어두움에로 되돌아가고, 생명과 빛에서 나온 모든 것들은 다시금 神에게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메피스토의 코스몰로지에도 이와 유사한 것이 나온다.

 

메피스토 : 저는 … 빛을 낳는 암흑의 일부입니다.

               ……………………………………

               빛은 물체에서 흘러나와 물체를 아름답게 만들지만

               물체는 빛의 진로를 가로막습니다.

               빛은 물체와 더불어 망할 것입니다.(V. 1350 f.)

 

Mephistopheles : Bescheidne Wahrheit sprech' ich dir.

                         ……………………………………

                         Ich bin ein Teil des Teils, der anfangs alles war,

                         Ein Teil der Finsternis, die sich das Licht gebar,

                         Das stolze Licht, das nun der Mutter Nacht

                         Den alten Rang, den Raum ihr streitig macht,

                         Und doch gelingt's ihm nicht, da es, so viel es strebt,

                         Verhaftet an den Körpern klebt.

                         Von Körpern strömt's, die Körper macht es schön,

                         Ein Körper hemmt's auf seinem Gange,

                         So, hoff' ich, dauert es nicht lange,

                         Und mit den Körpern wird's zugrunde gehen.

 

  <천상의 서곡(Prolog im Himmel)>은 신의 우주 창조와 그 법칙, 그리고 파우스트의 방황 등이 함축되어 표현되고 있다. 우선 이 장면은 라파엘, 미하엘, 가브리엘의 3대 천사들이 변함없이 신비한 우주를 "창조의 첫 날처럼(V.249)" 훌륭하다고 찬양하고 있다. 이들의 칭송하는 노래는 에서 시작해서 어둠과 빛(낮과 밤)이 교차하는 을 거쳐 천상의 로 돌아가는 순환적 구조를 갖고 있다. 신의 걸작품(우주,V.269)은 천사들이 비록 신의 아들들이라 해도 그 신비스런 창조의 비밀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 는 여전히 비밀이다.

 

라파엘: 태양은 옛날과 다름없이 노래 가락 울리고

           같은 핏줄인 별들과 다투어 노래부르며

           우렁찬 걸음걸이로 우뢰소리 울리며

           저들의 정해진 여행길을 완성한다.(V.243-246)

Raphael : Die Sonne tönt nach alter Weise

              In Brudersphären Wettgesang,

              Und ihre vorgeschriebne Reise

              Vollendet sie mit Donnergang.

              Ihr Anblick gibt den Engeln Stärke,

              Wenn keiner sie ergründen mag ;

              Die unbegreiflich hohen Werke

              Sind herrlich wie am ersten Tag.

 

  라파엘은 예정된 여행길을 완성하는 태양에 관한 관조에서 영원한 우주 법칙을 보고 있다. 그 보이는 법칙만 바라볼 뿐 그 이법의 원리는 여전히 비밀이다.

 

가브리엘: 지구는 스스로 돌아 낙원처럼 밝은 낮과

              깊고도 무서운 밤이 교차된다.(V.252-254)

 

Gabriel : Und schnell und unbegreiflich schnelle

            Dreht sich umher der Erde Pracht ;

            Es wechselt Paradieseshelle

            Mit tiefer, schauervoller Nacht ;

 

  가브리엘은 지상에 눈을 돌려 명암이 갖는 음양의 창조적 힘을 전달해 주고 있다. 명암은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우주 속에 내재된 조화로운 요소이다. 음양의 규칙적인 변화는 물질의 변화를 촉진하는 내재적인 힘이다. 음양의 리듬에서  위대한 신의 창조적 힘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신비한 힘은 여전히 비밀이다.

 

셋이서: 그 장엄한 광경을 보면 천사들은 힘이 솟는다.

           누구 하나 그 근본을 캐지 못하지만

           저 모든 드높은 업적은

           천지개벽의 그날과 같이 여전히 장엄하오.(V.267-270)

 

Zu drei : Der Anblick gibt den Engeln Stärke,

            Da keiner dich ergründen mag,

            Und alle deine hohen Werke

            Sind herrlich wie am ersten Tag.

 

  이와 같이 3대 천사들이 칭송하는 우주는 우리를 시간을 초월한 경지로 이끌고 가서 신의 존재를 성서와 다른 형태 즉 문학적 형상으로 비유를 통해 전달해 주고 있다.

 

  천사들이 말하는 지구는 천국과 같이 밝은 대낮과 지옥과 같이 어두운 밤이 교차하고, 또 이곳에는 비바람이 있고 천둥번개가 있으며 높은 파도가 일고 있다. 이와 같은 세계는 정신과 물질이 구분되고 세계가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결정론적 세계관과는 다르다. 메피스토가 그의 우주론을 어둠을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는 생각이나 자신이 전체의 한 부분으로 간주하는 사고 등은 분명 인과율의 결정론에 따른 사고 방식이 아니다. 한 부분이 유기적인 요소로서 전체와의 상관 속에서만 성립하고, 이것은 서로가 내부적 속성을 함께 구성한다는 것이다.

  파우스트가 전개하며 보여주는 세계관은 계몽주의 시대의 우주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서구 경건주의를 통해 전해 오는 신비주의에 가깝다. 모든 만물이 서로 얽혀 결합되어 있어 괴테는 파우스트를 통해 불교의 연기론적 사고를 신화적 상징으로 구체화시켜 표현하고 있다. <고전적 발푸르기스의 밤>에 대지의 생성을 신화적 상징으로 모색한 것이나,  <어머니 나라>에서 보여주는 근원 형상, 즉 모든 사물의 발생과 생성은 자연의 모태가 지닌 '원형'에 따라 생긴다는 것이다. 이 원형에 따라 꽃, 나무, 새, 짐승뿐만 아니라 인간까지도 근원적으로는 유사한 형태로 생겨난다는 믿음이다. 이와 같은 견해는 모두 영지주의에서 생겨나서 기독교에서 수용되고 기독교 밖에서 본 괴테가 그것을 다시 살려낸 것이라 하겠다.

 

  구약에 기록하고 있는 「 창세기 」2장 5절에는 우주 창조의 시작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야훼 하나님께서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때였다. 땅에는 아직 아무 나무도 없었고, 풀도 돋아나지 아니하였다. 야훼 하나님께서 아직 땅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땅을 갈 사람도 아직 없었다. 마침 땅에서 물이 솟아 온 땅을 적시자, 야훼 하나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콧구멍에 생명의 입김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여기 기록하고 있는 「 창세기 」의 설화에서 하늘과 땅을 만드는 주신(Godhead)의 능력이나 '마침 땅에서 물이 솟아' 그것을 이용하여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내는 것은 질료가 있고 자연의 역동적인 힘을 이용하여 영을 불어넣어 생명을 창조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은 기록은 초기 기독교가 형성되는 초대 교회, 그리고 예수 탄생 이전의 역사, 그리고 예수라는 인물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영지주의자라는 지중해의 토속신앙과 기독교화 과정의 산물이다.

  기독교를 살펴보면, 기독교는 혼합 종교이다. 기독교의 탄생을 가능하게 하는 많은 물줄기가 있다. 유대이즘과 헬레니즘의 철학과 종교의 여러 갈래들, 그리고 조로아스트 종교의 페르시아 문명의 혼합 등이 그것이다. 또 기독교와 같은 시기에 전개되어 온 영지주의의 원형도 희랍의 올페이즘이나 기타 토속적 샤마니즘의 영육 이원론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영지주의의 엉성한 도그마를 아랍 문명이 흡수하여 스페인을 거쳐 서구라파로 공급해 주었다. 불교에서도 지옥이 극락(極樂)과 대비되는 영역이고, 그 지옥을 일상적으로 명부(冥府)라 하는데 이것은 '땅의 감옥'이란 뜻이고 그곳은 다시 영이 머물고 있는 육체라면, 육체 또한 영의 감옥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육체의 감옥이 문제가 된다면, 불교에서 말하는 명부 또한 영지주의와 그리 멀지 않은 관계에 있는 것이다. 철학적으로도 불교의 해탈 사상은 영지주의의 영지(Gnosis)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보아진다. 조로아스트교를 영지주의의 할아버지라고 한다면, 영지주의의 서자가 기독교 정도에 해당될 것이고, 그 적자가 바로 마니캐이즘(Manichaeism)일 것이다. 마니(Mani)가 이란 제국에서 출생하여 '빛의 사도(the Apostel of light)'로서 소명을 받고 복음 선포를 시작해 인도를 거쳐 페르시아에 돌아와 조로아스트 정통파에 박해를 받고 수난을 거쳐 십자가형에 처해졌다. 그가 자신을 아담으로 시작해서 조로아스트, 석가모니, 예수로 이어지는 하늘 사자의 마지막 계승자로 간주했다. 그의 이론은 영지주의의 어둠, 빛 사상이란 이원론적 사상을 철저히 표방했다. 사해문헌 중에 "빛의 아들들과 암흑의 아들들과의 전쟁" 이란 책9)에 쿰란 집단 소속을 빛의 아들들이라 규정하고 그 외의 아들들을 암흑의 아들들로 규정하여 그 양자사이의 종말론적 전쟁을 묘사하고 있다. 암흑의 자식들은 악마 벨리알(Belial)과 그의 군대의 도움을 받으나 결국 완전히 박멸되고, 광명의 자식들은 이 세상을 완전히 정복한다. 이와 같은 쿰란종파가 영지주의자들과 사유패턴에 있어 상호 관련성이 있다.10)  

  이렇게 보면 천사들의 노래 속에 낮과 밤의 교차란 바로 어둠과 빛의 이원론적 사고를 전해 주는 영지주의의 영향이라 해도 무리는 없다. 영지주의의 적자로 있는 마니캐이즘(마니교)의 시조, 또한 빛의 사도로 일컫고 있어 이 또한 이성을 '신의 빛'이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기독교에서는 항상 어둠을 이기는 빛은 선한 신의 대명사가 되고, 한줄기 빛이란 항상 하늘의 계시처럼 여겨졌다. 메피스토 또한 주님에게 "당신이 만약 인간에게 천상의 빛(이성)을 주지 않았다면, 인간도 좀 더 나은 생활을 할텐데"라고 대항하여 이성(Vernunft)을 언급하고 있다.(V.285)

 

  이상의 언급에서 구약 「 창세기 」의 내용이나 <천상의 서곡>에 언급하는 신의 창조관은 어떤 관점에서 보아도 영지주의의 영향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3) 연금술사 파우스트

 

  파우스트는 그 당시의 모든 학문을 두루 공부하고 최고의 학위를 취득했으며 또 대학 강단에서 연구하고 가르치며 스승의 지위를 누렸다. 그가 철학, 법학, 의학, 신학을 공부하여 스스로 사물에 대한 편견이 없다는 점에서 자부심마저 느끼고 있다. 학문상 그는 완벽한 사람이다. 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자로서 불만스럽다. 파우스트가 이 세계를 그 가장 깊은 곳에서 총괄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며 그 지배하는 힘의 근원을 알고 싶어한다.(V.382 f.) 그가 알고져하는 우주를 지배하는 근원적 힘이란 바로 영지(Gnosis)를 말한다.

  그가 마법에 몸을 맡긴 것은 세속적 명예와 돈이 아니라, 우주의 신비로운 비밀을 알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더 이상 이성의 세계, 로고스의 세계가 아닌 파토스의 세계이자 마법의 세계이다. 이것은 일찍이 괴테가 신비 철학에 흥미를 느끼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믿고 마법 세계를 수용한 것이다.11) 바로 여기에 나오는 파우스트는 이러한 거인적 인식욕에서 영지(Gnosis)를 얻고자 한다. 영지란 우주와 개인에 대한 완벽한 앎, '절대적 앎'을 말한다. 파우스트가 우주의 신비로운 힘을 알기를 원하는 것은 곧 영지의 획득이다. 신비로운 힘이란 에소테릭한(Esoterik) 비의적인 것이요, 그 대상이 초월적인 어떤 힘이다. 초월적인 그 무엇이기에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알아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파우스트는 그 힘을 모색해 본다. 이 힘의 탐색과정이 연금술의 장면에 잘 드러나고 있다. 아프리카 최고(最古)의 명칭인 케미(Kemi)는 바로 '검다(black)'는 의미이고, 이 명칭이 바로 서양 중세기 알케미(Alchemy), 즉 연금술의 어원이다. 우리가 지금 케미스트리(Chemistry)라고 부르는 '화학'도 이 '케미'에서 유래된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연금술사와 한패가 되어

침침한 부엌에 틀어박혀

수많은 처방에 따라

서로 상극이 되는 약품을 배합시켰다.

거기에서는 대담한 구혼자인 붉은 사자가

미지근한 물에서 백합과 짝을 지었다.

..............................................................

그러면 오색찬란하게

젊은 여왕이 유리관 속에 나타났다.(V.1038-1046)

 

Mein Vater war ein dunkler Ehrenmann,

Der über die Natur und ihre heil'gen Kreise

In Redlichkeit, jedoch auf seine Weise,

Mit grillenhafter Mühe sann ;

Der, in Gesellschaft von Adepten,

Sich in die schwarze Küche schloß

Und, nach unendlichen Rezepten,

Das Widrige zusammengoß.

Da ward ein roter Leu, ein kühner Freier,

Im lauen Bad der Lilie vermählt,

Und beide dann mit offnem Flammenfeuer

Aus einem Brautgemach ins andere gequält.

Erschien darauf mit bunten Farben

Die junge Königin im Glas,

Hier war die Arzenei, die Patienten starben,

Und niemand fragte : wer genas ?

 

  여기에 나오는 침침한 부엌은 연금술을 실험한 실험실이고, 그 실험실은 컴컴(dark)해야 하며 '붉은 사자'와 '백합'이란 금을 만들기 위한 재료들이다. 또 '미지근한 물'은 일종의 성스러운 물이다. 중세의 연금술사들이 금의 색깔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알케미(Alchemy)를 물리적으로 얻어내기 위해 달걀을 증류시켜 그 물을 사용했다. 달걀에서 성질이 전혀 다른 새가 변화되어 탄생하듯이 달걀이 알케미의 변화에 근원적 계기가 되어 금이 추출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이렇게 프뉴마(Pneuma)가 들어 있는 물을 성스러운 물(聖水)이라 보고, 이 성수를 금속에 작용시키면 금속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믿은 사람들이 영지를 믿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보면 파우스트는 적어도 근대적 의미의 과학자는 아니고 일종의 연금술사이며 영지주의자이다. 어찌 보면 이와 같은 발상은 생명체의 발생 과정을 지배하는 정보 물질(DNA)의 힘을 빌어 광석을 금으로, 분말 가루를 약으로 변화시킬려는 화학적 사고의 태동이었다. 알케미에 관한 중세기의 연금술이 바로 여기 파우스트의 연금술이며 영지주의자의 연금술이다. 그의 생각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화학이나 금속의 화학적 변화는 아니다. 파우스트 박사가 과학적 목적의 성취가 아닌 그 금속의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신비로운 어떤 힘을 추구한 것이다. 이 힘의 추구가 바로 「 파우스트 」 작품에서 주인공이 방황하는 주된 동기를 이루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파우스트 박사의 불만의 원인이요, 그가 왜 마술과 결탁하게 되는가 하는 문제의 열쇠가 되고 있다.

  이러한 힘은 물리적이라기보다는 영적인 그 무엇, 즉 아르스 마그나(Ars Magna)라 해야 옳을 것이다. 금속을 변화시키는 영적인 어떤 지혜, 그것이 바로 영지(靈知)를 구현해 보려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은 생명과 무생명과의 이분법을 허용하지 않는 고대인의 샤마니즘적 세계관을 그대로 이어받은 영지주의자 파우스트 박사라 해야 지당할 것이다. 이런 착상이 화학이라는 학문을 발생시켰고 오늘날 다시 생명의 신비를 파헤치는 생화학이 또 다른 연금술이 되어 다음 시대를 향해 불붙고 있다. 이렇게 영지주의자 파우스트 박사의 무모한 발상과 정신이 오늘날 우리에게 새로운 의미를 던져 주고 있어 흥미로운 것이다.

 

4) 파우스트의 구원

 

  영지주의의 인간관은 어떠한가 ?

  최초의 원형적인 인간은 플레로마에 거하는 주신의 사랑으로 유출된 존재이다. 그 인간의 본성은 곧 神聖에서 비롯된 것이며 빛과 생명을 간직한 존재이다. 그 원형적 인간이 세상의 창조 과정을 지켜보면서 자연과의 관계가 시작된다. 자연은 이 인간의 형상을 따라 세상의 인간들을 창조하게 된다(Poimandres 17). 자연은 풍부한 땅, 곧 흙과 생산력이 넘치는 물을 통하여 인간 육체를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인간의 형상을 이루고 있는 빛과 생명을 통해 혼과 정신을 받음으로써 인간들의 창조를 완성한다. 그로 인해 결국 인간들은 육으로서는 죽을 존재이지만, 혼과 정신으로서는 불멸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제 인간들은 자연에 얽매이지만, 빛과 생명을 향해 살아가는 존재이다. 여기에 구원이 필요한 것이다. 신적 요소가 결여된 창조물들은 구원이 불가능하다. 다만 혼과 정신이라는 신적 요소를 소유하고 있는 인간만이 구원의 대상이다. 인간의 혼과 정신 속에 남아 있는 신의 불꽃(the Divine light)으로 최초의 원인간이 나왔던 플레로마로 돌아가야 할 존재이다.

  여기서 '신의 불꽃'을 스스로 자각함으로써 구원이 가능하다는 이론과 인간과 신의 중보자에 의해 영지가 이루어짐으로써 가능하다는 영지주의 이론이 있다. 그러나 스스로의 자각에 의한 구원이라도 인간의 내면에 신적 불꽃은 신적인 구원중재가 반드시 필요하다. 영지가 신의 도식 안에서 스스로 자각하도록 선동해야 하는 중보자는 이미 선지식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그는 세상에 있는 사람이 아닌 하늘에서 내려온 자라야 한다. 바로 이 때문에 영지주의의 구원관은 그 구원 진리에 대한 중보자의 정체가 초대 그리스도교의 주님과 결부되는 시점에서 육체가 있는 사람의 신분은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영지주의에서 말하는 구원의 의미는 결국 선망과 잠에서 깨어나 이 세상으로부터 이탈함으로써 마침내 신의 영역, 곧 플레로마의 복귀를 뜻하는 것이다.

 

  괴테가 「 파우스트 」에서 주인공 파우스트를 구원시키는 과정을 영지주의적 관점에서 한번 추적해 보자.

 

  파우스트가 보통 사람의 대변자라면 그가 인간의 욕정과 모든 육체적 충동이 순수 자아의 영적인 것(이성, 영혼, 정신)에 비해 비본래적인 것으로 파악되고, 따라서 그 본래적 자아가 육체의 감옥에 갇혀 있고 나아가 크게는 인간이 코스모스라는 큰 세계의 감옥에서 암흑의 악마 세력에 감금되어 있다. 인간은 하늘빛인 이성에 의해 윤리적 존재가 되고 구원의 대상이 되고 있으나 바로 이 이성을 통해 몸이 지상의 감옥에 갇혀 있음을 알고 천상을 동경하는 이중적 본성(Doppelnatur)의 갈등에 빠지게 된다. 여기에 메피스토를 통해 파우스트의 본성이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메피스토: 그는 하늘에서 제일 아름다운 별을 갖고자 하고

              땅에서는 갖가지 쾌락을 맛보려 하지요.

              그리고 멀고 가까운 것 모두다 그의 가슴속에

              깊이 들끓고 있어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V.304-307)

 

Mephistopheles : Vom Himmel fordert er die schönsten Sterne

                         Und von der Erde jede höchste Lust,

                         Und alle Näh' und alle Ferne

                         Befriedigt nicht die tiefbewegte Brust.

 

  하늘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을 찾는 파우스트는 본래적 자아이고, 땅에서 쾌락을 쫓는 그는 감각적 충동에 휩쓸리는 비본래적 자아의 모습이다. 파우스트가 요한복음을 일컫어 계시가 충만한 원전이라 했거늘 불트만 또한 요한복음을 지배하고 있는 일관된 사상을 빛(포스)과 암흑(스코티아)이라 하였다. 영지주의 또한 영혼과 육체의 철저한 二分을 전제로 하고 있다. 요한복음서의 언어는 "빛-암흑"의 댓귀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것이다.12) 요한복음의 저자에게 로고스는 그 자체가 곧 빛이다. 빛은 세상을 밝게 해주고 보는 일(見)을 가능하게 한다. 본다는 것은 인간이 대상을 알게 한다는 뜻만 아니라, 그 자신 어둠의 세계에서 바른 길을 본다는 데에도 있다. 이 빛은 인간에 내재하면서도 원래 인간이라는 비본래적 육체에는 속해 있지 않다. 그 빛은 하늘에서 온 것이다. 메피스트도 이것을 '천상의 불빛(der Schein des Himmelslichts)'이라 칭했고, 인간은 그것을 '이성(Vernunft)'이라 했다.(V.285) 이 빛의 파편이야말로 본래적 자아이며, 인간의 특수한 영적 능력으로 본 것이다. 이는 인간의 감각, 충동, 의지와는 다른 것이다. 하늘빛에 관련된 자아에 관한 지식, 즉 이 암흑의 세계에서 구원되는 길에 관한 지식, 그것이 곧 영지(Gnosis)이다. 즉 구원은 하늘에 이르는 길을 인식한 "영지자"에게 선사되며 인간이 죽어 몸과 영혼이 갈라질 때 그 영혼이 해방되어 하늘빛의 세계, 즉 플레로마의 세계에 오르는 것이 구원이다. 죽은 후에 라야 구원이 제공된다. 따라서 영지자의 의식은 현세에서 두 가지 삶의 양식을 유발시킬 수 있다. 하나는 금욕적 삶이요, 다른 하나는 방종적 삶이다.

 영지를 추구해 가는 과정에서 악마와 계약을 맺는 파우스트는 철저하게 방종적 삶을 살았다. 즉 그의 육체는 가상적 존재이고 영혼의 감옥에 불과하므로 아무런 도덕적 책임을 질 필요가 없고, 그러한 육체는 철저한 향락을 통해 학대해도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파우스트가 구원되어 하늘 여행을 하는 과정은 악마적 세계의 지배자로부터 벗어나는 해방의 과정이다. 그의 개인주의적 종말론은 하늘빛의 파편들이 암흑의 세계에 결박되었다가 해방되어 저 빛이 충만한 세계로 올라가는 데 관한 가르침과 관련되어 있다.

  메피스토가 파우스트를 유혹할 때, 그는 인간의 능력과 순수함을 이용한다. 눈에는 아름다운 그림이요, 귀에는 달콤한 음악, 코에는 향기로운 냄새 등 이와 같은 수단으로 관능을 자극하여 파우스트를 사로잡는다. 이렇게 파우스트의 비본래적 자아의 충동으로 악마와 결탁하여 그가 회춘하고 그레첸과 관계를 맺고 그녀의 오빠를 살해하고, 그녀의 어머니를 수면제로 죽이게 되고 영아를 살해하도록 만들고, 마침내 그의 애인을 영창으로 보내는 것은 방종한 자의 대표적인 인물상이다. 뿐만 아니라 필레몬과 바우치스 그리고 그 집의 손님까지 자신의 기분 때문에 죽인다.

  파우스트가 죽은 후에 보여주는 그의 구원 과정을 살펴보자. 먼저 영지주의에서 행하는 구원 과정을 논하고 파우스트의 구원 과정을 추적해 보기로 한다.

  영지주의의 구원은 먼저 하늘 세계에서 내려온다. 지고자(至高者)의 아들이며 그의 모상(模像)인 저 빛의 모습은 지고(至高)의 신에 의해 다시 파송되어 영지를 가지고 빛의 세계에서 내려온다. 그는 잠과 취함에 빠져 있는 빛의 파편들(이성을 가졌던 사람들)을 '깨우고' 그들에게 그들의 하늘 고향을 '회상시킨다'. 그는 그들에게 그들의 이 세계에 대한 우월성을, 또 그들이 세계에 대해 취할 태도를 가르친다. 그는 헌신의식들(Weihen)을 새로 만들어 그것들을 통해 그들이 자신을 깨끗이 씻고 꺼진 또는 쇠약해진 빛에 다시 불을 붙이고 강하게 한다. 이로써 그들은 '다시 출생'한다. 그는 그들에게 죽은 후에 시작되는 하늘 여행에 관해 가르치고 비밀의 문구들을 제공하며 그들은 이 문구들에 힘입어 이 여행의 단계들, 星城들을 지키는 악마의 파수병들을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그는 앞서 가면서 그 자신, 즉 속죄자 자신을 위해서도 속죄에 이르는 길을 개척한다. 왜냐하면 그는 이곳 지상에서는 신의 이름으로 나타나지 않고 악마들에게 발각되지 않기 위해 지상의 옷으로 변장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로써 지상의 존재의 고난과 궁핍을 스스로 지고 그가 지상을 고별하고 빛의 세계로 올라가기까지 수모와 박해를 받아야 한다.13)

 

  파우스트의 자기 구원이 이러한 영지주의의 신화적 구조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이 작품 「 파우스트」를 통해 확연히 드러난다. 파우스트가 죽어 죽음의 영인 레무르가 시신을 둘러싸고 있을 때, 파우스트의 영혼이 장미꽃 불꽃 속에서 하늘로 올라간다. '성숙한 천사들(die vollendeteren Engel)'은 두 개의 영혼을 가진 파우스트의 영혼에 아직도 깨끗하지 못한 찌꺼기가 있다고 지적한다. 즉 아직 죄의 올가미가 그를 묶어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때 성모의 신비적 힘을 탐구하고 숭배하며 성모의 사랑을 가르치는 천사인 '마리아 숭배의 박사(Doktor Marianus)'는 어떤 사람도 자력으로 욕정의 사슬을 끊을 수 없다(V.12025)고 말하면서 파우스트의 구원은 '영광의 성모(Mater Gloriosa)'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말한다.(V.12000) '영광의 성모'에게 매달리는 파우스트의 옛 애인 그레첸은 완전히 정화되어, '승천한 소년들(die seligen Knaben)'이 인도해 온 파우스트를 맞아들인다. 이 소년들은 태어나자마자 죽어 현세의 고뇌도 죄악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들로서 그들은 천사와 같은 교부들을 아버지처럼 따르면서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이 소년들에 둘러싸인 파우스트는 점차 육신의 찌꺼기를 벗어나 에테르의 옷을 갈아입고 하늘의 영적 인간이 되어 간다.(V.11985) 그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그러나 언젠가 떠나왔던 그곳을 2고향처럼 찾아 나서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정통파들과 영지주의가 대립된 가장 중요한 쟁점은 세계 창조자가 누구냐에 달려 있다. 영지주의파는 지고의 신은 이 세계의 창조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반면에 구약과 유대교의 전통을 고수하는 정통 기독교론자들은 이 세계를 참 유일신의 창조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모든 창조와 속죄가 그 유일신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바로 여기에 인간론의 입장에서 대립이 불가피하다. 기독교 정통의 견해에는 인간의 영과 육이 함께 신의 피조물이므로 영육의 존재에 본래의 선재적 하늘빛의 파편을 구별하는 일이 있을 수 없다. 반면에 영지주의 기독교론에 있어서는 예수의 실재적 인간성을 인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양자사이에 부활의 의미가 다르다. 영지주의자들에게 예수의 죽음 자체는 죽음의 의미가 없다. 예수의 죽음이 곧 부활이며 빛으로의 환원이기 때문이다. 영지주의자의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힐 당시 이미 그의 영은 육으로 분해되어 그의 죽음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낄낄거리고 웃는다. 그리고 위장된 예수의 가사(假死)를 보고 슬퍼하는 인간들의 무지를 개탄한다. 물론 정통파 기독교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육체적 부활이다. 요한복음에 나타나는 예수가 신과 인간 사이에서 중보자로서의 자기 이해에는 기본적으로 영지주의의 대속자 신화(the gnostic Redeemer myth)의 틀을 빌려 온 것임에 틀림없다.14)

  파우스트의 영혼이 구원의 천사들에 의해 악마의 손에서 떠나 지상의 옷인 육체를 벗어버리고 하늘로 올라간다. 이 때 천사들이 장미꽃을 뿌려 준다. 장미꽃은 자연의 사랑과 신의 은총의 상징으로 악마의 힘을 약화시키면서 파우스트를 구원해 간다. 파우스트는 죽었고, 그의 영혼의 구원은 법열의 교부(Pater Ecstaticus)의 열성적 기원으로 파우스트에게 사랑의 인연, 육신 등 모든 허망한 것을 날려보내고 구원의 빛을 기원해 준다. 성모 마리아의 자비로운 사랑의 은총으로 파우스트는 구원된다. 구원의 은총이 영지를 깨닫는 사람에게 얼마나 자연스럽게 주어지고 있는가를 작품의 마지막 구절인 <신비의 합창> 속에 잘 드러내고 있다.

 

모든 허망한 것은

단지 비유일 뿐이다.

이룩할 수 없는 것이

여기서 이루어진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여기서 행해졌다.

영원한 여성상이

우리를 이끌어 가는 것이다.(V.12104 f.)

 

Alles Vergängliche

Ist nur ein Gleichnis

Das Unzulängliche

Hier wird's Ereignis ;

Das Unbeschreibliche,

Hier ist's getan ;

Das Ewig-Weibliche

Zieht uns hinan.

 

 

Ⅲ. 결  론

 

  우주의 근원적인 힘을 탐색하다가 절망한 파우스트가 악마 메피스토와 결탁하여 마법에 몸을 맡긴다. 영지주의자들의 구원은 죽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영지주의가 영혼과 육체의 이분법을 전제로 육체는 가상적 존재이며, 영혼은 본래적 자아이다. 그러므로 육체는 철저한 향락을 통해 학대해도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파우스트는 철저히 향락을 추구하여 아주 가혹한 죄의 삶을 살았다. 그는 그레첸과의 관계를 맺고 그녀 모친의 죽음을 유도하고 그녀의 오빠를 살해하며 그녀로 하여금 영아 살해범이 되게 만든다. 또한 그는 언덕 위에 살고 있는 노부부와 그 집의 손님을 불에 태워 죽였다. 그가 마녀의 주방에서 만들어 준 탕약을 마시고 회춘하여 끓는 피에 놀아난 발푸르기스의 밤의 섹스 파티는 그의 광란의 절정이었다.

  초기 기독교의 교부들이 영지주의에 대한 비판은 바로 악마적인 힘과 결탁하여 혼음의 방종한 사람들에게 퍼부어졌다. 희랍의 바카스 축제와 같은 데에 확연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기독교인들이 파우스트를 비난할 수 있고 그를 단죄할 수 있는 부분이다.

  파우스트가 계시를 염원하여 펼쳐 든 복음서가 하필이면 「 요한복음 」이다. 태초에 로고스가 있어 모든 것이 로고스로 말미암아 생겨났다는 등의 서술은 영지주의 계통에서 성립한 문서라는 것이다.

  또 영지주의에서 내세우는 빛과 암흑의 이원론적 대립은 작품에서 신과 악마, 메피스토와 파우스트, 선과 악, 카오스와 코스모스, 파우스트에 깃들인 두 개의 영혼 등으로 표출되고 있다. 「 창세기 」에 나오는 인간의 창조 과정도 무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주어진 질료(진흙)를 마침 솟아나는 물로 이겨 만든다는 내용 또한 영지주의의 소산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견해도 <천상서곡>의 주(Herr)가 우주창조의 주신으로 생각되지 않는 부분이다. 기독교가 혼합 종교로서 영지주의의 서자쯤 된다는 것이다. 지옥과 천당의 대비처럼 육체를 영의 감옥으로 본 사고 유형, 또한 강한 영지주의의 내용이다. 천사들이 신을 찬미하는 자리에서 낮과 밤을, 빛과 어둠의 대비로 본 것 또한 영지주의 영향이다.

  작품에 나타나는 영지주의는 파우스트가 연금술을 통해 페스트 병의 치료에 쓰는 약품 제조에서도 잘 나타난다. '미지근한 물'로 나타나는 성수(聖水)로 광석을 금으로 바꾸려는 노력은 바로 영지(절대적 앎)를 얻으려는 노력이요, 이러한 영지를 통해 우주를 다스리는 근원적인 힘의 씨앗을 확인하려 한다. 이런 실험으로 파우스트 박사가 과학적 목적의 성취가 아닌 그 금속의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는 신비로운 힘을 추구했다.

  끝으로 영지주의자의 구원은 하늘 세계에서 파송되어 지상으로 내려온다. 그는 신의 아들이며 빛의 모습으로 영지를 가지고 내려와서 죽은 자의 영혼을 모셔 간다. 그는 지상에서 사람의 모습으로 변장하여 고난과 궁핍을 받고 승천한다. 「 파우스트 」에서는 파우스트의 구원을 <마리아 숭배의 박사>의 간청으로 <영광의 성모>가 주도한다. 신과 인간을 연결하고 중보자는 성모 마리아가 되고 있다. <승천한 소년들>이 현세의 고뇌도, 죄악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들로서 이들에 둘러싸여 육신의 찌꺼기를 벗어나 영적 인간이 되어 언젠가 떠나왔던, 그러나 자신이 알지 못하는 저곳 플레로마의 세계를 고향처럼 찾아 나선다.

  이상과 같이 작품에 나타난 파우스트는 수미일관 영지주의자 닥터 파우스트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작품의 종말 부분이 '수수께끼'라는 엠리히(Emrich)의 문제 제기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참 고 문 헌 (Literaturverzeichnis)

 

1. Primärliteratur

 

Goethes Werke Bd. 3, Dramatische Dichtungen I. Textkritisch durchgesehen und kommentiert von Erich Trunz, 12. Aufl., München 1982. (I. Aufl., die Hamburger Ausgabe 1949, Zitate im Text nach dieser Angabe).

Goethes Werke Bd. 9, kommentiert von Er6ich Trunz. München 1982.

(I. Aufl., Hamburg 1955-1967).

Goethes Werke Bd. 12, Textkritisch durchgesehen von Erich Trunz und Hans Joachim Schrimpf. München 1982. (I. Aufl., Hamburg 1953-1967).

 

2. Sekundärliteratur

 

강 두식:「파우스트 Ⅰ,Ⅱ부」서울대 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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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usammenfassung

Ist Dr. Faust ein Gnostiker ?

 

 

Young-Su, Lee

 

 

  Es ist mein Ziel der vorliegenden Arbeit, ob Dr. Faust ein Gnostiker ist. Faust ist zwar Wissenschaftler, aber kein Wissenschaftler im modernen Sinne. Mit den Mitteln der Ratio, des Systems und der Methode aber ist eine transzendente Erkenntnissehnsucht nicht zu erfüllen. Das Geheimnis des Weltgrundes 8der ganzheitliche Seinszusammenhang und der Sinn des Lebens bleiben außer Betracht. Letzten Sinns ist es überhaupt keine wissenschaftliche Erkenntnis, nach der sich Faust inbrünstig sehnt, sondern es ist mystische Erfahrung oder religiöse Erleuchtung. Seine Wissenschaft könnte eine religiöse Funktion übernehmen. Es ist Gnosis. Gnosis heißt absolute Erkenntnis.

  Es ist auch das Evangelium nach Johannes, daß Faust, der Sehnsucht nach tieferen Offenbarungen hat, eine Stelle in der Bibel aufschlägt. Das Evangelium sei eine Schrift von einer Art Gnostik nach R. Bultmann. Gnostiker glaubt, die Erlösung der Menschenseele wird nach dem Tod möglich sein. Er setzt die Dualität der Erscheinung voraus : Licht und Finsternis, Leib und Seele, Geist und Materie. Durch den Tod Fausts wird er am Ende dieses Stückes erlöst. Faust hat studiert, was seinerzeit zu studieren war, um enttäuscht zu erfahren, daß es ein verzweifelter Agnotizismus und Skeptizismus sind. Er befindet sich in einer umfassenden Erkenntniskrise. Also widmet er sich der Magie und Metallkunst. Im Mittelalter war die Metallmischung auch eine Magie. Hiermit stammt heutige Chemie aus einer solchen Magie.

  Goethes Weltanschauung steht mit der Christlichen durchaus in Harmonie. Beide Weltbilder in gewissen Maße in Einklang kommen, doch sie sind nicht identisch.

  Vom moralischen Standpunkt aus ist es unmöglich, Faust als positive Symbolfigur aufzufassen. Auch vom christlichen Standpunkt aus ist Fausts Weg bis zu den letzten Augenblicken eher der eines Gottesabtrünnigen als der eines Gottessuchers. Die sinnbilblich dargestellte Erlösung im Schlußteil verbieten es aus der Perspektive des Dramas, Faust als zu verdammende, negative Symbolfigur anzufassen. Eine solche Verurteilung der Faustfigur wäre gleichbedeutend mit einer negativen Eschatologie. Das kann Goethe, den die Vorstellung der Erbsünde zuwider ist, unmöglich zugestehen. Faust will die Grenzen des Menschenseins durchbrechen : Er will die gottgleiche All-Einsicht und Allwahrheit, will die Unio mystica mit der Natur, will die Totalität des Lebens und der Gattung Mensch erfahren. Faust ist ja eine Repräsentanz der Menschengeschlechts. Trotz aller ethischen Paradoxie fährt Faust nicht zur Hölle, sondern zum Himmel. Mit oben genannten Begründungen muß Dr. Faust auf alle Fälle sicher ein Gnostiker sein.

 

 

각주

* 본 논문은 1997년도 동아대학교 기초연구지원비에 의해 조성된 것임

** 독어독문학과 교수

1) Heinrich Rickert : Goethes Faust. Die dramatische Einheit der Dichtung. Hrsg. v. W.  Keller. Darmstadt 1974. S.     299

2) Richard Reizenstein : Poimandres. Darmstadt 1966.

3) Wilhelm Emrich : Die Symbolik von Faust Ⅱ. 4. Aufl., Wiesbaden 1981. S. 389

4) Rudolf Bultmann : 신약성서신학(허 혁 역). 성광 문화사. S. 363

5) Vgl. Werner Foerster : Die Gnosis, Zeugnisse der Kirchenväter. Artemis & Winkler.

   Zürich. 1995

6) 영지(Gnosis)란 하늘에 혈연을 둔 자아에 관한 지식. 자아의 세계의 생소성과 하늘의 혈연성에     관한, 그리고 이     세계에서 구제되는 길에 관한 지식, 절대적 지식을 말한다. 이런 결정적 인식이 靈知이고, 이런 인식을 추구하     는 운동이 영지주의이다. 기원 후 세기 초엽에 지중해 연안에 정착되어 이집트 북부까지 연접되어 있던 토속신     앙이 기독교화되면서 고대 이집트 문명과 서 구라파 문명을 연결했던 사조(思潮)

7) R. Bultmann : a.a.O. , S. 165

8) 졸고 : 학위논문. S. 35 f.

9) 김 용 옥 : 절차탁마대기만성. 통나무. S. 95

10) ebenda.

11) Peter Boerner : Goethe. Rowohlt, 1978. S.27

12) Rudolf Bultmann : a.a.O., S.173

13) ebenda. S.166

14) ebenda. S.175